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7일에 각 휴게실마다 새 선풍기가 달렸다.
김동수
노조 만든 지 3년만에 얻은 새 선풍기는 각 휴게실에서 쌩쌩하게 돌아간다. 고물을 주워 쓰다가 새 선풍기를 쓰니, 조금은 더 시원해진 느낌이다. 요 몇 년은 선풍기 고장 걱정 없이 여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청소노동자들이 "이제는 그나마 다행"이라며 옅게 미소 지을 모습이 떠오른다.
사실, 휴게실만 바꿔주면 됐다. 화도관, 비마관, 연구관 같은 계단 밑이나 옥의관 같은 물탱크실이 아니라 온전하게 시스템에어컨이 달린 곳을 학교가 제공해 주면 되는 일이다. 분명히 건물마다 남는 곳이 있다. 왜 그렇게 간접고용 노동자들한테 온전한 공간 내주는 걸 꺼리는지 이해가 안 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청소노동자들은 "거지같은 휴게실"에서 새 선풍기 바람을 쐬며 가까스로 땀을 식힌다.
"쓰레기 치운다고 쓰레기처럼 쉬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열악한 휴게실도 문제지만, 여름방학 때면 말도 안 되는 일도 해야 했다. 노조가 없을 때의 일이었다. 그 당시, 광운대 청소노동자들의 여름 나기는 진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들에게 그 순간의 일들을 처음 들었을 때 충격 그 자체였다. 정말 어찌 그렇게 살았을까.
방학만 되면, 예전 소장은 나이 든 노동자 중심으로 2~3개월간 무급 휴가를 줬다. 그들이 휴가 떠난 자리는 나머지 노동자들이 대신했다. 그것은 예전 소장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빼먹으려고 벌인 꼼수였다. 당연히, 일부 노동자들이 무급 휴가로 받지 못할 임금은 고스란히 예전 소장의 입으로 꿀꺽 들어가 버렸다. 다른 노동자들은 무급 휴가 떠난 노동자들의 청소구역까지 떠맡아서 두 배로 일하고도, 최저임금 그대로 받았다. 노동자들은 예전 소장이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다.
각자의 건물 청소를 마친 후에는 기숙사나 문화관, 도서관 열람실로 '파견 근무'까지 나가야 했다. 학기 중에는 노동자들이 담당하지 않는 곳을 방학 때면 자기 일처럼 했다. 다들 군말 없이 대걸레를 소총 들 듯 가지고 갔다. 그곳에 가서도 정해진 시간 안에 무조건 청소를 딱 마쳐야 했다. 그러지 못하면, 또 못한다고 "쿠사리(핀잔)를 들"어야 했다.
방학 때는 건물의 묵은 때를 벗기려고 필히 대청소 작업을 한다. 그런데 대청소를 하려면 물품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찔끔 주니, 자린고비처럼 아껴 써야 했다. 그래도 없으면 소장한테 가서 통사정을 해야 했다. 자존심 구겨가면서. 사정을 말한 후에 운 좋게 "가져가라"는 허락이 떨어지면, 노동자들은 혼자 들기도 무거운 락스통을 자기 담당 건물까지 꾸역꾸역 가져갔다. 그 순간만큼은 괴력을 발휘했다. 빨리 가져가야지, 안 그러면 또 빼앗길까 봐서. 들고 온 다음날은 어깨가 끊어질 듯 아팠다.
만약 통사정도 먹히지 않으면, 그때는 사비로 물품을 충당했다. 그렇게 청소노동자들이 타의로 아껴 쓰고 남은 물품은 모두 소장의 뱃속으로 다 들어갔다. 그 열악한 실정에서도 노동자들은 어떻게든 대청소를 끝마쳤다.
"와 진짜, 방학 때는 일이 두세 배 이상으로 늘었어. 그래도 참고 했어. 잘릴까봐. 더워죽겠는데, 땀 질질 흘리면서 일했어. 그때는 진짜 어떻게 일했는지 몰라, 바보같이. 노조 만드니까, 안 거야. 아, 우리가 진짜 노예였구나. 이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안 해도 되니까, 얼마나 좋아." - (광운대분회 최수연 분회장님)민주노조가 생기고부터는 소장의 만행으로 벌어지는 부조리들이 상당수 사라졌다. 노조가 없었을 때의 여름은 일도 휴식도 힘든 이중고의 생활이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노조가 있다고 쉴 때만 열악한 상황이다. 진짜, 이건 노조의 힘이다. 만약 노조가 없었다면, 지금도 '그때'처럼 살지 않았을까. 분회장님은 그 생각만 하면, 끔찍하다고 했다.
"노조가 생겨도, 참 안 바뀌는 건 안 바뀌네. 우리 복지 문제가 그래. 그렇게 휴게실 좀 옮겨달라고, 바꿔 달라고 말을 해도 안 해주잖아. 학교에 손님들 오면 좋은 곳 잘 보여주던데 말이지. 저기 80주년기념관 같은 데. 그때 각 관(건물)에 있는 우리 휴게실도 좀 같이 보여줬으면 좋겠어. 우리 사는 데 보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네. 아주 좋아 보인다고 칭찬하려나. 우리가 쓰레기 줍고 치운다고, 쓰레기처럼 쉬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치?" - (광운대분회 최수연 분회장님)나는 이곳 광운대에서 '직업에 귀천이 있음'을 똑똑하게 배우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이 겪는 현실을 아주 가까이서 지켜보면, 차별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비가 억수로 오고, 햇빛이 쨍쨍한 여름에도 청소노동자들이 내 집처럼 보내야 하는 휴게실이 그 중심에 있다.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해도, 간접고용이란 이유로 열악한 곳을 휴게실로 써야 한다.
그것을 조금씩 바꿔나가려고 서경지부 광운대분회 조합원들이 노력하지만, 그 간격을 메우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그렇게 청소노동자들을 알게 모르게 차별하면서 대학이 과연 "정직"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올 여름도 역시나 청소노동자들한테는 만만치 않을, '잔인한 계절'로 기억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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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천지 찜통 휴게실... "쓰레기처럼 쉬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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