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공무원들이 각종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반드시 '-함'이나 '-음' 또는 '-임'으로 문장을 끝맺음하는 형태를 취한다. '-다'로 문장을 끝맺는 일반적인 '서술식' 문장이 아니라 이른바 '개조식' 문장이다.
이러한 '개조식' 문장 방식은 일반적으로 문장을 간략하게 하고 요점만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다고 이해되면서 공직 사회의 공문서는 물론 기업의 보고서에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함', '-음' 문장은 일본의 '문어(文語)'에서 비롯돼
그런데 '-함', '-음', '-임'으로 문장을 끝맺는 이러한 문장 방식은 일제 잔재다. 즉, 일제 강점기를 전후로 하여 우리나라에 이식된 것이다.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에 「대일본제국 헌법」을 비롯하여 "권위가 요구되는" 법령의 문장이나 교과서 등에서 이른바 '문어(文語)'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문어' 문장들은 이를테면,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함(天皇ハ陸海軍ヲ統帥ス, 「대일본제국헌법」 제11조)"나 "규정에 따라 청원을 행할 수 있음(規程ニ従ヒ請願ヲ為スコトヲ得, 「대일본제국헌법」제30조)" 등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 일본은 이러한 문장 형태에 의하여 문장 자체에 '권위(權威)'와 위엄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었다.
일본에서도 사라진 천황 시대의 유산
본래 일제 강점기 이전에 우리 한글 문장에는 '-함', '-음'으로 끝맺음을 하는 형태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구한말 시기의 문서는 순한문 문장의 시기를 거쳐 한글이 사용되던 초기에는 거의 모든 글이 '-하니라' 로 끝맺음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후 일본의 법률이나 교과서 등 서적을 그대로 직역하면서 일본 문장을 그대로 모방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우리의 산학(算學: 수학) 교과서 등에도 '-함'이라는 글자가 처음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공문서의 경우에도 '-함'으로 끝맺음하는 일본 공문서 양식을 그대로 도입하였다.
그러나 정작 일본에서는 '-함', '-음'으로 끝맺음하는 이러한 '개조식' 문장이 1945년 일본의 패망과 함께 법률만이 아니라 공문서에서도 완전히 폐지되어 현재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다.
'-함', '-음'의 공직사회 보고서 문화, "영혼 없는 공무원" 양산
문장의 형식은 내용을 규정하며 나아가 글쓴이와 독자의 생각을 규정한다. 관행화된 특정의 문장 형태는 그에 따른 관행화된 특정의 문화와 의식구조를 만들어낸다. 또한 그것을 어떤 집단에서 장기적으로 사용하면 할수록 특수한 집단 문화를 만들어내고 그 자체로 집단에 속하는 구성원의 의식도 총체적으로 지배하게 된다.
개조식 문장은 대부분 주어가 생략되어 있고 혹시 주어가 있더라도 술어와 호응이 부합되지 않으며, 명사형의 단어가 많아 문장 안의 각 단어 간 인과관계도 분명하지 않다. 이에 따라 글의 흐름이 끊기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어렵다.
본래 명사화소(명사형 어미) '-(으)ㅁ'은 '확정성'이나 '결정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문장 마지막에서 '-함'이나 '-음'으로 끝내는 문장의 경우 그 특성은 더욱 강화된다. 특히 '-함'이나 '-음' 혹은 '-임'으로 끝나는 문장 방식은 정상적으로 글을 완료하지 않고 스스로 서둘러 결론을 내려 끝을 맺음으로써 상호 소통 대신 일방적으로 명령자 혹은 규정자 입장의 권위주의적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문장 형식은 결국 군대식 상명하복의 문화로 연결되며, 이는 「대일본제국 헌법」 등 일본의 '문어(文語)'가 당초 의도했던 바의 '권위주의의 강화'라는 목표와 정확히 부합한다.
이러한 개조식 문장은 대부분의 경우 주어가 생략된 채 전개됨으로써 글의 내용이 과연 글쓴이의 주장인지 아니면 타인의 주장을 인용한 것인지 애매하게 얼버무리기에 적당한 형태다. 따라서 보고서 작성자로 하여금 스스로 표절에 둔감하게 만들며 보고서 작성에 대한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게 된다. 더구나 서술식 문장은 자신의 생각과 일정 수준 이상의 내용이 있어야 문장을 작성할 수 있지만, 개조식 문장은 이곳저곳에서 빌려온 요점만 계속 나열함으로써 내용을 대충 채울 수 있다. 이로부터 "영혼 없는 공무원"이 양산되는 공간이 만들어진다.
시민의식과 민주주의를 위하여 개조식 문장을 버려라
이렇게 하여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개조식' 문장은 우리 사회에서 상명하복의 권위주의 문화와 책임 회피의 의식구조를 심화시켜온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시민의식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함', '-음', '-임' 의 '개조식' 문장 방식부터 버릴 일이다.
특히 공직사회의 '개조식 보고서' 형식은 하루바삐 바뀌어야 한다. 그럴 때 공직 사회도 비로소 블랙리스트 사태로 상징되는 상명하복의 문화와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조건을 만들 수 있다. 권위주의 탈피와 소통은 오늘의 시대정신이다. 이러한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개조식 문장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오늘의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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