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과 함께 피어나는 시골마을의 미래

[경북의 맛] 먹어보면 반할 수밖에 없는 고령 개진감자

등록 2017.05.02 11:23수정 2017.05.0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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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를 수확하는 고령군 농민들. 눈가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감자를 수확하는 고령군 농민들. 눈가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경북매일 자료사진

짙푸른 녹음 위에 점점이 떨어진 눈송이 같았다. 어린 시절 재잘거리며 흥얼대던 추억 속 노래가 함께 떠올랐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마나 하얀 감자."

취재를 위해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감자밭을 찾았던 날. 땅 위로 드러난 새하얀 감자꽃과 땅 속에 숨어 알알이 영근 감자가 동시에 고개 들어 기자를 반겼다. 검댕을 입에 묻힌 채 호호 불며 까먹던 바로 그 감자,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만든 도시락 반찬으로 만나던 바로 그 감자였다. 때로 기억은 냄새를 동반한 맛의 형상으로 다가온다.

고령군 개진면 옥산리에서 26년째 감자농사를 짓고 있는 김종규(48)씨. 무작정 대처(大處)로 떠나고만 싶었던 20대를 지나 혈기방장한 30대를 거쳤고, 이제 세상사 미혹에서 자유로워진다는 불혹(不惑)을 넘긴지도 오래. 자타공인 '감자달인' 김씨가 운전하는 트랙터가 지나는 곳마다 알 굵은 감자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무슨 마술 같았다.

"여기서 나오는 감자는 무엇보다 맛있습니다. 서울이건 대구건 따질 것도 없어요. 한 번 개진감자를 맛본 사람들은 반드시 두 번, 세 번 다시 찾게 됩니다. 요즘엔 밀려드는 택배주문 탓에 눈코 뜰 새가 없습니다."

비닐하우스 4동과 1만6천530여㎡의 노지에서 감자를 키우고 있는 김씨의 "감자 재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 우리 지역"이라는 자랑을 한참을 이어졌다.

"서울 경매사 초청 등으로 개진감자 알리기 위해 노력"


수확되는 감자의 작황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동고령농협 권순목 지점장은 "이미 수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개진감자의 품질과 맛은 확인이 됐다. 서울 가락동 공영도매시장의 경매사를 초청해 고령에서 생산되는 감자를 보여줌으로써 경매에서 높은 가격이 나오도록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말로 향후 '개진감자의 전국화'와 판로 개척에도 노력할 것을 농민들에게 약속했다.

 자동선별 기계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갈 준비를 거치는 경북 고령군 개진감자.
자동선별 기계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갈 준비를 거치는 경북 고령군 개진감자. 경북매일 자료사진

지금까지도 고령군은 비용의 100%를 지원해 연 3회 무인항공방제를 실시하는 등 개진감자의 품질 향상과 홍보에 적지 않은 힘을 쏟아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역의 특산물이 제대로 자리 잡고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민·관의 유기적인 협조가 필수다.


대구광역시 달서구에서 감자 수확을 돕기 위해 김종규 씨의 감자밭을 찾은 김영순 씨는 "여기서 일한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 나이 되도록 먹어본 감자 중에선 이곳 개진면 감자만한 게 없더라"며 두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이 캔 커다랗고 실한 감자를 보여주었다. 김 씨의 웃음이 더없이 환했다.

고령에서 생산되는 감자가 좋은 품질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낙동강변을 따라 형성된 양질의 토양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봄과 초여름에 감자를 수확하는 '답전윤환방식'을 통해 밭을 논으로 전환하는 것도 개진감자가 우수한 품질을 담보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농업전문가들은 이를 "담수효과로 연작장해(동일 작물을 같은 밭에 연속적으로 재배할 때 작물의 품질과 수확량이 떨어지는 현상)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1820년대 한국에서 재배 시작... 고령에선 1900년대 초반부터

그렇다면 감자가 우리 땅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몇 가지 학설이 존재하지만 그중 가장 신빙성이 높은 것은 "1820년대 중반 청나라 사람들이 한국의 인삼을 몰래 캐러 왔다가 가지고 온 감자를 남기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고령에서는 1900년대 초반부터 개진면 일대에서 감자를 길러 먹기 시작했다. 이후 "농업생산력이 높아진 1970년대에 들어서면부터 낙동강 연안을 중심으로 농경지가 대형화됐다"는 게 동고령농협의 부연이다.

 감자밭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종규(좌)씨와 권순목 지점장.
감자밭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종규(좌)씨와 권순목 지점장.경북매일 자료사진

조선시대부터 전해져오는 각종 농사관련 서적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일반적으로 큰 하천이나 강의 중·하류 지역은 유기질이 풍부하고, 토양입자가 미세하여 감자와 양파, 마늘과 수박의 재배에 적합하다. 반면, 강의 상류 지역은 토양입자가 굵어 무와 당근, 파 등이 잘 자란다. 이것에 근거해도 고령 개진면은 감자농사를 위해 '하늘이 선물한 땅'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동고령농협은 그간 생산단계에서부터 유통단계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해 개진감자의 생산성을 높이고 감자농사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고령군농산물산지유통센터 설립과 집하장, 저온저장고, 자동선별기계 등의 도입을 통한 인프라 구축 등이 그 생생한 사례다.

기자가 고령군농업기술센터를 찾았던 날. 서창교 작물환경계장은 품질 좋은 씨감자 배양을 위한 연구에 골몰하고 있었다. 2012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기술센터 조직배양실은 개진감자의 미래를 좌우할 주요한 공간 중 하나다.

서 계장은 "재배농가들이 직접 원종생산을 함으로써 좋은 씨감자를 자체적으로 길러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며, "바이러스 없는 씨감자로 재배를 하면 생산량을 최대 20% 이상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령군에선 오늘도 농민과 군청, 농협과 농업기술센터가 협력하며 개진감자의 내일을 설계하고 있다. 고령의 5월, 활짝 피어난 하얀 감자꽃 같은 탐스런 미래가 익어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고령 #개진감자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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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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