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사상검증 떠올린 2차 후보 토론회

[대선 게릴라칼럼] 메카시즘적 색깔론, 언제쯤 없어질 수 있을까

등록 2017.04.20 14:35수정 2017.04.2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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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후보 KBS TV토론 시작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열린 KBS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토론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선후보 KBS TV토론 시작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서 열린 KBS 주최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토론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4월 19일 KBS가 주최한 대선후보 토론회는 두 가지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하나는 진행 방식과 관련된 사안인데, 토론회가 사실상 문재인 청문회처럼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홍준표-유승민 두 보수 진영 후보들이 대북 문제 관련해서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에 대해서 매우 강력한 공세를 펼쳤다는 사실이다.

흔히 정치적 공방 과정에서 통용되는 대북 문제 관련 정치담론은 선정적이고 거친 성격을 띠는 경향이 있다. 어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토론회 앞 부분, 전체로 보면 거의 1/2에 해당하는 시간을 대북/안보 분야 주제를 갖고 공방을 펼쳤을 정도로 어제 토론회는 이 이슈가 매우 강조되었다.

그렇다보니 필자는 어제 토론회를 보면서 1997년 10월 8일 <한국논단>이 개최한 '대통령 후보 사상 검증 대토론회'가 생각났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물론 어제와 그 당시 토론회는 진행 방식에 있어 형식상의 차이는 있었다.

20년 전에는 사회자와 몇 명의 패널이 후보자 한 명에게 질문하고 거기에 후보자가 답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토론회 성격상 후보자는 구조적으로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입장에 놓여 있었다. 반면에 어제 토론회는 대등한 위치에 있는 후보자들 사이의 토론이기 때문에 두 토론회 진행 방식에 있어 차이점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유사한 지점이 하나 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불변의 사실, 그것은 바로 냉전 보수 세력들의 메카시즘적 색깔론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20년 전에 있었던 일과 어제 있었던 일을 비교해보도록 하겠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1997년 '사상검증 대토론회'

1997년 10월 8일 강경 보수 성향의 <한국논단>은 '대통령 후보 사상 검증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 제목부터 메카시즘 색채가 뚜렷한 이 토론회에는 당시 5명(김대중, 이회창, 김종필, 이인제, 조순)의 대선 후보가 참석하였으며 방송3사가 생중계를 하였다.


당시 토론회의 실질적인 타깃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였다. 김대중 후보 편은 이도형 <한국논단> 발행인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김대중X-파일> 책자에 나온 여러 내용, 김일성 조문 문제, 오익제 방북 사건 등 여러 사안을 토대로 김대중 후보에 대한 공격이 이어졌고 이에 대해 김 후보는 방어하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대중 후보는 여러 공격에 대해서 잘 대처하였다. 그런데 김대중의 능력으로도 다 막기 어려운 것이 메카시즘적 색깔론이다. 한 예로 이 토론회에서 사회자인 이도형은 '황장엽씨로부터 김정일이 김대중을 제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이에 대해 김대중의 견해를 묻기도 하였다.


이에 김대중은 제대로 방어를 했지만, 저런 방식으로 김대중을 엮으면 김대중에 대한 부정적 상징은 계속해서 호명된다. 이렇게 되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응을 통해서 부정적 파장을 완화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근본적으로 제어하는 것은 어렵다. 메카시즘적 색깔론이 위험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 뿐 아니다. 사회자 이도형은 토론회를 마치고 일어서는 김대중 후보를 향해서 '오늘 토론으로 사상검증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는 식의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사실상 협박성 발언이었다.

이 토론회는 이미 그 당시부터 매우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메카시즘적 색깔론의 문제점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면 어제 토론회는 어땠을까?

메카시즘적 색깔론이 난무한 어제 토론회

19일 2차 대선 토론회에서는 매우 많은 주제들이 언급되었지만, 특히 유승민 후보가 주적과 전술핵 문제를 언급하면서 기존 야권 후보를 강하게 공격하였다. 그런데 유승민 후보의 주장은 일방적이며 사실 관계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먼저 주적 문제의 경우, 유 후보의 주장과 달리 국방백서 등에서도 주적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어제 토론회에서 유 후보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특히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였다.

그리고 전술핵 재배치의 경우도 문제가 많다. 전술핵 재배치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깨는 것이기 때문에 이 경우 북한의 핵 폐기를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이 약화된다. 그리고 이미 한국은 미국 핵우산의 보호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우리 안보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사실관계에 있어 논란이 있는 주장을 하면서도 유승민 후보가 매우 당당한 자세를 취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대북/안보 관련 담론 지형 자체가 불균등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다. 필자가 어제 토론회를 보면서 1997년 토론회가 연상되었던 이유다.

문재인-안철수-심상정, 과연 잘 대처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이 문제를 대하는 기존 야권 진영 후보의 태도에도 문제는 있다. 문재인-안철수-심상정 등 기존 야권 후보들의 잘못된 대처로 인하여 어제 토론회의 문제점이 더욱 부각된 측면이 있다.

우선 문재인 후보는 평화와 안보 문제에 있어 지난 보수 정권 9년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했다. 문 후보를 공격한 보수 진영, 그리고 그에 대한 문 후보의 태도를 보면 마치 10년 전의 상황이 떠올랐다. 지금의 위기를 누가 초래했고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문 후보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는 전반적으로 이 사안에 대해서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하기보다는 낮은 톤으로 접근하려고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또한 주요 쟁점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넘어가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이것을 일종의 전략적 회피 전략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듯한데, 이 사안의 중대성과 의미를 생각해볼 때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심상정 후보는 타깃 설정에 있어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평화 안보를 위기에 빠트린 보수 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 다른 기존 야권 후보들을 비판의 중심에 놓은 것은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된다.

이와 같은 여러 요인이 결합되어 어제 토론회는 메카시즘적 색깔론이 제대로 제어되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 그렇다보니 필자는 어제 토론회를 보면서 1997년 10월 8일에 있었던 '대통령 후보 사상 검증 대토론회'가 연상되었던 것이다.

메카시즘적 색깔론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닐 정도로 매우 고질적인 문제이지만, 1997년에서 20년이 더 지난 지금 시점에서 이것을 또 경험하게 된다는 것은 매우 씁쓸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평화가 위기 상황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안보는 보수'와 같은 뉴라이트 이데올로기가 진보 세력에 끼친 부정적 영향을 분석한 <진보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반노무현주의, 탈호남 그리고 김대중 노무현의 부활>이라는 책을 최근에 낸 바 있습니다.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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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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