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지선 스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국민께 드리는 글을 낭독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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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 스님이 지난 10일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낭독했던 '국민께 드리는 글'이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다. 지선 스님이 글에서 '용마(龍馬)'와 관련된 한 설화를 언급한 것에 청와대 참모들이 공감하며 크게 호응하고 있다고 일부 언론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지선 스님은 발언이 끝나갈 무렵 "존경하는 대통령님이 여기 참석해 계십니다"라며 "옛날 어느 한 고을에 용마가 나타났는데 온 고을의 힘깨나 쓴다는 장정들이 몰려와 모두 한 번씩 용마를 올라타 보는 바람에 용마가 지쳐서 쓰러지게 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설화에 등장하는 용마에 빗댄 것이다.
지선 스님은 이어 "새 정부가 들어서면 그간 억눌려왔던 많은 바람이 있으시겠지만 한꺼번에 이룰 수는 없는 상황도 함께 헤아려주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정부와 국민이 다시는 과거 오욕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용마는 여러 전설과 설화에서 길조를 상징하는 신비한 존재로 상상의 동물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적 기대를 받으면서 출범했지만, 너무 많은 기대가 정부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내각 인사와 추가경정예산이라는 큰 난제에 부딪친 상황에서 연일 격무에 시달리는 참모들에게는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제부터 시작"하지만 지선 스님은 단지 그런 의미로만 '용마'를 언급한 것이 아니었다. 지선 스님은 지난 10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용마는) 정부 사람들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가 아니다. 그 글은 국민들에게 드리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말을 전하는 대상이 청와대 참모가 아니라 국민이었다는 얘기다.
그는 "그동안 우리가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요구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요구를 다 들어주는 정치지도자는 없다"라며 "그러길 바라는 건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정치모리배와 다를 바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도자는 국민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대통령 됐다고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지선 스님은 이어 "왜 나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느냐고 실망해서는 안 된다. 또 작은 실수가 있다고 해서 등 돌려서도 안 된다"라며 "국민이 두들기고 압박해서 (정치 지도자를) 이끌어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이전 민주정부가 초석을 놓았다고 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국민들이 그런 마음으로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고, 또 이끌어 가길 바라는 마음에 드린 말씀"이라고 덧붙였다.
지선 스님은 이 같은 용마 설화의 출처를 묻는 질문에 지난 1919년 중국의 5.4운동 때 나왔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국은 승전국의 일원이었지만 파리 강화회의에서 독일이 가지고 있던 산둥 지역의 권익이 중국으로 반환되지 않고 일본으로 넘어가자 중국민중이 들고 일어났던 게 5.4운동이다.
먼저 학생들이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를 시작했고, 노동자들 사이로 시위가 번져갔다. 결국 북양 군벌 정부는 시위대에 무릎을 꿇었고, 일본으로 권익을 넘기는데 협조한 친일 관료 3명을 파면하고 시위 도중 체포됐던 학생들을 석방했다. 지선 스님이 '용마'를 말한 것은 거기에 마구 올라탔던 장정들이 아니라 중국을 변화시켰던 민중의 모습을 닮으라는 뜻이라고 볼 수 있다.
지선 스님은 "4.19로 시작해 5.18과 6.10을 거쳤던 민중이 촛불혁명으로 민주주의를 완성해 가고 있다"라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도자가 아니라 민중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라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