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태극기 흔드는 5060세대, 정말 '꼴통'일까

불의에 맞서 싸워온 역사에 대한 세대적 기록

등록 2017.05.26 21:24수정 2017.05.2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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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주최한 영상콘서트 <맨발의 청춘>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주최한 영상콘서트 <맨발의 청춘>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는 "5060"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역대 가장 심하게 격차가 난 세대 선거에서 일치단결하여 박근혜를 당선시킨 이들은 박근혜 임기 내내 세월호가 가라앉아도 정윤회 문건이 터져도 이들은 박근혜의 든든한 "30% 콘크리트 지지율"이 되어 주었다.

그중에서도 60대 이상은 박근혜가 탄핵 위기에 놓이자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빨갱이를 척결하자고 외치며 깃발을 흔드는 사람, 트럼프와 박근혜와 삼성 로고를 등에 달고 거리를 헤매는 사람, 박근혜의 사저에 주저앉아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하옵니다. 마마"를 외치는 사람.


사람들은 이들을 혐오하고 비웃었다. 이들은 사회 집단으로서 유의미한 악으로 여겨졌다. 몸에 태극기를 감은 채 지하철에서 술 취해서 소리를 지르는 한심하게 늙은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60대 이상에겐 투표를 금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어떻게 죽지도 않느냐고 한탄을 하기도 했다.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 주최로 5월 22일부터 6월 9일까지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상연하는 영상콘서트 <맨발의 청춘>은 바로 이 5060 세대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어떻게 싸워 왔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맨발의 청춘>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평범하게 극장에 걸려서 상연되는 이 영상이 극영화가 아니고, 심지어 다큐멘터리조차 아니라는 것을 언급해 둘 필요가 있다. 영상을 기획한 유인택 감독은 이 영상은 '오락물'로서 제작되었다고 밝힌 바가 있다.

<영상콘서트>. 기존에 있는 영상, 그림, 음악 등을 서로 편집, 합성하여 기존의 것과는 다른 영상물을 만든 것이다. UCC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익숙한 형태의 영상이다. 다양한 옛날 영상과 영화 등을 짜깁기해서 영상 위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가요들을 깔았다.

<맨발의 청춘>에 쓰인 가요들은 다양하지만 모두 우리가 흔하게 접해 왔던 곡들이다. 역사 속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시대를 통과해 온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면에서는 시대물에 쓰이기는 지나치게 가볍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상은 그 지점을 장쾌하게 통과해냈다.


베트남으로 파병된 장병들의 박수와 웃음 뒤로는 김추자의 슬픈 목소리로 <님은 먼 곳에>가 깔린다. 먼 곳으로 떠난 베트남의 사람들에 대한 서사는 파독 광부들과 간호사들에 대한 서사로 이어진다. 그리고 중동 건설현장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먼 타국'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화면 위에 펼쳐진다.

이 사람들의 노력 끝에 이루어진 산업화의 화려한 성장이 등장하지만, 그 화려한 숫자 앞에서도 김추자의 목소리는 구슬프게 멈추지 않는다. 부조화스럽게 느껴지지만 관객들은 곧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풍경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희생된 도시 빈민들, 쪽잠도 들지 못했던 노동자들, 그리고 몸에 불을 붙이고 평화시장 한가운데로 뛰어든,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난 23세 청년이다.


압축 성장을 한 여느 나라가 그렇듯이 한국 사회 역시 명과 암을 동시에 끌어안고 내달렸다. 그리고 그 밝음뿐만 아니라 어두움까지 끌어안은 것이 "문화"였다는 것을 <맨발의 청춘>의 노래들은 훌륭하게 드러낸다.

의도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이런 부조화는 영상콘서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발생한다. 윤수일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63빌딩이 올라가고 건설업이 화려하게 꽃피던 전두환 시대의 눈부신 경제 발전을 보여주고, 그 신나는 리듬이 지속되면서 계엄에 반대하며 희생된 수많은 사람, 부림사건, 칼기 폭파, 삼청교육대가 차례로 지나간다.

윤수일의 <아파트>에서 "으쌰라으쌰" 하는 추임새가 나올 무렵 삼청교육대에서 커다란 통나무를 지고 나르는 남성들의 모습이 보이고, 삼청교육대가 이들에게 어떤 정신적 피해를 입혔는지가 자막으로 지나갈 때 음악에 들떴던 관객들의 마음은 어쩔 도리 없이 서늘해진다. 오락물에서 만나는 기이한 '소격효과'(낯설게하기)다. 이 음악이 고통스러운 장면들 위에 깔려있음으로써 관객들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역사에서 행복했던 순간만을 소비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무엇의 희생을 딛고 서 있는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뒤틀림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바로 87년도 6월항쟁이다. 6월항쟁의 주제곡으로 선택된 곡은 "타는 목마름으로"도 아니고 "흔들리지 않게"도 아닌 동명의 드라마 주제곡으로 유명한 장현철의 <걸어서 하늘까지>다.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둔 너"와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의 사진이 스쳐 지나가는 부분은 이 소격효과와 카타르시스가 만나는 정점이다. 어떻게 보면 컬트적이고, 어떻게 보면 소위 '무슨 약 하세요' 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이 연출 속에서 문익환 목사는 절절한 기타 솔로를 배경으로 열사들의 이름을 부르고, 사람들은 경찰의 가슴팍에 카네이션을 달아준다.

