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주최한 영상콘서트 <맨발의 청춘>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는 "5060"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역대 가장 심하게 격차가 난 세대 선거에서 일치단결하여 박근혜를 당선시킨 이들은 박근혜 임기 내내 세월호가 가라앉아도 정윤회 문건이 터져도 이들은 박근혜의 든든한 "30% 콘크리트 지지율"이 되어 주었다.
그중에서도 60대 이상은 박근혜가 탄핵 위기에 놓이자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빨갱이를 척결하자고 외치며 깃발을 흔드는 사람, 트럼프와 박근혜와 삼성 로고를 등에 달고 거리를 헤매는 사람, 박근혜의 사저에 주저앉아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하옵니다. 마마"를 외치는 사람.
사람들은 이들을 혐오하고 비웃었다. 이들은 사회 집단으로서 유의미한 악으로 여겨졌다. 몸에 태극기를 감은 채 지하철에서 술 취해서 소리를 지르는 한심하게 늙은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60대 이상에겐 투표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어떻게 죽지도 않느냐고 한탄을 하기도 했다.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 주최로 5월 22일부터 6월 9일까지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상연하는 영상콘서트 <맨발의 청춘>은 바로 이 5060 세대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어떻게 싸워 왔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맨발의 청춘>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평범하게 극장에 걸려서 상연되는 이 영상이 극영화가 아니고, 심지어 다큐멘터리조차 아니라는 것을 언급해 둘 필요가 있다. 영상을 기획한 유인택 감독은 이 영상은 '오락물'로서 제작되었다고 밝힌 바가 있다.
<영상콘서트>. 기존에 있는 영상, 그림, 음악 등을 서로 편집, 합성하여 기존의 것과는 다른 영상물을 만든 것이다. UCC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익숙한 형태의 영상이다. 다양한 옛날 영상과 영화 등을 짜깁기해서 영상 위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가요들을 깔았다.
<맨발의 청춘>에 쓰인 가요들은 다양하지만 모두 우리가 흔하게 접해 왔던 곡들이다. 역사 속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시대를 통과해 온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면에서는 시대물에 쓰이기는 지나치게 가볍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상은 그 지점을 장쾌하게 통과해냈다.
베트남으로 파병된 장병들의 박수와 웃음 뒤로는 김추자의 슬픈 목소리로 <님은 먼 곳에>가 깔린다. 먼 곳으로 떠난 베트남의 사람들에 대한 서사는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에 대한 서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중동 건설현장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먼 타국'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화면 위에 펼쳐진다.
이 사람들의 노력 끝에 이루어진 산업화의 화려한 성장이 등장하지만, 그 화려한 숫자 앞에서도 김추자의 목소리는 구슬프게 멈추지 않는다. 부조화스럽게 느껴지지만 관객들은 곧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풍경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희생된 도시 빈민들, 쪽잠도 들지 못했던 노동자들, 그리고 몸에 불을 붙이고 평화시장 한가운데로 뛰어든,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난 23세 청년이다.
압축 성장을 한 여느 나라가 그렇듯이 한국 사회 역시 명과 암을 동시에 끌어안고 내달렸다. 그리고 그 밝음뿐만 아니라 어두움까지 끌어안은 것이 "문화"였다는 것을 <맨발의 청춘>의 노래들은 훌륭하게 드러낸다.
의도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이런 부조화는 영상콘서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발생한다. 윤수일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63빌딩이 올라가고 건설업이 화려하게 꽃피던 전두환 시대의 눈부신 경제 발전을 보여주고, 그 신나는 리듬이 지속되면서 계엄에 반대하며 희생된 수많은 사람, 부림사건, 칼기 폭파, 삼청교육대가 차례로 지나간다.
윤수일의 <아파트>에서 "으쌰라으쌰" 하는 추임새가 나올 무렵 삼청교육대에서 커다란 통나무를 지고 나르는 남성들의 모습이 보이고, 삼청교육대가 이들에게 어떤 정신적 피해를 입혔는지가 자막으로 지나갈 때 음악에 들떴던 관객들의 마음은 어쩔 도리 없이 서늘해진다. 오락물에서 만나는 기이한 '소격효과'(낯설게하기)다. 이 음악이 고통스러운 장면들 위에 깔려있음으로써 관객들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역사에서 행복했던 순간만을 소비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무엇의 희생을 딛고 서 있는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뒤틀림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바로 87년도 6월항쟁이다. 6월항쟁의 주제곡으로 선택된 곡은 "타는 목마름으로"도 아니고 "흔들리지 않게"도 아닌 동명의 드라마 주제곡으로 유명한 장현철의 <걸어서 하늘까지>다.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둔 너"와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의 사진이 스쳐 지나가는 부분은 이 소격효과와 카타르시스가 만나는 정점이다. 어떻게 보면 컬트적이고, 어떻게 보면 소위 '무슨 약 하세요' 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이 연출 속에서 문익환 목사는 절절한 기타 솔로를 배경으로 열사들의 이름을 부르고, 사람들은 경찰의 가슴팍에 카네이션을 달아준다.
춤추며 절망과 싸운 사람들, 동전 양면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