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면 아카이브순천 송광면의 ‘송광면 아카이브, 추억의 전시관’
정기석
'마을자치 공화국'을 경영할 농민당을 그래서 지역자립을 위해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먹고 사는 생활기술 직업전문학교', 지역자치를 앞당길 '물고기'를 나눠줄 공익농민 기본소득제'를 실현하려면 농민당이 필요하다. 복지국가 스웨덴을 일군 사민당의 장기집권은 사민당이나 노동자들의 독단적인 힘이 아니라 농민과 연대한 이른바 '노·농동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스웨덴의 농민당은 진보적이거나 혁신적이지 않다. 전형적인 우파로서 그저 농민의 이익단체일 뿐이다.
하지만 좌파인 사민당은 사회복지라는 대의를 위해 기꺼이 우파인 농민당과 힘을 합친다. 대만(중화민국)에도 농민당이 있다. 1989년 창당한 당원수 약 6000명의 군소 정당이다. 타이완 독립운동과 토지 균분론을 주장하는 중도좌파적인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진다. 역시 정치 이념 보다는 농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존립목적이다. 대만의 민주진보당 집권기에 실행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농민들의 생계가 위협당하면서 반-국민당, 반-민주진보당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중도파인 민주진보당에 비해 다소 진보적인 점 말고는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다.
한국에는 농민당이 없다. 농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독자정당이 없는 것이다. 그럴 힘도, 돈도, 사람도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민원과 이해관계를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농해수위는 '농민당'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때가 있다. 아무쪼록 소속 의원들이 좌우, 여야 구분 없이 한 목소리로 농민들의 이해를 대변해달라는 뜻으로 들린다.
하지만 농민들은 농해수위의 그 별명을 흔쾌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도저히 농해수위를 농민들의 민생을 위하는 '농민당' 대신으로 생각할 수 없다. 과연 농해수위 의원들이 농민들의 이해를 진정으로, 제대로 대변해 왔는지 믿음을 주지 않는다. 차라리 농해수위 소속 국회의원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있게 들린다. 지역구가 농어촌이고 유권자가 농어민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이 농해수위를 선택한 의원, 자기 당내에서 힘이 없어 비인기 상임위인 농해수위로 밀려난 의원, 그리고 그 두 가지 조건을 다 갖춘 의원.
농민들은 2014년 9월, 농민단체 연대기구인 '국민과 함께 하는 농민의 길'을 출범시켰다. 그 자리에서 가톨릭농민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서로 연대해 더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대정부 투쟁을 결의했다. 농민들이 정부도, 국회도, 정당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면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다. 농민들 스스로를 믿는 방법이다. 농민들이 정치를 하는 길이다. 국가와 사회의 주인, 권리와 책임의 주체가 되는 길이다. 농민들 스스로 '농민당'을 만들어 국회로 진출해 정부를 감시하고 정권을 견제하는 길이다. 그렇게 '농민의,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정치'를 농민 스스로 나서서 하는 길이다. 그보다 더 좋은 '농민의 길'은 없다.
오늘날 '불량사회 한국'에서 지방은, 마을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공간으로 전락하고 쇠락했다. 지방은 아무리 지방자치를 해도 자치도, 자립도, 자조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방 주민으로서 최소한의 자긍심이나 자존감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방이란 변방의 사막에는 중앙에 대한 피해의식, 비굴함, 열등감, 모멸감, 적개심만 가득하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말대로 '중앙의 식민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물론 헌법 제11조 1항에 따르면 '지방'이라고 해서 중앙의 '식민지'가 될 수는 없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헌법에는 분명히 명시돼 있다. 법 대로 한다면, 중앙에 살든, 지방에 살든 그 누구도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법에 적힌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법은 법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어차피 법은 중앙의 기획과 의도로 쓰여졌고, 지방의 편에 서서 해석되지 않는다. 강 교수는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헌법 제11조 등은 아무도 지키지 않는 빈껍데기, 아니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면서, "지방은 정치ㆍ경제ㆍ문화ㆍ교육ㆍ언론 등 전 분야에서 서울에 종속된 '내부식민지'"라고 개탄하고 정의한다. 그는 그 원인으로 "지방정부의 자율성도 낮을 뿐더러 재정 독립성도 약하다"는 점을 든다.
특히 인사와 예산의 종속은 지방정부의 '중앙에 줄 대기' 경향을 키웠다고 고발한다. 그래서 지역균형발전기금 조성, 수도권규제철폐의 빅딜 등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지역주의'에서 '지방주의'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지역주의'는 지역 인사가 서울의 중앙권력을 욕망하지만, '지방주의'는 중앙집권 자체를 지양한다는 것이다. 곧 '지방주의'에서 서울과 지방은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지방주의'든 '마을주의'든 '마을자치 민주공화국'이 마을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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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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