춤추며 절망과 싸운 사람들, 동전 양면의 역사

 창원(마산)지역의 1987년 6월항쟁 사진. 마산 양덕파출소에서 걸여 있었던 전두환 사진을 떼어내 한 시민이 높이 들어 보이면서 외치고 있다.
창원(마산)지역의 1987년 6월항쟁 사진. 마산 양덕파출소에서 걸여 있었던 전두환 사진을 떼어내 한 시민이 높이 들어 보이면서 외치고 있다.6월항쟁정신계승 경남사업회

<맨발의 청춘> 속에는 이 역사를 관통하는 세대의 '생명력'이 녹진하게 묻어있다. 경찰의 가슴팍에 꽃을 달아주는 사람들은 경찰을 때리거나 욕설을 퍼붓지 않는다. 장례식장에서도 '아이고, 아이고,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노래를 하듯 통곡을 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놀이와 저항이 다른 면이 아니다. 경찰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아저씨는 '여 달고 최루탄 좀 고만 좀 쏘소' 라고 농을 던지듯 말한다.

70년도에 단발령이 떨어져 머리를 강제로 잘리던, 치마 길이를 제한당하던, 통금 시간과 금지곡에 자유를 억압당하던 청년들은 그 난리통에도 '몰지각한 땐스광'이 되어 고고춤과 디스코를 춘다. 그 청년들을 향해 영상은 "젊은 그대 잠깨어 오라"를 틀며 환호한다. 월드컵의 거리에서 광장을 점거하고 환호하던 사람들은 노무현 탄핵 정국에도 광우병 정국에도 광장을 점거하고 환호한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워왔던" 오래된 기억들이 영상 속에 담겨 있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민주화', 두 가지 가치가 길항하며 성장했다. 하지만 그 길항관계 속에는 '한 세대'가 있었다. 그들은 4.19 혁명을 지켜보았다.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에 참여했고, 유신체제와 맞서 싸웠다. 80년 광주에서 목숨을 바쳐 싸웠던 기억되어야 할 사람들 역시 같은 세대다. 그 기억을 이어서 87년으로 밀어붙여 나간 것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을 자리매김 시킨 것도 같은 세대다.

<맨발의 청춘>은 양쪽으로 화면을 분할해서 보여주는 연출을 많이 사용했다. 3저 호황의 화려한 성장의 왼쪽으로 전두환이 조작한 수많은 간첩사건들, 성고문 사건과 고문치사 사건들이 스쳐 지나가고 88년 올림픽의 화려한 매스게임 옆으로는 88년 노동자대회에서 '노동악법 철폐' '부정축재 환수'를 외치는 머리띠 멘 노동자들의 모습이 지나간다.

이 영상은 화려한 산업화와 피맺힌 민주화가 우리 역사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었다는 점을 짚어낸다. 무엇보다도 그 역사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세대의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한 역사 안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다는 점을 환기한다. 얼마나 굉장한 것을 이루어왔는지 분명히 짚어내면서도 그 이면에 있는 것들을 짚어냄으로써 객관을 놓지 않는다. 신기한 것은 그런데도 <맨발의 청춘>은 분명히 오락물이라는 것이다. 영상 뒤에 깔리는 음악은 영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든다.

 창원(마산)지역의 1987년 6월항쟁 사진. 마산역 앞에서 시민들과 전경대원들이 대치하고 있다.
창원(마산)지역의 1987년 6월항쟁 사진. 마산역 앞에서 시민들과 전경대원들이 대치하고 있다.6월항쟁정신계승 경남사업회

5060세대가 만들어낸 '민주화', 87년 6월항쟁에서 이제 30년이 지났다. 시대는 더 많이 흘러왔고 역사는 새롭게 계속 구성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5060세대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5060세대를 위해 '헌정'한다는 이름에 걸맞게 <맨발의 청춘>은 다정한 목소리로 5060세대의 노고를 위로한다. 그대들이 무엇을 해냈고, 무엇을 이루어냈는지 알고 있다고.

5060세대가 없었다면 지금 여기의 정치와 사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 출발하는 역사들도 모두 그 위에서 새로운 탑을 쌓고 있는 것이라고. 5월의 광주에서 전두환에 맞서 싸운 사람들도, 87년의 거리에서 독재 타도를 외친 것도, IMF에 희생당해 해고자가 되어 거리에서 싸운 것도, 국제 금값이 떨어질 만큼 온 집안에 금괴를 털어다 나라에 가져다 준 것도 바로 "그대들"이라고 <맨발의 청춘>은 말을 건넨다.

박근혜의 콘크리트 지지율 30%가 무너진 것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다. 지난 5월 18일 6월민주항쟁30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개최한 <2017년 5월 대통령선거의 의미와 과제>에서 발제를 맡은 서복경 연구원은 "5060세대의 마음이 돌아선 순간"에 대해서 언급했다. 여전히 5060세대는 역사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들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구성할 것인가 고민할 시간이다. 5060세대가 싸워온 기억을 우리 사회에 소환하는 영상콘서트 <맨발의 청춘>이 지금 이 시기에 소중한 이유다.

영상콘서트 <맨발의 청춘>은 5월 22일부터 6월 9일까지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상영된다. 11시부터 20시까지 매시간 상영된다. (문의) 02-743-4667, http://kdemo.kr.
#맨발의청춘 #영상콘서트 #5060세대 #6월항쟁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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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항쟁 30년을 맞아서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가치와 의의를 정립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는 추진위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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