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쓰고 그린 두번째 그림책 <냠냠빙수>를 보고 있는 윤정주 작가
최은경
"냠냠빙수 막 만든 거 아니다, 레시피도 있다"- 지난해 나온 첫 그림책 <꽁꽁꽁>을 보고 어른인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냉장고인데 아이스크림이 안 녹아? 현실성이 좀 떨어지네...'라고. 반면 아이들은 전혀 그게 문제가 되지 않더라."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실험까지 해봤다. 아이스크림이 완전히 녹아내리는지 안 그런지. 냉장실 온도를 어디에 맞춰 놓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냉장고 문을 살짝 열어 놓고 했는데, 완전히 녹지는 않더라. 맛은 있을까 싶어 만들어 봤더니, 불량식품처럼 맛있더라. 사실 딸기 빼고는 내가 다 싫어하는 거다.(웃음)"
- <꽁꽁꽁>에서 냉장고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음식들, 아이디어는 어디서 착안했나."아무리 더워도 창문을 닫고 잔다. 어느 날 한밤중에 거실에 나가 보니, 냉장고 소음이 엄청 크게 들리더라. 머리가 울릴 정도로. 냉장고에 대고 "조용히 좀 해" 소리치며 '냉장고 안이 시끄럽군' 하고 생각했다. 이런 데서 영감을 받아 쓴 게 <꽁꽁꽁>이다. 내가 만든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말이 되는지 실험도 해 본다. <냠냠빙수>도 만들어 봤다. 검색해 보면 레시피가 있다. 막 만든 게 아니다. 근데 사실 난 모든 여름 음료에 얼음을 빼고 먹는다.(웃음)."
- 아이가 없는데도 아이들 심리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게 놀랍다."내가 아이니까.(웃음) 그냥 수식어가 아니고 사실이다. 어른이 못 됐다.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나만큼 어릴 때 기억이 많은 사람이 있을까. 구체적인 장소, 이미지 같은 것들이 많이 떠오른다. 어떤 이유로 성숙이 덜 됐다 하더라도 사회생활을 통해 훈련받으면서 나아지고 하는 건데, 나는 그런 경험이 없었으니까 그러질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애들하고 놀 때면 시선을 잘 맞춰 노는 편이다.(웃음)"
- 만화가로서의 경험이 그림책을 쓰고 그리는데 어떤 영향을 주나."화가보다 만화 전공한 분들이 일러스트 쪽에서 수월하게 일하는 것 같다. 그림책은 회화보다는 영화나 연극에 더 가깝다고 본다. 그림 그릴 때는 내가 배우가 되는 기분이다. 내용 슬프다... 슬프려면 표정도 좀 젖어 있어야겠다, 즐거운 일이면 애는 좀 날아다녀야지, 애는 좀 모자라게 그려보자 하는 식으로 얼굴 캐릭터 같은 게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림책은 한 장면 한 장면 멋있게 그린다고 해서 그림책이 되는 게 아니다. 그림들이 연결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거라, 만화가들이 화가들보다 좀 더 낫지 않나 싶다."
-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뚝딱뚝딱 인권 짓기>,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 이명박근혜 시대에 만들어진 인권 만화다.(웃음) '엄마가 내 일기를 보는 건 인권 침해'라는 등의 만화인데, 온갖 기법을 실험해 본 책이다. 스스로 잘했다고 놀란 책이다.(웃음) 사실 책이 나오면 보지 않는다. 몇 년 있다가 본다. 창피하고 쑥스러워서. 4, 5년 지나서 보면 완전 잘 그렸다 싶은 생각이 드는데, <뚝딱뚝딱 인권 짓기>가 그랬다."
- 어느 정도까지 실험적인 걸 해봤나."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실험적인 거다. 내 인생의 화두는 안정이다. 불안하고 공포감이 있어야 상상력이 생긴다고 하던데, 그런 거 같다. 불안하니까 쉬지 않고 계속 작업을 했다.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에는 거기에 빠져 있을 수 있으니까. 또 돈도 벌 수 있고.(웃음) 그래서 되도록 슬픈 그림책보다는 즐거운 걸 하고 싶다. <뚝딱뚝딱 인권 짓기>에서 광산 노동자 이야기 그릴 때는, 목판화 느낌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했고, <멋지다 썩은 떡>(문학동네)는 이쑤시개로 그리기도 했다. 진흙 퍼다가 그린 적도 있고."
- 고민하는 것과 달리 그림은 평화롭고 평온하고 부드러워 의외다. "내가 그런 걸 갈망하니까 그런 그림이 나오는 거다. 너무 갈망한 나머지 그림은 따듯하고, 행복하고 사랑만 있는 것 같은. 나한테 없는, 나한테 갈망하는 형태로 그리게 되는 것 같다."
냠냠 빙수
윤정주 지음,
책읽는곰,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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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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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북극곰의 이상증세, 잊히지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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