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2주를 함께 했던 양말. 내가 신었던 양말이 조금 두꺼워서 신발이 꽉 꼈는지 첫날 숙소에 도착하니 왼쪽 세 번째 발톱이 시꺼멓게 멍이 들어있었다. 얇은 양말 하나를 빌려서 2주 동안 거의 이것만 신고 걸었더니 마지막날 이런 양말이 되어버렸다. 안녕~!
이진순
숙소는 우리와 인연이 있는 순천의 학교와 졸업생 부모님 민박집의 경우만 하루 먼저 섭외를 했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아이들이 마을회관 등을 섭외했다. 정 구하지 못할 경우 노숙을 할 수도 있다고 내심 결의를 다지고 있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저기 이장님들께 전화를 돌리며 숙소를 구해주시고 숙소로 정해진 마을회관까지 경찰차로 안내해주시던 순천의 경찰분,
밭에서 일하시다가 지나가는 우리에게 어느 쪽으로 가냐고 물으시더니 방향이 같았으면 자신의 집에서 재워줬을 텐데 라며 웃으시던 아주머니,
벌교에서 장을 보던 우리에게 말을 건네시며 자신이 살고 계신 고흥의 마을회관을 숙소로 내주시겠다며 차로 데려다주시던 목사님,
목사님의 소개로 우리를 기꺼이 맞아주시고, 자신이 하실 마을 안내 방송을 우리들에게 하라시면서 즉석 방송 오디션을 진행하시던 이장님,
고추 모종심기 품앗이를 하시던 동네 어르신들이 숙소를 구하는 아이들을 보시고는 밭에서 즉석 회의를 하시며 "나는 좋아!"라며 의견을 내시던 생생한 마을회의 풍경,
어른들의 넉넉한 친절과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는 아이들의 맑은 에너지,
숙소 구하기를 처음 해보는 1학년들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드디어 성공하고는 터질 듯한 기운으로 달려오던 모습....
낯선 이들에게 작은 관심을 표하기도 무척이나 어색해진 우리 사회에서, 평소에는 만날 수 없는 신기하고 고마운 인연들을 길 위에서 많이도 만났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애써 '희망'을 찾은 것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단어가 따스한 온기와 함께 내 맘 속으로 쑥하고 밀려 들어왔다. 희망은 돈과 물질의 풍요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따스한 그 무엇에 있음을 생생하게 느낀다. 그래서 사람만이 희망이라 했던가?
혼자라면 엄두도 내지 않았을 200km가 넘는 여정을 함께 걸으며, 무거운 공용짐을 서로 미루지 않고 각자 체력에 맞게 자연스럽게 나누던 아이들의 모습, 처마밑에서 힘들게 밥을 하면서도 불평없이 척척 해내던 광경들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것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쌓인 자신감과 지혜 덕택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얘들아~! 많이 고마웠다는 말, 안했던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전한다. 고맙고 멋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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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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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없다는 학생 아홉과 교사 둘, 대책없이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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