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12월 개미마을 성탄절에 찾아온 김수환 추기경이 전과자 출신의 신자들에게 영세를 주고 있다. 오른 쪽 하얀 미사보를 쓴 사라 김혜경.
김혜경
1950년 12월 추운 겨울밤이었습니다. 스무 살의 가톨릭 신자 '마리아'(세례명)는 술주정뱅이와 전과자들이 모여 사는 동경의 개미마을로 향했습니다. 대학교수의 딸인 마리아는 넝마주이로 살아가는 개미마을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찾아갔지만 아이들은 그녀에게 돌을 던졌고 남루한 옷을 입은 여자들은 "꺼지라!"고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가진 이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입니다.
마리아는 개미마을 사람들처럼 누더기 옷을 입었습니다. 넝마 통을 메고 동경 시내를 다니며 폐품을 주었습니다. 거리의 떠돌이 아이들을 데려와 막사에서 같이 살았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고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폐품을 열심히 주웠습니다. 그녀가 어느 날 각혈했습니다. 자신을 돌보지 않은 탓에 건강이 극도로 나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엎친데 덮인 격으로 개미마을 철거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차라리 나를 스끼야다리 위에 데려다 놓아라. 그곳에서 죽을 것이다."죽음을 불사한 그녀의 청원서에 놀란 동경시청은 '에다가와'에다 넝마주의 공동체 부지를 내주기로 했습니다. 단, 2500만 엔을 내야한다는 조건을 달아 통보했습니다. 생명이 꺼져가는 마리아는 개미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1958년 1월 23일 스물여덟의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체온이 식어버린 그녀의 손엔 묵주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녀의 일본 이름은 '도시꼬'입니다.
"마리아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