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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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을 입버릇처럼 언급하곤 했다. 공약의 현실성에 대한 의문은 꾸준히 제기되어왔지만 유력 대선 후보의 파격적인 제안은 취업지옥에 시달리는 젊은 청춘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취업 걱정을 하며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던 필자의 지인조차 "문재인에게 한 표 던지고 공무원이나 준비해야겠다"고 선언할 정도니 말 다한 셈이다. 그만큼 청년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절박한 문제다. 해방구 하나 없는 답답한 현실에서 문 대통령의 일자리 81만개 공약은 유일한 희망이었다는 뜻이다.
80여 년 전 미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미국은 유례없는 대공황으로 나라 전체가 부도 위기에 처해 있었다. 뉴욕의 고층 빌딩에서 투신자살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채 거리를 전전하는 부랑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실업자들의 농성이 이어지고 대학생들은 공산주의의 물결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경제 위기가 아니라 시장경제에 근거한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33년 32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경제공황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은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봤다. 그래서 저자는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 대해서도 "외형적으로는 경기부양책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감 부양책"이었다고 주장한다. 길을 닦고 공원을 만드는 공공 부문의 용역으로 실업 청년들을 고용하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문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 역시 루스벨트의 뉴딜정책과 흡사해 보인다. 문 대통령이 실제 뉴딜정책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든 그렇지 않든 뉴딜정책이 근본적으로 추구했던 목적, 즉 미국인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어주고자 만들어진 정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재원이 부족하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전락한다면 이 땅의 청춘들은 다시는 정치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리라. 문 대통령이 목숨을 걸고 공약을 지켜야만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얘기하다"리더가 어떠한 시각과 시선으로 과거를 보느냐의 차이 하나가 그 나라와 세계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거대한 갈림길이 되고 말았다. 과거를 현재의 문제에 대한 책임 전가의 도구로 이용하느냐, 아니면 희망의 그루터기로 보느냐의 시각 차이가 가져온 결과는 엄청났다. 마찬가지로, 과거를 차갑고 어두운 시선으로 보느냐 아니면 따뜻하고 밝은 시선으로 보느냐의 차이 또한 인류사에 잊지 못할 역사적 유산을 남겨놓았다." - p.69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국민들에게 늘 희망을 말했다. 남북전쟁의 상처 속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부르짖었던 링컨과 대공황의 위기 한가운데서도 "오직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뿐"이라며 희망을 역설했던 루스벨트까지. 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얘기했고, 그를 현실로 승화시켰다.
유례없는 국정농단 사태로 무너져버린 민주주의 시스템,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 등 한반도 전역을 뒤덮은 미세먼지만큼이나 잿빛 절망에 사로잡힌 우리네 현실에도 이렇듯 희망을 말하는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 단순한 장밋빛 청사진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을 동반하는 희망 말이다. 국민 모두의 바람을 업고 대한민국호의 새로운 선장이 된 문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다.
여전히 유효한 "이게 나라냐"라는 광장의 물음2009년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에 취임한 버락 오바마는 건국의 아버지들이 이룩한 공로를 상기시키며 "자유라는 소중한 선물을 후대에 무사히 전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2016년 12월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그는 고별사에서 "대통령으로서 8년을 보낸 뒤에도 그것을 믿는다"고 자부했다.
이처럼 워싱턴에서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저마다 노선의 차이가 있었을지언정 미국 헌법이라는 최상위 규범을 존중하고 계승하고자 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체제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한편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요구되는 역할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 중 헌법을 존중하고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했던 이들이 몇 명이나 됐던가 돌이켜보면 씁쓸한 웃음만 나온다. 대통령조차 헌법을 누더기 취급하는 상황이니 국민들도 헌법이 갖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던 것 아니겠는가. 지난 겨울 광장을 뒤흔들었던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도 바로 그런 의문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이제 문 대통령에게는 무너진 헌정을 바로 세우고 대통령의 역할을 재정립해야만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뿐이랴. 광장을 반으로 갈라놓은 촛불과 태극기의 민심을 하나로 봉합하고 화해와 치유의 시대를 여는 길잡이 역할도 요구된다. 무겁고 험난한 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앞서간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지나간 역사는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준비하는 거울이다. 미국의 혼란기를 극복하고 황금기를 열었던 미국 대통령들에게서 문 대통령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문 대통령에게 당부하노니 부디 이제는 "이게 나라냐"라는 광장의 물음에 "이게 나라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달라.
이런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 미국의 황금기를 만든 대통령의 품격
김봉중 지음,
위즈덤하우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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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전공 박사과정 대학원생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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