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철
우리 동네 논에 이웃 농민이 양배추를 세 다랑이 심었다. 쌀 농사 지어봐야 생산비도 안나오니 이거저거 돈 된다는 걸 심어 보는데 올해는 양배추를 잔뜩 심었다. 비료 넣고, 밭 갈고, 이랑 만들고, 비닐 씌우고, 모종 심고, 균과 벌레 막느라 농약 치면서 가꿨다. 근데 그 많은 양배추가 밭에서 썩고 있다. 수확을 포기했다.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다시 비닐 걷고 밭 설거지할 거는 빼고라도 이 농민은 속이 썩어 문드러진다.
농민은 논에 왜 쌀이 아닌 양배추를 심었을까? 쌀값이 똥값보다 못하니까 똥값보다 나으리라 생각하고 양배추를 심었다. 하지만 양배추가 똥값보다 못하니 수확을 포기했다. 어디 양배추 뿐인가? 논에 쌀이 아닌 고추도 심어보고, 배추도 심어보고, 마늘도 심어보고, 사과도, 복숭아도, 심지어 폴란드에서 건너온 아로니아도 심어보지만 돈 되는 건 없다. 농민들이 토끼몰이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논에 쌀이 아닌 다른 작물이 심기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왜 그럴까? 정부가 얘기하는 생산과잉 때문인가? 쌀이 흔전만전 하는 건 쌀 수입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입밀 영향이 훨씬 크다. 해방 후 미군정이 원조밀을 풀어 우리나라 사람 입맛을 바꿨다. 지난해 한해 쌀수입량은 46만톤 정도다. 수입밀은 우리나라 한해 쌀 생산량인 4백만톤에 맞먹는다. 절반은 사료용, 절반은 식용이다. 즉 식용 곡물 6백만톤 중 삼분의 일이 수입밀이다.
이런 거 몰라도 우리는 하루에 한두끼 수입밀 식품을 먹는다. 간식도 주로 수입밀 식품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쌀이 남아돌고 논에서 양배추가 썩어나가도록 하는 주범이 수입밀이라는 거다.
우리는 영원불변토록 스마트폰, 자동차 팔아서 손에 쥔 달러로 수입밀 먹을 수 있을까? 어느 날 세계적 기상이변으로 미국과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밀을 주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이 25프로도 안된다. 자급률 80 프로대인 쌀을 빼면 8프로도 안된다. 쌀이 흔전만전인 것처럼 보이는 건 착시다. 양배추 썩어나가는 논을 바라보며 식량주권을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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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는 단양한결농원 농민이자 한결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아빠입니다. 농사와 아이 키우기를 늘 한결같이 하고 있어요. 시골 작은학교와 시골마을 살리기, 생명농업, 생태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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