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집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당 대표 취임 한 달을 맞은 소회와 향후 향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유성호
"가시나가 어디서!""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초선 시절 첫 의원총회 자리에서 아무개 중진 의원에게 들은 말이다. 단상에 나간 발언자와 생각이 달라 손을 들었더니 그 손을 "탁 치면서" 면박을 주더란다. 그는 "황당하기 짝이 없더라"며 당시 분노를 그대로 전했다. "그날 결국 발언하지 못했다"는 설움도 함께.
13년 뒤, 그는 한 당의 당수가 됐다. 지난 24일 당 대표 취임 한 달을 맞아 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발언은 거침 없었다. '진짜 보수' 경쟁 대상인 자유한국당을 향한 날선 비판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핀셋 증세'에 대한 지적까지.
가시나 소리를 듣던 '굴욕' 초선에서, '송곳 발언'이 특기인 당 대표가 되기까지 한 가지 생각은 분명했다. 남성 정치인의 도구로 전락한 일부 동료 여성 의원들을 보며 그는 꽃 대신 "투사"가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자유롭게 발언하면서) 많이 혼도 나고, (당에서) 쫓겨나기도 했는데, 오랜 세월 지나면서 '쟤는 원래 저런 얘야'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기더라"며 "차라리 고맙더라, 이혜훈을 여성으로 보지 않기 시작하니 (그 차별에서) 해방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바른정당을 저조한 지지율로부터 해방시켜야 할 또 다른 중책을 맡았다. 아래는 이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당은 무조건 딴지 거는 몽니 정당, 1970년대식 야당"
- 취임 한 달, 당 안팎으로 여러 변화가 있었다. 지난 한 달을 대표 스스로 평가한다면. "한 달이 됐다는 것도 모르고 지나올 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당 대표 일이) 꽤 고되더라. 그래도 많은 분이 바른정당에 기대하고 계시구나, 확인했던 한 달이었다. 지지율도 우리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약간은 올랐고. 그런 것이 우리 당한테는 참 소중하다."
- 최근 '바른정당 주인찾기' 일환으로 대구·경북 지역을 찾았다. 대선 과정에서도 그렇고, 당일 현장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배신자 프레임'을 당에 씌우는 장면도 포착됐다. 직접 들은 민심은 어땠나. "(대구·경북 지역을 가서) 유림과 향교 인사들을 처음 만나봤다. (유림은) 책에서나 들어본 것이지, 실존 인물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만나기 전에는 사실 굉장히 고루한 분들일 줄 알았다. 유교는 특히 군신 관계를 이야기하지 않나.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군신 관계 이야기를 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박 전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말씀하시더라. '배신' 이야기를 하는 분이 한 분도 없더라. 보수가 이기려면 하나가 돼야 하지 않겠나, 이런 말씀 하신 분들이 더러 있었다."
- 대선 당시와 차이점이 있다면."대선 때는 지방에 내려가면 '아니 어떡하려고 쪼개졌냐, 빨리 들어가라'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번에 내려가니 '끌어안아라'고 하더라. '어서 들어가라'와 '끌어안아라'. 현격한 차이가 있지 않나. 일부 '배신' 이야기를 하는 분들은 자발적으로 나온 건지도 불분명한 이들이다. 대구·경북 전체 정서는 아니다."
- 자유한국당에 새 진용이 들어섰다. 홍준표 대표는 특히 바른정당을 한국당의 '흡수 정당'으로 표현하며 '유일 야당 대표'임을 자임하는데. 이 같은 홍 대표의 태도를 어떻게 보나. "그런 억지 논리에 대응할 필요 없다. 지난 번 청와대 영수회담도 그렇다. 그냥 토라져 애처럼 구시는 거 아닌가. 그런 억지에 뭘 일일이 대응하겠나. 추경 표결도 봐라. 공당 간 합의를 헌신짝처럼 뒤집는 분들이 어떻게 얼굴을 들고 국민 앞에 나서는지... 기가 막힌다. 혁신이라는 말을 그렇게 오염시키면 안 된다. 대한민국은 전진하고 있는데, 자기들은 수십 년 전 권위주의 시대에 머물며 한 줌도 안 되는 태극기 세력이 정체성이고 방향이라고 말한다. 과거로 역행하는 것은 혁신이 아니라 반동이다.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5프로 정당이 된다. 무슨 미래가 있나. '영남 자민련'이 될 뿐이다."
