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자식간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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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나이와 다른 성별을 가지고 있고, 전혀 다른 시대와 세월을 보냈다. 나의 세월과 그의 세월에서는 쉬이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같은 2017년을 살아내고 있지만 우리의 세계가 같다고 결코 말할 수 없어, 대화는 때로 산산조각이 난다. 이것은 나와 부모님의 이야기다.
"왜 나는 스물두 살을 먹고도 엄마·아빠랑 싸울까?"
이 유치한 질문은 우리 가족이 밟아온 일상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기회를 내게 안겼다. 싸움의 역사를 돌이켜보니, 부모와 나는 함께 나이를 먹어가면서 싸움의 패턴도 변화했음을 알았다. 이전에는 내가 부모님께 일방적으로 '혼이 나는' 방식이었다면, 어느 정도 머리가 크고 난 후에는 비교적 동등한 싸움이 가능했다. 나의 주장을 펼치고, 부모님은 그것을 반박하고, 나는 그것을 재반박하는, 대화와 토론의 형식을 갖춘 싸움이 가능해진 것이다. 쉽게 말해 이전의 싸움들이 '개싸움'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괜찮은 수준의 품격을 지닌 싸움이랄까.
싸움의 방식과 더불어, 싸움의 주제도 달라졌다. 이전 싸움의 주제들을 압축하자면, '너는 왜 이렇게 공부를 못 하냐'로 통일된다. 학벌 권력을 취득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마냥 이야기하던 아빠는, 내 성적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는 했다(아빠는 스스로도 학벌 권력층이며, 그 학벌 권력을 바탕으로 경제적 기득권에 진입한 당사자다).
정작 나는 공부나 성적 같은 데에는 큰 관심이 없는 무딘 학생이었다. 미적분보다는 독서토론동아리에서 책을 읽고 토론을 준비하는 게 더 재미있었고, 수행평가 점수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학생회 활동에 더 열정적이었던 내 모습에 아빠는 못마땅해했다. 아빠는 내가 항상 전교 1등을 하기를 바랐고, 항상 모의고사 수학 영역 1등급을 받아오기를 바랐다. 내가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면 다양한 방식의 훈계가 날아왔고, 그것은 10대 소녀와 50대 아저씨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싸움으로 이어졌다. 아주 단순한 패턴이었다.
하지만 자식인 내가 성인이 되고 난 후 싸움의 주제는, 굉장히 다층적이며 다각적으로 변화했다. 겨우 수학 점수 하나로 싸우던 과거의 시간들에 서로 민망해질 정도로 말이다. '화가 나면 싸운다'는 무의식의 무지에서 벗어나, 그 안에서 발생하는 생각의 충돌과 모순을 직면했다.
가족,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는 어떤 화두 속에서 갈등을 빚는지. 그 생각의 차이는 어떠한 말하기 방식으로써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지. 그 상처는 어떤 방식으로 각자의 세계관 사이의 유리를 야기하는지. 이 가족의 문제를 '세대 갈등'이라는 거대한 담론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업은, 스물두 살을 먹고도 부모님과 유치한 싸움을 계속하는 자녀 세대인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
<간단한 가족 프로필>아빠 : 남성. 1965년생. 경기도 거주. 서울에서 학원 운영 및 강의. 예민하고 감성적인 편임. 비례대표 4번(정의당)을 찍는 자칭 정치적 진보이지만, 본인이 지닌 사회적 기득권 역시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강남좌파 아저씨.
엄마 : 여성. 1967년생. 경기도 거주. 고등학교 교사와 회사원을 거쳐, 현재는 주부 9단. 일에서는 똑 부러지지만 성격은 무심한 편. 정치적으로는 중도-진보이지만 딸래미의 자유분방한 사상을 잘 이해해줌.
나 : 여성. 1996년생. 대학생. 본가에서 나와 서울에서 혼자 거주. 사생활 간섭을 극도로 싫어함. 본투비 공부에는 흥미가 없는 자유로운 대딩.
[싸움 주제 ①] '돈'- 말하기 방식 : 생색 - 매치 포인트 : 부모의 경제적 지원, 자식에 대한 속박으로 이어지는 게 정당한가?- 결과 : 돈 앞에 굴복하는 자녀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