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마을 경찰의 상징 돈키호테
유명숙
언제쯤일까? 기억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한다고 한다. 추억 속에서 오랜 기억을 더듬어 본다.
카스티야의 고도 톨레도를 떠나 세비야로 가는 도중 잠시, 푸에르토 라피세 돈키호테마을에 이를 때까지 머리에서 돈키호테가 떠나지 않았다. 기억 속에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불러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학창시절 접한 돈키호테는 도무지 상상 속에서조차도 이해 불가능한 인물이었다. 이해 불가능하다는 것은 나의 주관적인 관점일 것이다. 다시 오류 없이 언어가 주는 느낌을 살려 표현하자면 그 시절에 나는 세르반테스, 그의 돈키호테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문학적 소양이 부족했고 어려웠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돈키호테는 기사이야기에 심취되어 정말 기사가 되어 시종 산초와 말 로시난테를 끌고 모험을 떠난다. 모험 중 만나는 풍차를 적이라고 대적하며 칼을 휘두른다. 사람이 아닌 풍차를 적으로 여기고 싸워 수많은 상처가 나고 다치고 넘어진다. 그의 이런 황당무계한 광기를, 이룰 수 없을지라도 '꿈을 꾼다'는 도전과 용기로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시간이 지나고, 또 삶의 여정을 지난 뒤였다.
일주일 용돈 털어서 샀던 책 돈키호테, 유럽 여행에서 다시 만나다다시 돈키호테를 접하게 된 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다. 학부시절이었다. 학교 입구에 한 줄로 즐비하게 자리한 서점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나 분명 갑옷을 입고 창을 든 돈키호테와 그 옆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산초가 있는 표지와 마주쳤다. 그 순간 주저하지 않았다. 일주일치나 되는 용돈을 털어 돈키호테 원서(영어 버전)를 샀다.
그 후 돈키호테를 또 다시 만난 것은 벨지움 브뤼셀 스페인 광장에서였다. 분명한 날은 기억나지 않는다. 20년 전 가족이 함께한 여름, 서유럽 여행에서였다. 기념하기 위해 찍어두었을 돈키호테 동상 사진을 찾느라고 하루를 보냈다. 아무리 찾아도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20년이 지난 사진을 찾는다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였는지 모른다.
벨지움 브뤼셀, 스페인 광장에 돈키호테 동상을 세운 것은 스페인이 벨지움을 식민지로 두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0년 전에도 '돈키호테'와 '산초', 로시난테는 아주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고 느꼈다. 얼마나 스페인 사람들이 '세르반테스'를 자랑스럽게 느끼는지 한 순간에 확인되었다. 한 나라를 지배했던 것을 기억 기념하는 데 스페인의 대문호, 세르반테스를 내세운 것이다. 그들의 문화, 예술적 긍지와 자부심을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배를 당했던 아픔을 가진 나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벨지움 국민들에게 묘한 동지애를 느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