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전국기간제교사연합회 정규직화 요구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관련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H고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처음 저는 분개했습니다. 최종합격자가 그 학교 기간제교사였기에, 제가 내정자의 불공정채용과정에 낚여 들러리가 됐다 생각해서입니다. 하지만 우연히 한 교육방송에서 그 분 수업을 듣게 됐을 때 '아, 졌다'란 말이 나왔습니다. 1년 내내 그 방송을 들으며 제 수업준비를 했을 정도로 명강의였습니다. 또 얼마 뒤엔, 그분이 기간제교사일 때 학생들의 선호도가 높아 학부모들이 정교사 임용을 요구해온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기간제교사로 같이 근무했던 한 동료 선생님이 S고 사립정교사공채에 응시했는데 사실 그것은 기간제교사로 근무한 내정자를 채용하기 위한 절차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료 선생님이 필기시험에서 만점을 받자 학교가 놀라 누구인지 불러봤고 시강에서도 월등하자 결국 그를 정교사로 채용했습니다.
'그 학교에서 기간제교사로 근무하며 인정받은 이'와 '공개채용절차에서 우수한 이' 중 누가 정교사가 돼야 할까요? H고처럼 근무 시 인정받은 이를 정교사로 채용하면 공개채용 응시자들이 배반당하고, S고처럼 공개채용절차의 우수자를 채용하면 기간제교사였던 이가 배반당합니다. 그렇다고 공개채용을 안할 수는 없습니다. 사립학교가 돈과 인맥으로 정교사로 채용하는 것을 막고자 교육청이 공개채용절차를 강제하고 있어 그렇습니다.
하지만 공개채용절차 강제는 불공정채용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돈과 인맥으로 누군가를 비교적 간단한 절차를 거쳐 기간제교사로 채용해놓은 뒤 거짓 공개채용절차를 거쳐 정교사로 전환하는 일이 사립학교에선 흔히 있으니 말입니다. 또 공정채용 시엔 위와 같은 딜레마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립학교의 기간제교사제도는 정교사 채용과 관련해 여러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꼭 바꿔야 하는 사립학교 기간제교사 및 정교사 채용 시스템어떤 기간제교사가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교육적 판단 때문이 아니라 윗선에 잘 보이고자 필사적으로 일합니다. 또, 다른 기간제교사를 경쟁상대로 여겨 그를 밟고 올라가려 합니다. 교직사회 피라미드를 뒤집을 수 없으니 자기만 위로 올라가야겠다며 악을 쓰고 또 씁니다. 그는 과연 교사 자격이 있을까요?
'그'는 과거의 저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제 눈높이는 아이들이 아닌 윗선에 맞춰져 있었고 행여 자리를 뺏길까 동료를 밟았습니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잘못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습니다. 그 삶은 자아가 분열되는 끔찍한 고통이었지만 달리 도리가 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런 제 곁엔, "왜 기간제교사들에게만 이런 일 시킵니까?"라고 항의할 줄 아는 같은 과목 기간제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제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 경계하지 말아요. 정교사 시켜준대도 이 학교에선 안 할 테니 마음 편히 있어요."
울었습니다. 저보다 어린 그 선생님 앞에서 엉엉 소리 내 울었습니다. 밟으려는 제가 미워, 그걸 알고도 이해하며 편히 있으라는 그 선생님께 너무 부끄러워, 저는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저는 '정교사 자리의 기간제교사' 였습니다. 분명 '정교사공개채용공고'에 따라 모든 시험을 거쳐 1등을 했지만 합격통보와 함께 제가 받은 것은 '1년간 기간제교사 근무 뒤 정교사'라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꼭 돼야만 한다는 간절함이 컸고, 간절함 속에서 저는 괴물이 되어갔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기간제선생님들은 저와 같지 않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교사인 위 선생님을 포함해 교단에서 보아온 기간제선생님들 모두 '교사다운 교사'였습니다.
