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님이 써준 글씨
최성문
2014년 11월 20일, 나는 '하루를 쓰다' 달력 여섯 종류를 모두 들고 성공회대 교수인 신영복 선생님을 만나러 찾아갔다. 그해 봄, 선생님에게 '하루를 쓰다' 글씨를 써달라고 지인을 통해 부탁드렸고, 우편으로 날아온 글씨는 '하루를 쓰다' 작업에 큰 격려와 힘을 주었다(관련기사 :
'하루를 쓰다' 365명이 365일을 쓰다).
나는 강의실 맨 뒤에 앉아 신영복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다. 2년 전에 들었던 내용과 같았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 나온 책 <담론>의 내용이 된 마지막 강의였다.
신영복 선생님과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눈 건 딱 한 번이었다. 선생님은 늦은 밤인 오후 10시에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과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을 늘 마련했는데, 늦은 시간 탓에 참석한 건 단 한 번뿐이었다. 당시 나는 선생님이 강의하는 교육사회학 수업의 '교만한 청강생'이었다.
2012년 가을학기에 나는 신영복 선생님의 대학원 수업을 청강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굉장한 소식이었다. 알고 보니 이 수업은 원하는 사람에게 늘 열려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할 수 없는 형편인 사람에게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배움과 스승에 목말랐던 나는 책으로만 알던 선생님을 직접 만나서 가르침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거리가 멀고 교통이 불편한 건 별로 걱정되지 않았다. 대학원생이었던 지인의 소개로 함께 듣는 강의였기에 오후 8시 15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조금은 당당한 마음으로 강의실에 앉아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첫날부터 내가 예상했던 수업이 아니었다. 강의는 책 <담론>에 실린 글보다 더 짧게 정리된 교재를 강의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교재를 읽는 건 <국어> 교과를 배우던 시절 이후 거의 처음이었다.
게다가 수업은 내가 전혀 모르는 내용이 아니었다. 내가 몰랐던 새로운 걸 알게 될 거라는 기대감으로 매번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교로 갔지만, 그동안 내가 공부해온 내용을 확인받는 시간 같았다. 수업이 거듭될수록 점점 교만해졌다. 오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고, 날씨는 점점 추워졌고, 강의는 재미없어졌다.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부터 수업에 참석하지 않았다.
선생님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365명을 만나 365일을 쓰는 '하루를 쓰다'를 시작했을 때 선생님이 떠올랐다. 제호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은 분은 선생님이었다.
만약 내가 배움에 목마른 청강생이 아니었다면, 노숙인을 돕는 공공예술 프로젝트 '하루를 쓰다'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와 선생님은 만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선생님이 붓을 들어 글씨를 써주지 않았다면, 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지루하고 재미없던 강의만을 기억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지만, 선생님은 글씨를 써주었다. 선생님은 나에게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인연을 남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