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보다 귀한 딸그래도 광주로 향하는 김사복
더 램프
그러나 김사복은 결국 운전대를 돌리고 만다. 자신보다 귀한 딸이 기다리고 있지만, 눈앞에 펼쳐진 비극을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 선택이 자신에게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가늠도 되지 않지만, 그냥 눈 딱 감고 광주로 향한다. 그가 결코 잘 나서가 아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 때문이다. 맹자가 이야기한 인간의 조건.
나는 어머니께 비근한 예를 들었다.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이 그보다 훨씬 강한 이에게 막무가내로 맞고 있으면 어찌 하겠느냐고. 영문도 모르는 채 그 상황에 끼어들면 분명히 내게 여러 형태로 손해가 돌아오겠지만, 그래도 그것을 그냥 아무 일도 없는 척 하며 지나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그냥 본능적으로 말려야 하지 않겠냐고.
영화는 관객들에게 바로 그것을 묻고 있었다. 당신이면 어찌 하겠느냐고. 무엇을 하겠느냐고. 어느덧 30년이 훌쩍 지난 80년 광주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 역사의 무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신음을 하고 있다. 또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역사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아직도 우리가 비겁하게 고개를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5.18 광주항쟁과 적폐청산어쩌면 5.18 광주항쟁에 대한 재조명은 촛불시위로 잉태된 문재인 정부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순히 현 정부가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 때문이 아니다. 5.18 광주는 한국전쟁 시 민간인 학살 이후 현재 생존해 있는 사회 구성원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국가가 국민에게 가한 가장 어처구니없는 폭력으로서, 다시는 이 땅에 벌어져서는 안 되는 비극이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30년도 넘은 광주를 들먹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이미 보상은 다 된 것 아니냐며 힐난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결국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탄생에는 5.18 광주항쟁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이유도 크게 한 몫을 했기 때문이다.
과연 그 당시 학살에 참여했던 이들이 제대로 단죄를 받았다면, 우리의 민주주의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갔을까? 사회 구성원들이 80년 광주의 진실을 공유하고, 광주의 아픔을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절절하게 승화시켰다면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비극이 일어났을까?
아니다. 5.18 광주가 제대로 조명되었다면 우리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혼란은 그 날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 사회가 지불하고 있는 값비싼 비용이다.
최근 <택시운전사>의 천만 관객 기록과 JTBC의 보도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적폐청산을 시대정신으로 내걸었던 촛불시위의 결과이다. 우리는 5.18 광주를 직시함으로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아야 하며, 다시는 국가가 국민에게 잘못된 폭력을 휘두를 수 없게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23일 손석희 앵커는 뉴스의 마지막 곡으로 'It's Never Too Late'이라는 노래를 골랐다. 절대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