- 한국당은 류석춘 교수의 '혁신위원회'를 필두로 쇄신 작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일각에서는 바른정당과 '보수 적자' 경쟁을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혁신위원의 면면도 공개가 됐는데. "(자유한국당이) 극우 수구 본색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다. 보수가 아닌 수구라는 민낯을 말이다. 그게 무슨 혁신이고 보수인가. 또 자기들만 야당이라고 했는데. 그 발언 자체가 구태 정치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거다. 무조건 여당 일 딴지 거는 게 야당 역할이라면, 정말 후진 정치다. 협력할 건 하고. 당 정체성에 맞춰 대안을 제시해 여당을 이끄는 게 생산적인 야당이다. 바른정당은 그렇게 했다고 감히 자부심을 가진다."
- 어떤 점에서 그런가."(애당초 정부 추경 방침인) 공무원 1만 2천명 증원이 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2575명으로 줄이는 것을 관철했고. 2575명 채용하는 준비 비용도 추경이 아닌 본예산에서 쓰는 게 맞다고 처음부터 주장해 목적예비비에서 쓰도록 했다. 우리가 주장하고, 여당이 따라오게 만들어 합의 처리한 것이다. 이게 선진 야당이다. 딴지 걸고 몽니 부리는 몽니 정당은 1970년대식 야당이다."
"선전도구가 되거나 '여자가 설친다'고 욕 먹거나... 꽃이 돼선 안 된다"- 여의도 정치판에서 여성으로 당 대표까지 오르기까지, 많은 벽에 부딪혔을 것 같다.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면. 또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듣고 싶다. "여성으로, 또 '직장맘'으로 사는 것은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사는 것과 같더라. 이런 세상이 다 있냐 싶어서 정치를 시작하게 됐는데. 정치를 하러 오니 바깥세상보다 더 부당한 거다. 아니, 바꾸고 싶어서 여길 왔는데 안쪽 세상이 더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첫 번째 의총(당시 한나라당)을 잊을 수 없다. 어떤 분이 나와 발언 하는데 나와 생각이 너무 달라 발언 신청을 하려고 손을 드니 옆의 한 중진 의원이 내 손을 탁 치면서 '가시나가 어디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그러더라. 발언? 못했다. 이런 당이더라.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제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정치권 일부 사람들은 여성을 '나 깨어 있는 사람이야, 나는 페미니스트야, 여성을 배려할 줄 알아'라고 선전할 때 쓰는 일종의 도구로 생각했다. 그냥 데리고 다니면서 하나마나한 주변부 당직 몇 개 주고. '나 정말 선진 정치인이야'하고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쓰는 거다.
나머지는 전부 '여자가 왜 여기 와서 설쳐' 이런 사람들이었다. 그런 두 종류의 인간뿐이었다. 진짜 여성을 정치인으로 키우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두 명 밖에 없는 그런 정당이었다. 자기 소신을 주장하면 가차 없이 징치가 돌아왔다. 혼도 나고 쫓겨나기도 했는데. 오랜 세월 지나다 보니 '쟤는 원래 저런 얘야'.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기더라. 한편으로는 고맙더라. 드디어 이혜훈을 여성으로 보지 않으니 해방이 시작되더라. 그 수밖에 없었다."
- 이 대표와 더불어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 대표, 정의당의 이정미 대표까지, 3당 대표가 모두 여성이다. "정치권 안에도 보면. 심상정 전 대표도 그렇고... 추미애 대표는 어떤 분인지 모르겠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저와 비슷한 스타일이다. 기쁨조가 아닌 투사형 스타일. 이런 정치인들이 오래 생존하고 독자적 지위를 확보한 것은 너무 다행으로 생각한다. 젊은 여성 정치 지망생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꽃이 되려고 하지 마라. 꽃이 되려고 하면 그 생명은 오래가지 않는다. 잠시 화려하고 활짝 피는 거 같지만 그렇게 쓰다가 버려진다. 절대 꽃이 되려고 하지 마라고."
"문재인 정부, 털 것은 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