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7일 까칠남녀 첫 회, '공주도 털이 있다'에 출연한 필자겨털을 기르는 당사자 여성으로 출연했다. 이 자리에서는 털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다시보기는 EBS 사이트에서!
EBS1 까칠남녀
나는 최근 SNS상의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젠더토크쇼 <까칠남녀>에서 연락을 받았었다. <까칠남녀> 첫 화에 무려 겨드랑이 털을 기르는 여성 당사자로 출연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나에게 연락한 작가는 처음에 촬영장에 민소매 옷을 입고 와서 겨드랑이 털을 직접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천하제일겨털대회'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사이트에 겨털을 드러낸 여성들의 사진이 올라가고 외모비하, 살해협박, 모욕성 댓글들이 줄줄이 달리는 것을 목격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지상파에 출연해서 겨드랑이를 직접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결국 이런 우려들을 표하고 사진으로 대체하기로 했는데 겨털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겨드랑이 털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그들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심한 욕설을 마주해야만 하는 현실이 참 씁쓸했다. 어떻게든 여성들이 사회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미적 기준에 자신을 끼워맞추기를 바라는 것은 여성들이 스스로의 몸을 미워하도록 만든다.
한국사회에서 제모를 하는가 하지 않는가는 그 여성이 '어떤 여성인가'를 규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아마도 수많은 매체가 여성의 털에 대해 편견을 강화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제모를 하는, 그래서 자신의 외모를 사람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게' 관리하는 여성은 '깔끔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반대로 겨털이 자라도록 혹은 눈에 보이도록 자랄 때까지 다음 제모를 하지 않는 여성은 어디에 신경이 빠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하는 '게으른' 여성이 된다. 이렇게 그 여성이 어떤 사람인지를 쉽게 규정할 수 있는 기준이 바로 양쪽 겨드랑이에 있으니, 당연히 시선이 가게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털 없이 미끌미끌한 몸이 '아름다운' 몸으로 간주되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간혹 털이 잘 안 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아예 털이 없는 몸을 보편적인 '여성성'의 상징이라고 여겨버리면 곤란해진다.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가지고 있지 않은 허상의 보편을 향해 모두가 달려가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털에 집착하는 것이 털이 아직 나지 않은 어린이의 모습을 여성들에게 강요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를 성적 대상화하고 어린이같은 모습에 성적으로 끌리는 것을 '소아성애'라고 한다. 여성에게 털이 없는 모습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가 결국에 우리 사회 전반의 소아성애화의 한 단면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