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학생에게 학생부장이 내린 해결책은?

[사서교사의 하루 ⑭] 흡연 학생 도현(가명)이와 라민(가명)이의 책 읽기 도전!

등록 2017.04.10 14:00수정 2017.04.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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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말, 학교 건물 5층 화장실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감지시스템이 작동하여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큰불이 나지는 않았지만 아찔한 상황이었다. 화장실 쓰레기통은 검게 그을렸다. 담배꽁초가 아니고서는 불이 날 일이 없었다.

작년 처음으로 학교에서 학생부장 역할을 맡았고, 아이들 흡연문제로 마음 아픈 일이 많았다.

학생부장으로서 일을 이 지경으로 몰고 간 학생을 잡아야만 했다. 수소문한 결과 3학년 도현(가명)이와 라민(가명)이의 소행이었다. 오래 전부터 피워오던 담배라 끊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둘을 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전에 흡연문제로 나와 금연 약속을 했던 친구들이다. 그때는 참말로 믿었다. 이제 방법은 선도위원회에 회부하여 봉사활동이나 특별교육을 의뢰하는 것이다. 그러나 간단하지 않은 문제였다. 아이들 행동이 나아지리란 믿음이 없었다.

사서교사인 나는 도현이와 라민이를 점심시간마다 도서관으로 오게 했다. 그리고 둘을 데리고 이야기를 했고, 한 권의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도서관에 오기로 약속했다.

"선생님, 점심을 먹고 나면 담배가 너무 많이 생각이 나요."

나는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어서 크게 공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친구들이 금연할 때 담배 대신 사탕으로 갈급함을 달래곤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럼 도서관에 사탕을 놓을 테니 밥 먹고 사탕 입에 넣고 책을 봐."


아이들은 부드러운 말투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학생부장을 만나서인지 의외로 잘 따라주었다.

그리고 3월 20일부터 매일 점심을 먹고 오후 1시까지 도서관에 왔다. 그러나 내가 골라준 책은 어려웠는지 책을 펴놓고서는 읽지를 못했다. 2-3일을 그렇게 보내고 난 후, 아이들에게 직접 책을 고르게 했다. 책을 고르는 일도 참 어렵다.


"선생님, 저는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어요. 그리고 책만 보면 졸리고 그래요."
"그래? 그럼 선생님과 함께 골라보자."

결국 함께 책을 골랐다. 책은 우리학교 권장도서에 꽂혀 있는 것을 골랐다. 쉬우면서 아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책을 골랐다고 생각했다.

최관의 선생님이 쓴 <열다섯, 교실이 아니어도 좋아>라는 책과 김이윤 소설가의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이라는 책이었다. 앞의 책은 최관의 선생님의 어릴 적 이야기다. 다니고 싶었던 중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이발소, 야채 장수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술회한 내용이었다. 김이윤 작가의 책은 엄마와 둘이 사는 아이와 시한부 엄마와 아름답게 헤어지는 과정이 나왔다. 엄마와 단 둘이 사는 도현이에게 읽히면 좋을 것 같아 골라보았다. 어쩌면 나의 욕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책을 읽지 못하고 둘이 대화하느라 바빴다. 둘을 조금 떨어져서 앉게 했다. 그리고 내가 사이에 앉아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분 동안 읽었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파일 철을 만들어줬다. 파일함의 이름은 '도현(가명)이의 도전'이었다.

도현(가명)이의 도전 흡연 문제로 도서관 내에서 책 읽기 도전하는 과정을 담은 것.

도현(가명)이의 도전 흡연 문제로 도서관 내에서 책 읽기 도전하는 과정을 담은 것. ⓒ 황왕용


그러던 중 3월 29일이었다. 책을 읽고난 후 도현이가 나에게 와서 한 마디 했다.

"선생님. 사실 저 엄마랑 단 둘이 살아요."

담임선생님께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들었다.

"그래, 그런데 갑자기 그 말을 왜?"
"이 책에 나온 여여가 슬퍼보여서요. 엄마랑 단 둘이 사는데 엄마가 죽으면 어떻게 해요?"
"그래. 끝까지 읽어보고 선생님이랑 더 이야기해보자."

거짓말을 '선수급'으로 잘한다는 도현이었다. 그러나 그때만큼은 진심으로 느껴졌다. 측은했다.

책을 다 읽고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하루 30분 동안 읽은 쪽수가 고작 5-8쪽뿐이었지만 한 학기가 지나면 다 읽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도현이와 뒷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73쪽을 읽다가 더 이상 읽지 못하고 다른 사고들을 쳤다. 결석, 조퇴, 지각 등을 밥 먹듯이 했다. 4월 20일 이후에는 도서관에 오지 못했다. 도현이의 도전은 결국 끝까지 할 수 없었다. 학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전학을 가버린 도현이와 더 만날 수 없게 되었다.

2017년 학기 초 라민(가명)이가 학교에 왔다. 나를 보고 싶다고 교무실 앞 복도 바닥에 앉아 있는 라민이의 모습이 얼마나 반갑던지. 그때의 추억을 살리고 싶었을까? 나는 라민이에게 사탕을 건넸다. 그리고 도현이의 소식을 물었다.

"도현이 지금 특성화고 잘 다니고 있어요."

덧붙이는 글 청소년문화연대 킥킥에 중복 송고함.
#학교도서관 #흡연 #금연 #사서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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