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은 오랜 세월 좁은 골목길을 지켰다
이마주
어떤 마을 끝자락. 인적 드문 골목 모퉁이에 가로등 하나가 서 있었다. 관리가 안 된 탓에, 여름이 되면 가로등의 정강이까지 풀이 무성하게 덮였다. 가로등은 겉으로 땅에 단단히 박혀 있는 듯 보였지만 실은 속부터 삭아 있었다.
'이제 내 외다리를 가눌 수가 없어. 밤중에 바람이라도 몰아치면 모든 게 다 끝나겠지.'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신세타령에 수민이는 가로등이 할아버지 같다고 했다. 가로등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며 다시 쓸쓸한 생각을 떠올린다.
'어쩔 수 없어. 늙어서 쓰러지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닐 테니까. 모두가 다 그러겠지. 다리가 둘인 인간도 마찬가지일 거야.'나는 고향에 계신 아흔 넘은 할머니가 떠올라서 가슴이 아팠다. 담임과 달리 타인의 죽음을 연상하기에 너무 어린 3학년 학생들은 눈만 끔뻑거렸다. 생을 누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이에게 인생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었다.
한편, 가로등은 죽음의 문턱에서도 마음속 깊이 묻어 둔 소원 하나를 포기할 수 없었다. 가로등의 소원은 별처럼, 단 한 번이라도 별처럼 밝게 빛나는 것이었다. 그 소원이 기나긴 세월 동안 가로등을 한 자리에 계속 서 있을 수 있게 해 준 동력이었다. 하지만 농담이라도 별 같다고 말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여름이 지나자 가로등 허리까지 솟아올랐던 풀들이 이파리 끝부터 누렇게 시들어 갔다. 이제 가로등 불빛은 쓸쓸하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바람이 스산하게 부는 어느 해질녘, 날개가 파란 풍뎅이가 얼굴 앞 유리에 날아와 탁 부딪혔다. 자신의 소망을 확인하고 싶었던 가로등은 풍뎅이를 불러 세웠다.
"내 불빛이 저 별처럼 빛나니?""허 참, 이 가로등이 이상해졌네.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가."풍뎅이는 몇 마디 중얼거리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휙 날아가 버렸다. 그 장면을 보고 지환이랑 서진이가 킥킥 웃음을 터뜨리다 손으로 입을 막았다. 이번에는 나방이었다. 하얀 나방 한 마리가 말없이 가로등 이마 주위를 맴돌았다. 희망을 놓지 않은 가로등이 나방을 불렀다.
"혹시 저 별처럼 빛나 보이니?""흥, 이딴 불빛이 어떻게 별처럼 보인다는 거야!"나방은 파르르 날개를 떨면서 쏘아붙였다. "불쌍한 가로등"이라며 은비가 탄식했다. 늙어서 곤충들에게 저런 수모를 당하니 10살 먹은 꼬마들 눈에도 가로등이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읽던 책을 덮고 질문했다.
"가로등이 가여워 보이지요?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이 나이가 들어서 장래희망으로 적어냈던 인기 가수나 노벨상 받는 과학자가 못 되었어요. 그러면 어떨 것 같아요?"아이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치 단 한 번도 그런 상상을 해본 적 없다는 눈치였다. 다소 부산스러운 분위기에서 시후가 용감하게 한마디 뱉었다.
"그냥 뭐라도 해요.""빙고! 어떻게든 살겠지요. 가로등도 처음에는 자기가 꼭 별이 될 줄 알았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