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연구소와 박물관 표지판이 걸려 있는 현관문
이상기
이 건물은 팔레비 왕조 때까지 비즈니스용 사무실로, 공적인 회의와 의식을 위한 공간으로, 고위 손님을 위한 숙소로 사용되었다. 1930년부터는 쉬라즈대학교의 아시아 연구소가 들어왔고, 1966년 이란 고고학, 건축, 예술 전문가인 포프(Arthur U. Pope)가 부인과 함께 이곳에 초빙되었다. 1970년부터는 프라이(Richard N. Frye)가 아시아 연구소를 맡아 이란의 언어와 역사를 연구하고, 자료를 수집하는데 앞장섰다.
프라이는 페르시아 문명과 문화의 위대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이슬람 전래 이후 페르시아 문명이 소홀히 여겨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을 중시하면서 과거 페르시아 언어와 문화를 잊으려 하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페르시아의 정신과 도덕 그리고 문화에 대한 존중 없이는 이란의 미래 발전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아시아 연구소가 문을 닫았고, 그곳에서 수집한 문화유산이 나란제스탄 지하공간에 전시되었다. 이것이 나란제스탄박물관의 시작이다. 나란제스탄 궁전은 가운데 정원을 중심으로 건물이 남향하고 있는 형태다. 입구의 로비 건물은 사무실 대기실 등 관리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관리동 조각을 통해 아케메네스시대로 되돌아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