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 우리집에 둥지 튼 엄마새의 가르침

등록 2017.06.05 11:31수정 2017.06.0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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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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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심을 준비하고, 모내기하고, 단양군 농민회 모내기, 대가초등학교 모내기 수업까지 마치고는 방전되어 버렸다. 일도 일이지만 논 삶을 때 논물 대느라 진을 다 빼고 행사와 수업 기획과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탈진해 버렸다. 백남기 농민 투쟁, 전봉준투쟁단 투쟁 아스팔트 농사와 촛불 항쟁, 병치레 후 조금 되살아나던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아주 사라져 버렸다.


몸은 공기와 물, 음식을 몸 안에 받아들여 생체 에너지로 바꾼다. 우리가 정신 또는 영혼이 이라고 하는 마음은 신경전달 물질이 전기로 소통하는 에너지 작용이다. 몸이 탈진하니 정신도 방전된다. 배터리는 수명이 다 하면 충전해도 금방 방전되어 못 쓴다. 지금 내 몸이 꼭 그 짝이다. 그것도 충전 조금 된 것 같으면 또 방전될 때까지 쓰니 대책이 없다. 이런 성마른 기질을 잘 알아 외부활동하지 않고 시골에 들어앉아 세상의 변두리에서 겉돌기만 했는데 세상일에 주제와 분수도 모르고 나대다 보니 몸과 마음이 견뎌내질 못한다. 지난겨울 피부가 다 타버린 것이 그 증거겠지.

지난 일요일과 화요일, 없는 에너지, 있는 에너지 다 긁어모아 모내기 행사와 수업 마치고 논밭을 떠났다. 새로 꾸민 편백나무방에 누워 두문불출하고 몸과 마음을 보듬고 있다. 아침에 편백나무방 맞은편 교육장에 읽을 책을 가지러 가다가 입구 신발장에서 귀한 손님을 발견했다. 보는 순간 마음이 환해지더라.

생명을 잉태하는 엄마새가 오셔서 예쁜집을 짓고 알을 품고 계시더라. 꼭 그 자리뿐인 딱 거기에 집을 지었더라. 산과 들에서 온갖 재료를 물어다가 공들여 집을 지었더라. 엄마새의 사랑과 신성함이 느껴지더라. 나를 보더니 눈을 똥그랗게 뜨며 놀라며 쳐다 보더라.

서로 한참을 쳐다보았다. 미안하지만 손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 했더니 엄마새가 놀라며 날아갔다. 손전화를 위험한 흉기로 생각했나 보다. 가만 들여다보니 귀여운 새알 두 개가 놓여 있다. 새집을 살펴보니 정말정말 정성이 가득 담긴 집이었다. 이 집을 짓느라 수백 수천 번을 날아다녔으리라.

인간이 하는 꼴은 이 작은 엄마새 한 마리보다 못하다. 새끼를 낳고 키워내는 정성도, 새끼 키울 집을 스스로 짓는 기술도,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순종하며 사는 모습도 그렇고. 이 작은 엄마새 앞에서 내 사는 모습이 추해서 난 한없이 부끄럽다. 내 집에 찾아와 새끼를 낳고 키워주어서 고맙다. 내 집에 오신 엄마새 한 마리가 나를 울게 하고 웃게 한다. 엄마새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근원부터 다시 생각하고 다시 태어나야지. 저 엄마새 한 마리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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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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