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 복도 벽면에는 함석헌 선생님의 일대기를 정리한 연표가 게시되어 있다. 옆에 '씨알은 외롭지 않다'는 선생의 글씨가 보인다.
신영수
서재를 나오면, 복도 벽 한 면이 선생의 일대기를 요약한 연보로 가득 채워져 있다. 1901년부터 1989년까지 선생의 삶은 벽 한 면으로도 요약하기 모자란 우리나라 20세기 역사 그 자체였다.
1901년 근대화의 고장 평안북도에 태어난 선생은 그 유명한 오산학교에서 안창호, 조만식으로부터 민족정신과 신학문을 배웠다. 1919년 열아홉 살 되던 해에 3.1운동에 참여한 선생은 필화사건 등으로 몇 차례 경찰서에 수감되는 등, 일제의 탄압에 맞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이 장기독재를 이어가자, 장준하와 함께 <사상계>를 발간해 자유당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5.16쿠테타 이후에는 한일협정 반대, 삼선개헌 반대, 또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는 등 반독재투쟁에 앞장섰다.
1980년 전두환 정부가 들어설 때에는, 선생의 나이 이미 여든이었음에도 반독재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고문을 맡아 6월 항쟁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89년 선생은 여든아홉의 나이로 작고했다. 일제부터 전두환까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투쟁의 역사였다.
강의 듣고, 차 마시고, 잠도 잘 수 있는 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