▲검찰 조사 마친 박근혜지난 22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되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시간 넘게 조사와 조서 검토를 위해 머문 뒤 귀가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도 이순자처럼 자기 자신이 거대한 음모에 엮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박근혜는 이순자와 똑같이 말하기가 곤란하다. 누가 자신을 엮었는지 꼭 집어 말하기가 곤란한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시점부터 지금까지 내내, 정권을 담당한 것은 박근혜 본인 혹은 박근혜 편이다. 전두환은 정권에서 물러난 뒤에 검찰 소환을 받고 구속까지 당했지만, 박근혜는 자신이나 자기편이 정권을 잡은 상태에서 정치적 코너에 몰렸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 하나를 꼭 집어서 '저 자가 나를 엮었다'고 말하기가 곤란하다.
최순실 태블릿을 보도한 손석희 JTBC 보도 담당 사장이 자신을 엮었다고 말하자니, 그것은 곤란할 것이다. 자기에 비해 힘이 현격히 떨어지는 언론인이 대통령을 엮었다고 말하기는 어색할 것이다. 그렇다고 JTBC라는 언론사 자체가 자신을 엮었다고 말하자니, 그것도 곤란할 것이다. 보도 당시의 JTBC 회장이 조중동의 중앙일보를 이끄는 홍석현이고, 넓게 보면 홍석현과 자신이 같은 편이기 때문이다.
최순실과 자신의 관계를 집중 보도해서, 지난 대선 때 박근혜를 찍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덕수궁 앞에 가서 태극기를 들지 않고 광화문광장에 가서 촛불을 들도록 만든 보수 언론들. 이들이 박근혜 자신을 엮었다고 말하는 것도 또한 곤란하다. 보수 언론 역시 자기의 우군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가 자기를 엮었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다. 국정원과 경찰과 검찰과 군대와 공무원 조직을 장악한 대통령이 전 야당 대표한테 엮였다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그런 거대한 권력을 갖고도 야당 대표한테 엮었다는 것은, 자기가 게을러서 정권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또 탄핵소추를 의결한 국회한테 엮였다고 말하는 것도 어색하다. 탄핵소추를 의결시킨 결정적 동력은 다름 아닌 여당 의원들이었다. 여당의 비박 세력이었다. 크게 보면 자신과 한편이었던 비박 세력이 국회 의결에 결정적 힘을 제공했으니, 국회한테 엮였다고 말하는 것도 쑥스러울 수밖에 없다.
박영수 특별검사팀한테 엮였다고 말하는 것 역시 우스운 일이다. 박 특검한테 임명장을 준 것은 자신이 총리로 임명한 황교안 권한대행이었다. 검찰한테 엮였다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검찰 역시 황 대행의 영향 하에 있다.
파면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가 자신을 엮었다고 말하는 것도 좀 그렇다. 헌법재판관 9명 중에서 3명은 국회가 선출하고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지만, 헌법 제111조 2항에 따르면 국회 선출 3명과 대법원장 지명 3명을 포함한 재판관 9명 전원이 최종적으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다.
이렇게 대통령이 임명해놓은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엮었다고 말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직급만 높을 뿐 물리적 권력을 행사할 수 없는 재판관들이 거대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을 엮었다고 말하는 것은 상당히 어색한 일이다.
훗날 이순자처럼 회고록을 쓰게 된다면...이처럼 박근혜는 누구를 꼭 집어서 '저 저자가 나를 엮었다'고 말하기가 곤란하다. 이순자는 '처음에는 노태우가 그분을 엮더니, 나중에는 결정적으로 김영삼이 그분을 엮었다'고 주장했지만, 박근혜는 그런 말을 하기가 곤란하다.
사실은 국민 전체한테 엮였지만 '국민들이 나를 엮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신이 세상에 큰 죄를 지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꼭 집어서 '저 자가 나를 엮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싶겠지만, 그 대상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자신을 탄핵소추와 파면과 구속 위기까지 몰아넣은 보수 언론, 여당 사람들, 검찰, 특별검사, 헌법재판소 등은 어떤 형태로든 박근혜 자신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밖에 안 된다. 사실 이들을 움직인 것은 거대한 국민의 힘이므로 이들을 비판할 이유가 없지만, 이들이 자신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이들을 비판할 수 없는 게 박근혜의 처지다. 그러니 그는 속으로 끙끙 앓을 수밖에 없다.
훗날 이순자처럼 회고록을 쓰게 된다면, 박근혜는 누가 자신을 엮었다고 변명을 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엮은 실체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과 밀접히 관련된 사람들이 거대한 국민의 힘에 이끌려 자기를 응징하는 데 가담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땐 내가 참 외로웠어'라며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말로 그런 회고록을 쓰게 된다면, 박근혜는 이순자처럼 자서전 제목을 <당신은 외롭지 않다>로 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박근혜는 자신의 회고록 제목을 <당신은 외롭다>로 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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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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