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급식
국방부 블로그 동고동락
꽉 찬 잔반 통을 창고로 옮기는 과정은 고역이었다. 가득한 잔반 통을 들어 올려 창고 바구니에 쏟아부어야 했다. 잔반통이 무겁다 보니 들어 올리는데도 힘이 부쳐 문제였지만 무엇보다 냄새가 견디기 힘들었다. 여러 잔반이 뒤섞여 창고에서 풍기는 냄새는 아주 잠깐만 숨을 내쉬어도 속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이미 잔반들이 널브러진 창고의 광경부터 시선을 아득하게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고서야 설레임을 먹을 수 있었다. 차출로 인해 시간은 별로 없고, 식사는 빠르게 해야 해서 아이스크림을 한가롭게 물고 있을 순 없었기 때문이다. 차출된 병사 것들은 일 끝나고 먹으려고 냉장고에 따로 보관해놨는데 꽁꽁 언 상태였다. 그런데 2분 만에 먹어 치워야 했다. 차출되지 않은 병사야 식사한 뒤 막간을 이용해서 조금 쉬다가 훈련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었지만, 차출된 병사는 일이 끝나고 나면 다음 훈련 시간이 임박해 바로 이동해야 했던 것이다.
단단하게 언 아이스크림을 무슨 수로 2분 만에 먹을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이로 으깨면 먹을 수 있는 막대형, 쭈쭈바형도 아니고 힘껏 눌러야 나오는 팩에 담긴 아이스크림이니 불가능했다. 주먹으로 연발 팩을 쳐서 언 내용물을 으깨더라도 좁은 구멍으론 찔끔 나왔다.
그렇다고 아이스크림을 바깥으로 반출할 수도 없었다. 더운 날씨에 아이스크림 맛보기 힘든 훈련소에서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 안간힘 쓰다 결국 절반도 먹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만 했다. 사소한 것에 마음을 둔다고, 먹다 두고 가게 된 설레임 때문에 그날 하루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훈련병의 탈출구, '종교'휴일에도 훈련병은 이래저래 노곤할 수밖에 없다(관련 기사:
병영 현대화? 70년 전 미군 막사만도 못하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휴일 아니 한 주를 통틀어 그나마 걱정 없이 쉴 수 있는 시간은 종교에 참석할 때였다. 당장 눈앞에 조교가 없어 간섭받을 일, 기합받을 일이 없다.
입대 5일차쯤 훈련병들을 강당으로 불러 모으더니 군종 장교들이 종교를 소개했다. 훈련소에선 종교는 오직 불교와 가톨릭, 기독교만 존재하는데, 각 종교는 신병을 대상으로 많은 인원을 끌어들일 수 있으니, 홍보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매달 신병이 대략 천명 이상 입대하니, 매 기수 세례 인원만 수백 명에 달한다.
여기서 불교는 '마음의 힐링'을 강조하고, 천주교는 1년 다녀야 받을 수 있는 세례를 오직 훈련소에서 3주 만에 받을 수 있다고 선전했다. 세례 여부에 방점을 찍은 천주교와 달리, 기독교는 CCM 가수와 같은 초청 인사들이 온다는 점을 부각했지만 천주교처럼 훈련소 수료 전에 일률적으로 세례를 단행했다.
이러한 광경은 조기에 믿음을 대량으로 보급하려는 모습인 것 같았는데, 마치 학원이 실속 없는 '단기 속성 코스'를 남발하는 게 연상됐다. 훈련소에서 세례를 받았지만 막상 자대에 와서는 교회에 발걸음을 멈추는 장병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훈련소에서의 첫 일요일. 교회에 갔다. 헌법상 종교의 자유는 이곳에선 예외다. '참호 속엔 무신론자가 없다'고, 훈련소에서 예배 참석은 믿건 안 믿건 강제였다. 무신론자 건, 몰몬교 신자이건 불교, 가톨릭교, 기독교, 세 종교 중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 불만도 있을 법 한데 마주한 훈련병들은 종교 참석을 일종의 오아시스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