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툰] 史(사)람 이야기 5화: 조선 알파고, 정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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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게이머의 원조? 조선 후기 바둑 최고수 정운창대한민국은 명실공히 '게임의 왕국'이다. IT 인터넷 기술이 여가의 오락과 맞물려 게임산업으로 발전했고, 온라인 게임은 주요한 수출 아이템으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오락문화도 분명, 그 연원(淵源)이 있을터!
수 천년동안 한반도에서 유희(遊戱)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한 바둑 역시, 우리 민족의 오락 유전자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중국의 당 현종은 '기대조(棋待詔)'라는 벼슬을 두었는데, 이는 황제의 바둑에 응대하는 관직으로 당대의 바둑 최고수에게 헌정되는 자리였다고 한다. 동양 문화권을 공유한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바둑의 최고수가 없을리 없다.
기록 문화가 상세한 조선시대에 들어서 바둑 고수에 대한 전기(傳記)나 기사(記事)들이 소소하게나마 여러 문인들의 문집에서 보이는데 그 가운데 처음으로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덕원령(德原令)'이라는 사람이다.
왕족으로서 단순히 여가(餘假)의 잡기로 바둑을 좋아했다고 한다. 주목할만한 점이 있다면, 명나라 사신이 조선으로 올 때 기객(棋客)들도 사신단의 일원으로 정사(正使:사신단의 우두머리)를 시종하였는데 '덕원령'은 공격형 바둑을 구사해 이들을 잘 대적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 오면, 여기(餘技)에 불과했던 바둑이 전문직업으로 인정돼 프로 바둑꾼들이 대거 등장하는 흥미로운 현상도 생겼다. 바로 정운창이 프로 기사의 첫 관문을 개척한 인물이다.
척재 이서구(1754-1825)의 '기객소전'과 문무자 이옥(1760~1815)의 '정운창전'에 그의 삶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는데, 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그의 출신지인 전라도 보성이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국수(國手)가 탄생한 곳이 호남 지역이니, 당시 조선시대 학자들도 이 지역에서 많은 기객들이 출현한 점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은 듯하다.
정운창은 보성군 평민으로 태어나 10여년 동안 집안에서 바둑 인재로 길러졌는데, 호남에서 더 이상 대적할만한 기사가 나오지 않자 한양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이옥의 '정운창전'에 따르면 처음 그가 한양에 올라왔을 때 거지 몰골의 그를 상대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운창은 한가지 꾀를 생각해 내고 바둑대회에 나아가 당대의 고수 정박(鄭撲)과 판을 벌이게 된다. 정박과의 세판 승부에서 모두 이긴 정운창은 하루 아침에 그 명성이 장안에 퍼지게 되면서 마치 혜성과 같이 바둑계에 등장했다고 이옥은 '정운찬전'에서 담담히 적고 있다.
이후, 운창은 각기 다른 장안의 고수를 격파해 나갔고, 급기야는 바둑의 2인자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막강한 실력을 지닌 훈련대장 이장오(李章吾)마저 꺽는 파란을 일으켰다. 마지막 남은 고수는 김종귀였는데 그는 평안 감사의 비장(裨將)으로 선발되어 관서(關西)에 머무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