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풍토기 아라리촌사와 아라리풍토기 책 표지
이윤옥
유감스러웠던 것은 작가 김달수 씨가 말한 아라리항 입구의 우라모리신사(浦守神社) 까지는 직접 가보지 못했던 점이다. 안내를 맡은 구미코 씨는 기자가 우라모리신사까지 가고자하는 줄은 몰랐다면서 빤히 건너다보이는 항구까지는 작은 통통배를 타고 가야하는데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에 이 신사에는 고기잡이 배들이 안전을 빌곤 했지만 지금은 거의 찾는 이가 없는 신사라고 말했다.
멀리 등대가 보이고 고기잡이 배들의 안전을 지켜주던 고대 한국관련 신사를 바라다 보다가 발걸음을 공민관으로 돌렸다. 공민관 2층에는 제법 큰 도서관이 있었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통성명을 하고 나니 담당자는 《아라리촌사(安良里村史), 1997》와 《아라리풍토기(安良里風土記), 1971》라는 두 권의 책을 꺼내왔다. 《아라리촌사(安良里村史)》는 《아라리풍토기(安良里風土記)》를 답습한 것이라 크게 볼 내용은 없었다.
<아라리풍토기(安良里風土記)>에도 아라리 마을이 고대 한국관련이라는 말은 적혀있지 않았다. 다만 《시즈오카현사(静岡県史)》를 인용하여 이 지역에서 1915년 마제도끼(磨石斧)와 돌도끼(石斧), 토기, 그릇류 따위가 발굴되어 이곳에 원시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여겨진다고만 되어 있다.
흥미롭다고 해야할까, 어이없다고 해야할까, 아라리(安良里) 이름에 대해 말하길 "지금의 아라리(安良里)는 한자를 아라리(阿羅里)라고도 썼고 아라리(阿蘭里)라고도 썼다. 여기서 아라(阿羅)란 새로움(新)을 나타내는 것으로 고대에 황무지를 개척했다는 뜻일 것이다." 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아라(阿羅)라는 말이 새로움(新)을 뜻한다는 말은 일본어 공부 40년을 한 기자로서 금시초문의 이야기다. 그런 궁색한 말 밖에 쓸 수 없었던 것은 《아라리풍토기(安良里風土記), 1971》를 쓴 사람들이 고대 한국에 있었던 아라(安羅, 安那, 伽羅, 韓, 加良, 韓良)라는 나라를 알지 못했던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