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가운데 바위에 새겨진 10명 의병장의 이름

정몽주, 임진왜란, 독립운동의 역사가 서린 울산 작괘천

등록 2017.06.02 09:56수정 2017.06.0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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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1551일대 계곡은 해발 1083m 간월산에서 내려온 산골 물이 장쾌하게 흘러가는 유원지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작괘천이라 부른다. 작괘천(酌掛川)은 술잔(酌)을 걸어놓은(掛) 물길(川)이라는 뜻이다.

작괘천의 수백 평도 넘는 들판(原) 같은 바위(石) 지대 석원(石原)은 긴 시간이 자연에 아로새긴 예술 작품들로 멋지게 꾸며져 있다. 공룡 발자국인 양 느껴지기도 하는 술잔 모양의 홈들이 바로 그것이다. 술잔을 걸어놓은 계곡, 작괘천이라는 이름을 붙인 옛사람들의 풍류가 놀랍다.


 작괘천(왼쪽 건물이 작천정)
작괘천(왼쪽 건물이 작천정)정만진

이곳을 찾은 옛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포은 정몽주이다. 1376년(고려 우왕 2) 이인임 등 집권 세력의 배명친원(排明親元) 정책에 반대하다가 언양으로 유배된 정몽주는 작천정 바위에 앉아 글을 읽었다. 정몽주가 앉았던 바위에는 '慕隱臺(모은대)'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포은(隱)을 그리워하는(慕) 곳(臺)이라는 의미다.

모은대 세 글자 아래에는 '秋田 金弘祚'라는 석각(石刻)이 있다. 울산 지역의 큰 부호였던 추전 김홍조(1868-1922)는 개인 재산이던 이곳 작괘천 일대를 사회에 기부하였다.

모은대에서 물길 건너편을 바라보면 2층 누각 작천정(酌川亭)이 숲 아래에 서 있다. 1902년에 건립된 정자이다. 물을 건너지 않으면 볼 수 없지만, 작천정 옆에는 1986년에 건립된 '선무원종공신 추모비'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 대항하여 싸웠고, 공로를 인정받아 조정으로부터 큰 상을 받은 의사들을 기려 세워진 비석이다.

 임란 의병장 10인의 이름과 벼슬명이 새겨져 있는 '선무원종공신 마애 석각' 바위 뒤로 '선무원종공신 추모비'가 보이는 풍경
임란 의병장 10인의 이름과 벼슬명이 새겨져 있는 '선무원종공신 마애 석각' 바위 뒤로 '선무원종공신 추모비'가 보이는 풍경정만진

모은대와 추모비 사이의 흰빛 너럭바위와 맑은 물 가운데에 눈길을 끄는 바위가 보인다. 흔히 '선무원종공신 마애 석각'이라 불리는 이 바위는 일제가 우리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광분하던 식민지 시대 말기인 1936년 10월 18일에 조성되었다. 바위에는 임진왜란 당시 언양 지역 의병장 열 분의 한자 이름이 붉게 새겨져 있다. 가까이 다가서서 각각 한 줄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분들의 성명을 읽는다.

金廷瑞(김정서)
宣克禮(선극례)
李彦良(이언량)
崔  環(최  환)
白斤孫(백근손)
金磻守(김반수)
金彦元(김언원)
柳文守(류문수)
朴延慶(박연경)
金應龍(김응룡)



추모비에는 이 열 분 외에 이섬(李暹), 신광윤(辛光胤), 신광윤의 아들 신전(辛荃) 세 분을 추가로 모셨다.

 귀양 온 정몽주가 앉아서 책을 읽은 곳으로 전해지는 바위 '모은대'
귀양 온 정몽주가 앉아서 책을 읽은 곳으로 전해지는 바위 '모은대'정만진

1919년 3 ‧ 1운동 때에도 작괘천과 작천정은 거사를 준비하는 장소로 쓰였다. 천도교 교인들은 작괘천 석원을 노천 교회당으로 사용하면서 성금을 모아 독립군 진지로 보냈다. 현대인들은 천연의 유원지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은 정몽주, 임진왜란, 독립운동의 민족정신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다.    


작천정에서 30m가량 아래의 바위에는 천도교 교인들이 '人乃天(인내천)' 세자를 새겨 두었다. 남북 분단, 빈부 격차, 지역감정 등의 현안들이 잘 해결되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인내천 바위 아래에서 소망해 본다.
#작천정 #작괘천 #선무원종공신 #임진왜란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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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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