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람이 광주서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

경상도 사람의 전라도 살이... 5.18 전야제에 '미리내 색소폰 합주단' 일원으로 참여

등록 2017.05.24 11:16수정 2017.05.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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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합주단 미리내 색소폰 합주단 정용대 단장님(앞, 테너연주)과 테너 연주자 박기정 선생님
미리내 합주단미리내 색소폰 합주단 정용대 단장님(앞, 테너연주)과 테너 연주자 박기정 선생님김경내

오는 6월이면 귀향한 남편을 따라서 전라남도 장성으로 온 지 만3년이 된다. 3년을 살았지만, 나는 아직도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쓴다. 어떤 때는 재미로 일부러 더 억세게 쓸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경상도 사람이라고 차별을 받은 적도 설움을 받은 적도 없다. 괜히 자격지심이 들어서 나 스스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을 피하긴 했지만 그들이 나를 피한 적은 없다. 하지만 낯설고 물설어서 제풀에 서럽고 외로웠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지인의 소개로 광주의 한 색소폰 합주단에 가입을 하게 됐다. 서울에서 2008년도부터 색소폰을 불기 시작했는데, 다행히도 그냥저냥 들을 만하게 연주를 하는 셈이다.

미리내 색소폰 합주단 미리내 색소폰 합주단 단원들은 거의가 교육계에 이바지하시다가 퇴직하신 분들로서 같은 취미와 봉사활동이라는 같은 뜻을 가지고 모인 단체이다.
미리내 색소폰 합주단미리내 색소폰 합주단 단원들은 거의가 교육계에 이바지하시다가 퇴직하신 분들로서 같은 취미와 봉사활동이라는 같은 뜻을 가지고 모인 단체이다.김경내

처음 인사 차 합주단 연습실에 간 날, 어느 익살스러운 회원의 요청에 의해 자유곡으로 한영애씨의 '날개'를 불고, 신청곡으로 이미자씨의 '섬마을 선생님'을 불었다. 그렇게 얼렁뚱땅 심사 아닌 심사를 거쳐서 회원들의 환영을 받으며 합주단 '미리내'의 일원이 되었다. 열 명의 회원들은 기꺼운 마음으로 나를 받아 주었다.

미혼의 딸과 아들이 서울에 있고 아직 행정상의 주소가 서울로 되어 있어서 한 달의 절반 밖에 전라도에서 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합주단 행사에 많이 빠지게 되고 연습도 많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열 명의 단원 중 어느 누구도 눈치를 주거나 주의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미안해하면 '괜찮다'라며 다독여 준다. 특히 정용대 단장님의 '형편대로 해야지요'라는 한 마디는 마음의 위안이 된다.

어우렁더우렁 그냥 '우리'로 살 수 있었으면

5.18 행사 전야제  5.18 전야제 연주
5.18 행사 전야제 5.18 전야제 연주김경내

5.18 유가족들 5.18 행사 전야제에 참석한 5.18유가족 어머니들
5.18 유가족들5.18 행사 전야제에 참석한 5.18유가족 어머니들김경내

색소폰을 불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그보다, 이젠 사람들과 격의 없는 사이가 되어서 오랫동안 연습실에 가지 못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는다. 미리내 색소폰 합주단 단원들은 거의가 교육계에 이바지하다가 퇴직하신 분들로, 같은 취미와 봉사활동이라는 같은 뜻을 가지고 모인 단체이다.


'미리내' 색소폰 합주단(단장 정용대)이 봉사활동을 하는 곳이 제법 많다. 광주의 빛고을 노인타운, 효령복지관, 남광주역, 노대동역 등등 그밖에도 요청이 오면 언제든 어디든 달려간다. 작년에는 광주 서구청에서 주최한 '제1회 아마추어 음악콘서트'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 중에서 올해의 행사 가운데 5.17 행사의 연주는 내 가슴을 뜨겁게 했다. 작년에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를 연주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색소폰으로 연주만 했었는데 올해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허밍으로 부르기도 하고 색소폰으로 연주도 했다.


경상도가 전라도를 이렇게 했네, 저렇게 했네, 하는 가운데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광주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것이다. 그것도 5.18희생자 유가족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하면서 웃기는 했지만 머리는 착잡하고 복잡했다. 이런 환경, 이런 이유로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한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이제는, 다시는 이런 일로 이 자리에 서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며 연주를 했다.

소복에 검은 머플러를 목에 두른 어머니들이 연주하는 우리를 쳐다봤는데, 내 눈에는 나만 보는 것 같았다. 원망스런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또 미안했다. 이름 모를 영령들에게, 앞에 앉은 어머니들에게, 심지어 함께 연주를 하는 우리 단원들에게까지. 이 또한 자격지심이겠지만 어쩌면 이것이 조그만 나의 양심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새로운 정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을 해도 된다는 선언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수 있는 것처럼 경상도 전라도 따지지 말고 더불어 어우렁더우렁 그냥 <우리>로 살았으면 좋겠다.
#5.18 #임을 위한 행진곡 #색소폰 연주 #5.18유가족 #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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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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