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솔에 선풍기 1대... 소녀상 지킴이의 '여름나기'

"정권 바뀌어도 지킨다, 일본이 사과할 때까지" 폭염에도 위안부 소녀상 곁에 머무는 이들

등록 2017.08.05 16:12수정 2017.08.0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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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 채은솔씨(소녀상 옆)와 이형석씨(소녀상 뒤편), 박상현씨(소녀상 대각선 뒤편)
위안부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 채은솔씨(소녀상 옆)와 이형석씨(소녀상 뒤편), 박상현씨(소녀상 대각선 뒤편)신상호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 앞, 해가 다 뜨지 않은 오전이지만, 기온이 30도를 넘어서, 가만히 있어도 땀에 셔츠가 젖었다. 이날 최고기온은 34도로 예보됐다.

가마솥 더위에 소녀상을 지키는 채은샘씨 등 대학생 3명은 건물 난간에 올라서서 '이 땅에 평화를, 할머니들에게 명예와 인권을'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고 있었다. 그들이 입은 검은 티셔츠는 하얗게 소금꽃이 필 정도로 땀에 젖었다.

현수막 거는 일을 마친 대학생들은 태양을 피해 돗자리가 깔린 파라솔 밑으로 숨었다. 하지만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건 조그마한 선풍기 1대 뿐이었다. 선풍기는 더운 바람을 연신 내뿜었다.

땡볕 무더위, 파라솔과 선풍기 1대로 버티며 소녀상 곁 지켜

이형석씨(21)는 "지난해 겨울부터 농성에 참여했는데,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다"라면서 "겨울에는 꽁꽁 싸매면 되지만, 여름은 더위를 피할 방법이 없다"라고 했다. 농성장 한 켠에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세계 1억인 서명을 받고 있었다. 위안부 배지와 모금함도 눈에 띄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소녀상 철거반대, 대학생 행동'(아래 대학생행동)이 이곳을 지킨 지 오늘로 587일째다. 지난 2015년 12월30일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위안부 소녀상이 철거 위기를 맞자 대학생들은 '소녀상 지키기'에 나섰다.

위안부 소녀상은 24시간 대학생들의 경호를 받는다. 보통 2~3명이 1개조로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2교대로 돌아간다. 1명이 서는 일은 없다. 혹시라도 자리를 비울 경우, 소녀상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서다.


여의치 않을 때는 1명이 이틀 정도 머물기도 한다. 이날 만난 이형석씨도 지난 목요일부터 오늘까지 소녀상 곁을 지켰다. 정해진 인원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지원자를 받는다. 하루에도 2~3명 정도의 지원자가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 종로구 위안부소녀상과 소녀상을 지키는 농성장
서울 종로구 위안부소녀상과 소녀상을 지키는 농성장신상호

페이스북 통해 농성 지원자 관심 꾸준히 이어져


채은샘씨(25)는 "대학생들이기 때문에, 취업준비와 학업 등으로 꾸준히 상주하는 인원은 많지 않다"면서 "페이스북을 통해서 지원자를 받고 있는데, 취지에 공감하고, 동참하려는 의사를 보이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낮에는 무더위, 밤에는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모기와 매일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시민들의 격려와 응원은 큰 힘이 된다. 요리 모임에서 농성자들의 식사를 지원해주기도 하고, 제주도 등 지방에서도 올라온 사람들이 음료를 건네기도 한다.

직접 기부금을 전달하려는 시민들도 있지만, 기부금을 받는 대신 농성장에 놓인 위안부 배지를 구입해 달라고 권한다는 설명이다.

채씨는 "시민들이 오가면서 '힘내라, 고맙다'는 말을 건내고, 함께 몇 시간을 이야기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큰 힘을 받는다"라면서 "그런 응원을 들으면, 위안부 소녀상을 지키는 일은 전 국민이 하고 있는 것이고 위안부 문제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든다"라고 말했다.

"시민들 응원에 큰 힘, 소녀상 지키는 일에 뿌듯"

박상현씨(23)는 "오가는 시민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 장소는 단순히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기능을 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박근혜 정권 때보다는 농성하는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 때는 경찰들이 제약을 많이 걸었다. 농성장에서 자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갑자기 경찰 인력을 증원해 농성장을 둘러싸는 등 위압감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여기저기 채증 카메라도 농성자들을 감시했다.

박근혜 정부 땐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남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기도 했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가 터지고 촛불 집회가 연일 이어지면서, 경찰들의 위압적인 행동은 사라졌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불침번을 서는 고역은 덜게 됐다. 정권이 바뀌기 전엔 파라솔 하나 설치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올 여름에는 비교적 수월하게 파라솔을 하나 더 설치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농성을 계속하는 것은 정부의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정부의 행동을 통해, 일본 정부의 위안부 사과와 법적 배상을 받아내고, 소녀상이 철거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농성은 계속된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위안부소녀상과 소녀상을 지키는 농성장 모습
서울 종로구에 있는 위안부소녀상과 소녀상을 지키는 농성장 모습 신상호

새 정부 들어섰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은 '아직'

채씨는 "사실 위안부 동상은 일본의 전범 피해자의 상징"이라면서 "전범역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 정부 입장에선 위안부 동상은 거슬리는 존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은 새 정부가 직접 행동에 나서기를 희망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대학생행동 등은 8월 14일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서명안을 일본 대사관에 전달할 계획이다. 5일 현재 204만4465명(온라인 107만1859명, 오프라인 97만2606명)이 문제 해결 촉구에 서명했다.

위안부 동상 옆에는 빈 의자가 있다. 빈 의자를 채우는 것은 젊은 대학생들이다. 매일 같이 농성장을 지키는 이들이 있어 위안부 동상은 외롭지 않아 보인다. 광복절을 앞두고 지킴이 대학생들은 각자의 소망과 바람을 이야기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건강이 걱정되는데, 진정한 해방이 될 때까지 할머니들이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채은샘)

"위안부 소녀상을 지키는 활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갈등이 치유됐으면 합니다." (박상현)

"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영화시사회에도 초대받기도 하고, 응원도 많이 받았는데, 고맙다는 말을 전달하고 싶어요." (이형석)
#위안부소녀상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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