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10월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한국방송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인호 한국방송공사(KBS) 이사장이 자신을 둘러싼 편향적인 역사관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유성호
친일파 후손은 친일파가 아니다. 그래서 친일파의 죄악을 후손에게 연좌시킬 수는 없다. 친일파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반성을 요구하거나 비난을 퍼부을 수도 없다.
그런데 친일파 후손이 그냥 잠자코 살지 않는다면 어떨까? 친일파 후손으로 사는 데 만족하지 않고, 친일 청산을 적극 훼방하기까지 한다면 어떨까? 이런 경우, 친일파의 죄를 후손에게 따져야 할까? 이런 경우에도 친일파 후손이란 이유만으로는 아무런 비판도 가할 수 없는 걸까?
이인호 KBS 이사장의 조부 이명세다름 아닌 이인호 KBS 이사장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 2014년 9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논란을 무릅쓰고 임명한 이인호 이사장은 "세상이 다 아는 친일파" 이명세의 손녀다. 이완용도 아닌데, 세상이 다 아는 친일파라 할 수 있을까? 이 근거는 잠시 뒤 제시된다. 세상이 다 아는 친일파였던 게 맞다.
이명세는 총독부 어용기관인 조선유도연합회 상임이사를 지냈다. 이 지위를 활용해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미하고 한국인들의 강제징병을 부추겼다. 1942년 5월 조선유도연합회 기관지 <유도> 창간호를 통해서는 "우리나라가 승리할 수밖에 없으므로"라고 말했다.
이명세가 말한 우리나라는 우리들의 우리나라가 아니다. 일본이었다. 이인호 할아버지의 우리나라는 이토 히로부미나 아베 신조가 생각하는 우리나라였던 것이다. 일본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뒤 이명세는 "유교 정신을 황도 정신(일왕 통치이념)에 합치시켜 국가적인 대사업에 기여하자"고 전국 유림들에게 호소했다. 유교의 충효 정신을 일왕에 대한 충효 정신으로 연결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 해 10월호 <유도>에는 강제징병을 축하하는 시도 게재했다. 시에서 그는 "집안에서 아들 난 것 중한 일임을 알고/ 나라 위해 죽는 것은 가벼이 여겨야 하리"라고 읊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일본을 위해 죽으라고 등을 떠다민 것이다.
이명세는 해방 뒤에도 건재했다. 당연한 일이다.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고 기득권을 유지한 나라에서는 당연하다. 그는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의 비호 하에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성균관대학교 상임이사가 되고 1954년에는 이사장이 되었다. 손녀 이인호가 KBS 이사장이 되기 60년 전, 그는 대학 이사장이 되었다.
성균관대를 장악한 이명세는 뒤이어 유림조직 장악에 나섰다. 1960년 10월 23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그는 1945년 11월부터 유도회총본부를 이끈 독립투사 김창숙에게 "8천만 환을 유도회와 성균관에 기부할 테니 유도회 부위원장 자리를 주시오"라고 요구했다.
일제 치하에서 고문을 받아 두 다리가 마비되고 14년간 감옥에서 살았던 김창숙이었다. 그런 대쪽 같은 선비가 검은 돈을 받을 리 만무했다. 위의 <동아일보>에 따르면, 김창숙은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친일파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명세는 꼿꼿한 독립투사가 인정해준 '세상 사람이 다 아는 친일파'였다.
김창숙은 "불의한 돈을 받는 것은 공맹의 도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돈을 받고 이명세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은 공자와 맹자의 도에 어긋난다고 언급한 것이다.
이명세는 굴하지 않았다. 이승만과 자유당의 비호 하에 폭력배들을 동원했다. 그들을 내세워 김창숙 세력을 몰아내고 1957년 유도회를 장악했다. 독립투사가 세운 유림 조직을 친일파가 강제로 빼앗은 것이다. 해방 뒤에 일어난 일이지만, 이는 당연했다. 8·15 해방이 친일파들의 삶에 별다른 지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세 같은 조상을 둔 후손들은 친일 문제에 관한 한 가급적 입을 다문다. 친일파가 1945년 이전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이런 후손들도 친일을 함부로 옹호하지는 않는다. 친일을 혐오하는 대중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그 한(恨)이 하늘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 나섰다가는 친일파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지위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더욱 더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