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포럼 현장 모습
비전화공방서울
5월 30일의 봄밤. 서울혁신파크 참여동(21동)의 중정에 스무 명 남짓이 모였다. 이 자리에 이야기 손님으로 참석한 나는 모인 사람들과 함께 커피를 볶았다. 중정에 커피 향이 가득 찼다. 참여동에 있는 사람들도 궁금한 듯 기웃기웃했다. 비전화공방의 수동 로스팅 기구로 볶은 커피는 강, 중, 약 세 가지의 강도로 볶았다.
이피쿱은 커피를 만드는 노동자들이 모인 협동조합이다. '적정기업'은 이피쿱을 소개하는 수식어다. 이 단어를 만든 나는 그 속에 적정한 노동, 적정한 이윤, 적정한 보수, 적정한 건강, 적정한 의사소통, 적정한 고민, 적정한 시행착오 등을 통해 최대 이윤이 아닌 일의 즐거움, 삶의 행복과 같은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 바람을 담았다.
그것은 질문이기도 했다. 교과서(경제학 혹은 경영학)는 기업의 목적이 '이윤 극대화'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경영학은 이윤을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 각종 방법(수단)을 말하지만 그 이윤이 '어떤' 이윤이며 '무엇이' 이윤인지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윤은 단순하게 자본의 증식이며 기업은 자본의 이윤만 추구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기업이 추구하는 이윤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향한 것일까. 우리가 속한 사회와 공동체의 존립과 기업은 연결되지 않는 것일까. 기업의 이윤이 극대화되면 노동자뿐 아니라 기업이 속한 사회와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주어지는 것일까.
더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2015년 기준 2113시간)로 많다. OECD 회원국 평균(1766시간)은 물론 연간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1371시간)보다 902시간 길다. 과도한 노동은 일과 삶의 균형은 물론 다양한 불균형을 낳게 했다.
과잉이나 결핍이 아닌 '적당함' '적정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모인 사람들에게 그런 의미를 이야기하면서 '커피 한 잔에 담긴 적당함'을 어떻게 연결하면 좋을지 팁을 던졌다. 중요한 것은 적당함을 결정하는 주체는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도 내가 어떤 커피 맛에 반응하고 좋아하는지 아는 것도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커피를 얼마나 볶는지에 따라 신맛, 단맛, 쓴맛이 달리 표출된다. 자신에게 맞는 맛, 내 몸이 원하는 맛을 찾아가는 것이 적당함이 될 수 있다. 정도에 알맞고 나에게 들어맞는 것.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맛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테이블을 나눠 각자 바라는 적당함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시간. 봄밤은 깊어졌고, 목련 나무 아래 켜진 불빛은 이야기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적당함은 '대충하자'와는 다른,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무리하지 않는 조화로운 상태라는 정의도 나왔다. 사회적으로 적당함의 품 혹은 폭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적당하게 살기 위해선, 몸의 신호를 잘 듣고, 무엇을 포기하고 집중해야 하는지 잘 선택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테이블마다 한 달 동안 적당하게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정했다. 한 팀은 하루 단식을 정했다. 단순히 주어진 것을 소비하지 않고 재료의 본질을 찾고 나에게 적당한 맛과 형태를 알아가는 기회로 단식을 선택한 것. 다른 팀은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적당함을 넘어서는 순간이 무언가 결정하기 전 10분 이상 집중하는 시간을 갖자는 다짐을 했다. 나머지 한 팀은 '어, 그래' 운동을 시도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의견을 내거나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어, 그래"라는 말로 타인을 인정하는 것에서 적당함을 찾아보기로 한 것.
'열심히' 대신 '적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