하지만 괴롭게 고백하건데, 저는 부도덕한 괴물이었습니다. 괴물은 옳은 것을 가르치고 옳은 말과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괴물이 하면 그 일들마저 모두 괴물스럽다 치부됩니다. 무엇보다 교사가 괴물이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갑니다. 저는 이런 문제 때문이라도 정교사 자리에 기간제교사를 앉혀 그를 시험하며 괴물로까지 만들 수 있는 지금의 사립학교 기간제교사 및 정교사 채용 시스템이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립기간제교사도 '정교사백퍼학교'가 답저는, 이와 같이 위법한 '정교사 자리의 사립기간제교사' 문제 역시 '퍼플교사'를 통한 '정교사백퍼학교'가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립기간제교사 일자리는, 그 자체로 비인간적일뿐 아니라 희망고문과 배신, 채용비리, 그리고 괴물교사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니 더더욱 그 일자리 자체를 없애야만 한다고 합니다.
과거엔 그저 처벌규정만 마련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 과목 선택 학생들 이 줄어들 줄 알았다'는 등으로 피해갈 여지가 너무 많을 듯 합니다. 또 기간제법을 활용해 '정교사 자리의 기간제교사'를 무기계약직이나 정교사로 전환하란 개별 소송에 의한 해결도 있겠으나 이는 공정채용된 정교사와 수험생, 또 다른 유형의 기간제교사와의 차별이 생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이는 글③의
'정교사의 좁은문, 기간제교사는 만능키 가져도 좋을까요?'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따라서 저는 보다 근본적인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에 '사립학교 교사의 국가선발'을 대안으로 제안합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립학교 교사들은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고, 준공무원으로서 교육공무원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갖습니다. 그런데 돈을 주고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 이가 임용권을 갖지 않는 건 참 이상한 일 아닌가요? 또 설립자의 학교 운영의 자유도 인정해야 하나, 사립학교 대부분이 학생들을 임의배정 받는 만큼 교사도 국가가 선발해 임의배치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교육은 '공익'입니다. 일부라고 해도 기간제교사제도를 악용하는 사립학교들이 분명 존재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이 받습니다. 따라서 사립학교 교사채용을 더이상은 사립학교 재단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립학교에선 '퍼플교사'를 통한 '정교사백퍼학교'에 앞서 교사의 국가채용이 선결과제입니다. 이는 지난 노무현 정권도 못 이룬 사학법 개정이란 힘든 작업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①교사채용비리 등 비리 발생 시 국가가 그 학교 교사 채용권을 갖거나, ②교사의 보수를 사립학교들이 자체적으로 지급하도록 한 뒤 불가능한 학교의 교사 채용권을 국가가 갖는 것, 또는 ③일정수의 정교사 후보를 국가가 선발해 그 중에서 사립학교가 자체적으로 정교사로 채용하도록 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특히 ③은 이미 부분적으로 시행된바 있으므로 그 경험을 확대해 모든 사립학교들을 동참시킨다면 좋을 듯 합니다.
사립기간제교사의 77.1%가 '특정교과 한시적 담당 사유'의 기간제교사이지만 제 경험상 위법한 경우가 상당할 테니 적어도 사립기간제교사 자리의 50% 이상은 '정교사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과반수는 사립학교입니다. 그렇다면 사립학교 교사를 모두 국가가 채용해, 사립학교의 '본래의 정교사 자리'와 '퍼플교사 자리'를 모두 정교사로 채우고자 한다면 공립학교의 그것과 함께 정교사 자리는 획기적으로 늘 겁니다. 또 이 과정에서 사립학교의 투명성도 한층 높아질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나게 늘어난 정교사 자리들에 현 기간제교사들이 특별한 관문을 거치지 않고 앉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요? 이와 관련한 '기간제교사의 정교사전환'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연재글
'정교사의 좁은문, 기간제교사는 만능키를 가져도 좋을까요'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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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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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내 자리야, 넌 아무리해도 정교사 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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