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금파리 조각과 철조각 사이로 피어난 새싹을 볼 수 있었다. 버려진 땅, 어느 생명체도 살 수 없어 보이는 사막보다도 황량한 이 땅에서도 새싹이 돋아난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고무적이었다.
천정환
이곳을 둘러싼 와룡산 아래로 넓게 펼쳐진 매립지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수많은 사금파리 조각과 철조각 사이로 피어난 새싹을 볼 수 있었다. 버려진 땅, 어느 생명체도 살 수 없어 보이는 사막보다도 황량한 이 땅에도 새싹이 돋아난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고무적이었다. 원자폭탄을 맞고 폐허가 된 히로시마에 가장 먼저 되돌아온 것은 한 포기의 잡초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을 떠올린다.
어느 것보다도 모든 것을 포용해 주는 것이 자연이 아닐까. 어쩌면 원시시대의 토테미즘(Totemism)에서부터 이어온 인류의 자연물 숭배 역시 자연의 포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와룡산을 찾아 도시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Healing)한다고 했다는 누군가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어쩌면 내가 보았던 작은 새싹도, 쓰레기장을 감싸고 있는 와룡산도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낸 쓰레기 모두를 포용하고 있기에 도시가 유지될 수 있는 것 아닐까.
방천리 쓰레기 매립장에 쌓여가고 있는 것은 엄청난 양의 쓰레기인 동시에 우리들의 증오와 이기심이기도 하다. 쌓여진 쓰레기들을 무심히 지나가며 땅의 고도(高度)를 높여가던 덤프트럭의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그럼에도 증오와 이기심의 땅 위에서 싹을 틔우는 나무와 풀의 모습. 그리고 쓰레기장을 품은 와룡산의 나무 밑에서 휴식을 만끽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또 다른 대조를 이루며 새로운 희망을 역설하고 있다. 증오와 이기심의 땅에서 '포용'을 생각한다. 부자와 거지, 진보와 보수, 노인과 청년…. 수많은 양극화와 갈등을 겪고 있은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 역시 '포용'이 아닐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