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선토론에 참가한 안철수 후보
KBS
"국민이 이깁니다!"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치며 안 후보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국방·안보 공통 질문 1, 2 번 중 하나를 고르라는 사회자의 요구에 "3번은 없나요"라는 농담을 날리는 여유(?)를 보이며 토론에 참전한 안 후보는, 이날 토론에서 결국 '묻혔다'.
현 대선 지형에서 안철수 후보의 위치선정은, 지지율에서나 토론에서나 비슷했다. 합리적 중도를 표방하는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문재인 후보와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에서 형성된 것으로 일종의 반사이익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 4.13 총선에서 국민의 당이 꽤 많은 의석을 확보한 사실과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되는 것이다.
안 후보는 분명 중도 세력과 기존의 새누리당을 지지하던 세력 일부를 흡수해 지금의 지지율을 달성했다.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의 유연한 이데올로기를 원동력 삼는 안 후보의 주된 지지층은, '안철수가 좋아서 지지한다'기 보다는 '나머지가 싫어서 안철수를 지지한다'는 유권자들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기존 박 대통령 지지층이 최후의 양심을 발휘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가 안철수 후보였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상은 안 후보가 문재인 후보와 양강구도를 이룰 수 있게 만들었지만, 안 후보의 지지기반이 유독 취약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현 대권 구도에서 안 후보의 이러한 위치는, 이날 토론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안 후보는 '좌파'라고 욕먹지도, '우파'라고 욕먹지도 않았다. 문재인 후보처럼 북한을 대하는 사상검증을 당하지도 않았고, 홍준표 의원처럼 박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음 받지도 않았다. 다만 안 후보는 '말 바꾸기 논란', '박지원 상왕설' 등의 부수적인 요소들의 질문을 받았다.
문재인 후보가 보수 진영에게 사상 검증을 당하기에 좋은 먹잇감인데 비해, 안 후보는 이도 저도 아닌 게 오히려 약점이 됐다. 이렇게 안 후보의 분량은 실종되었다. 토론에서는 공격을 하든, 당하든 카메라에 많이 잡히고 발언권을 많이 얻는 것이 중요한데, 안 후보의 반사이익적 위치 선점은 토론에서는 분명한 실패로 나타난 것이다. 문재인 후보처럼 난타는 당하지 않았지만, 난타를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 후보에게 득이 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악플 보다 무서운 무플'의 뉘앙스와 비슷한 논리다.
토론 태도와 능력만을 본다면, 안 후보는 지난 SBS 토론보다는 훨씬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안 후보는 원고와 대본 없이도 시종일관 차분한 모습을 유지했고, 이날 토론해서 유일하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후보였다.
특히 안 후보는 홍준표 후보의 '떼쓰기'에 가까운 질문들에도 원론적인 수준이지만 차근한 답변을 내놓아 인상적이었다. "박지원을 국민의 당에서 내보낼 것이냐"라는 홍 후보의 질문에 안 후보는 "제가 CEO 출신이라고 언제는 제왕적 리더라고 하더니, 지금은 박지원 상왕설을 내놓는다"며 "네거티브도 앞뒤가 맞게 하기를 바란다"는 차분한 답변을 내놓았다.
DJ 정권의 불법 대북송금이나 햇볕정책을 묻는 질문에도 공과 과를 두루 짚어내며 객관적 시선을 전달하려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꽤나 단계적인 말하기 방식("다른 측면을 제시하겠다" "두 가지 지점을 바라봐야 한다"는 등)을 구사하게 된 안 후보의 성장이 돋보이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