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투사 5명 발굴, 정부에 포상신청합니다"

추경화 독립운동사료연구가 ... 정기헌, 김기완, 박덕실, 강두석, 김홍권 선생

등록 2017.06.08 11:15수정 2017.06.0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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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경화 독립운동사료연구가는 항일투사 정기헌(鄭基憲, 1886~1956), 김기완(金淇完, 1883~1961), 박덕실(朴德實, 1901~1971), 강두석(姜斗錫, 1903~1991), 김홍권(金弘權, 1890~1937) 선생의 자료를 발굴해 정부에 포상신청했다고 밝혔다.
추경화 독립운동사료연구가는 항일투사 정기헌(鄭基憲, 1886~1956), 김기완(金淇完, 1883~1961), 박덕실(朴德實, 1901~1971), 강두석(姜斗錫, 1903~1991), 김홍권(金弘權, 1890~1937) 선생의 자료를 발굴해 정부에 포상신청했다고 밝혔다.추경화

항일투사 5명이 새로 발굴되었다. 8일 독립운동사료연구가인 추경화 충효실천운동본부 진주지회장은 호국보훈의 달에 항일투사 5명을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포상 신청했다고 밝혔다.

포상신청한 항일투사는 정기헌(鄭基憲, 1886~1956), 김기완(金淇完, 1883~1961), 박덕실(朴德實, 1901~1971), 강두석(姜斗錫, 1903~1991), 김홍권(金弘權, 1890~1937) 선생이다.

추경화 지회장에 따르면, 정기헌 선생은 창원 웅남면 완암리 출신으로 서울YMCA청년회에서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학문을 배웠고 1916년부터 마산에서 '지물포'를 경영하며 독립자금을 모아 독립군과 해외로 전달한 인물이다.

또 그는 장지연 선생이 별세하자 장례대표로 제문을 지었고 1921년에는 워싱턴태평양회의에 보내는 진정서에 창원군 대표로 활동하고 서명했다. 이같은 사실은 국가보훈처에서 발행한 독립운동사에 기재되어 있다.

정기헌 선생은 1926년 전남 광양에서 금광채굴권을 받아 운영할 때 일본의 방해 속에서도 독립자금을 모아 비밀리에 전달했고, 말년에는 창원 봉곡동에서 문맹퇴치에 힘썼다.

하동 청암면 출신인 김기완 선생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1919년 3.1운동 때 아우 김기범(건국훈장 추서)과 함께 앞장서서 활동한 인물이다.

김 선생은 하동읍 객주로 1920년 하동청년회 평의원으로 청년회관 건립시 동참하고 1922년 하동농민연합회 회장과 전국적인 단체인 조선노농총동맹 중앙집행위원,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임원으로 활동하다 여러 차례 일본경찰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러기도 했다.


선생은 백산상회 하동지점인 '남일물산'을 개점해 군자금을 비밀리에 전달한 공적도 있고, 1927년 10월 신간회 하동지회 간사와 집행위원장 등으로 활약했다.

진주 평안동 출신인 박덕실 여사는 진주3.1운동 지도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 한규상(韓圭相) 선생의 부인이다. 선생은 1919년 9월부터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혈성단'이란 항일단체를 조직해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또 선생은 1920년 9월 김두현, 박만선, 이근이 투사 등을 지원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대구감옥에서 6개월간 옥고를 치르는 등 수시로 투옥되었다.

강두석 선생은 진주 집현면 출신으로, 기독교 광림학교 졸업 후 일본 중앙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수재였다. 선생은 1927년 10월부터 신간회 진주지회 간사, 위원,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선생은 진주농민조합을 결성해 일제 타도를 외치다 1932년 2월 피체되어 2년간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는 등 수시로 구금당하였다. 선생은 광복 후에도 사회주의 계열에서 활약했다. 1991년 사천 벌리동에서 별세했다.

하동 양보면 출신인 김홍권 선생은 1962년에 유공자 공적을 심사할 당시 자료가 미비한 상황에서 가장 낮은 대통령 표창이 추서됐고, 이번에 재심 신청한 것이다.

추 지회장은 "선생은 1919년 4월 상해임시정부가 조직될 때 일본에서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국회에 해당)을 두 번이나 역임한 사실이 공적에서 빠지고, 국내 거주할 때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면서 주민들과 친족들을 동참케 하고, 중도일보 기자와 국장으로 근무 중 항일기사를 쓴 일로 해고당한 일도 공적에 포함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추 지회장은 "선생은 부산 동래에서 산해관을 경영하며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보내는 등 과로로 순국했으나 이같은 공적도 빠진 채 심사되다 보니 가장 낮은 등급이 추서되었으므로 재심사를 요구한다"고 했다.

추경화 지회장은 독립운동사료를 연구해 지금까지 많은 항일투사를 발굴했다.
#항일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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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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