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의 갈등, 그 중심에 괌이 있는 이유

70년 만에 동아시아·태평양 국제정치의 초점이 된 괌

등록 2017.09.03 14:42수정 2017.09.0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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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이 입으로 벌이는 전쟁. 현재까지는 입으로 하는 전쟁이다. 이 전쟁의 주 무대 중 하나는 필리핀 동쪽 서태평양에 떠 있는 괌이다. 괌을 화두로 북한의 도전과 미국의 응수가 전개되고 있다.

지난 8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은 "또다시 핵으로 미국을 위협하면 그동안 세계가 볼 수 없었던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북한은 "중장거리 탄도로켓 화성 12형으로 괌 주변에 대한 포위사격 작전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위협했다. 8월 29일에는 화성 12형을 일본열도 위로 발사한 뒤 "침략의 전초 기지인 괌도를 견제하기 위한 의미심장한 전주곡"이라며 압박했다. 

말로 하는 전쟁이 실제 전쟁으로 발전하든 않든, 지금 상황은 괌 원주민들한테는 섬뜩한 역사를 떠올리게 할 만하다. 약 120년 전, 약 70년 전에도 괌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을 동아시아·태평양 패권 쟁탈전의 무대로 제공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반도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무대로 제공됐듯이, 괌에도 그런 역사가 있었다.  

 괌.
괌.김종성

외로운 섬, 미국의 영토가 되기까지

콜럼버스, 바스코 다 가마, 마젤란 등이 추동한 역사가 지금까지도 출현하지 않았다면, 괌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제주도(1846km2)의 3분의 1도 안 되는 괌(546km2)은 외부 세계와 교류할 일이 거의 없는 외로운 섬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콜럼버스 등의 모험으로 세계 곳곳의 바닷길이 하나로 통합되고, 이런 모험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서유럽 국가들이 식민지 개척을 목적으로 이 길을 선점했다. 이로 인해, 대양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서유럽의 침략을 받고 식민지로 전락했다.

적도 이북의 서태평양 섬들을 지칭하는 미크로네시아. 그 미크로네시아에 속하는 괌도 그런 운명에 노출됐다. 마젤란의 눈에 발견된 이 섬에도 서유럽의 손길이 닿았다. 이 과정이 <탐라문화> 제37호에 실린 김희열 제주대 교수의 논문 '미크로네시아 개관: 식민지배와 독립'에 이렇게 정리돼 있다.


"포르투갈인 페르디난트 마젤란이 세계를 항해하다가 1521년 이 섬을 처음 발견했으며, 1565년에는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장군이 괌을 스페인 땅으로 주장했다. 1668년 이곳에 처음으로 가톨릭을 선교한 산 비토레스 신부가 도착하고 스페인의 식민지배가 시작됐다. 1668년에서 1815년까지 괌은 멕시코와 필리핀을 오가는 스페인 무역항로의 주요 거점 역할을 했다."

조선에서 연산군이 쫓겨나고 중종이 왕이 된 뒤인 16세기 초반, 스페인은 바닷길에 대한 지배력을 통해 유럽 최강국이 되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4년 전인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해군에 참패하고 뒤이은 제해권 쟁탈전에서도 스페인이 완패하면서, 17세기 초반부터 스페인은 유럽의 2류 국가로 전락했다. 그런 스페인이 17세 후반인 1668년 괌에 대한 식민 지배를 개시한 것이다.


19세기 후반까지도 서유럽 국가들의 경쟁은 주로 대서양과 인도양을 무대로 전개됐다. 태평양을 무대로 한 식민지 쟁탈전은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 아메리카대륙의 사정도 이 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아메리카대륙 동부에서 시작된 미국인들의 식민지 개척은 토착 인디언들과의 경쟁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미국인들이 인디언과의 전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둔 시점은, 조선에서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벌이진 지 2년 뒤인 1886년이다. 이렇게, 1886년까지 인디언들이 미국인들의 서진(西進)을 견제했기에, 미국 서쪽의 태평양은 그때까지는 조용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한물 간 스페인이 오랫동안 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그런 요인도 작용했다. 스페인이 미국 남쪽의 쿠바를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인디언과의 전쟁에 집중하느라 서쪽 태평양이나 남쪽 쿠바에 집중하지 못한 탓에, 스페인이 괌이나 쿠바를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인디언과의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이 동아시아·태평양과 쿠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괌·필리핀·쿠바 등이 미국인들의 눈에 새롭게 비치기 시작했다. 특히 괌과 필리핀은 동아시아 진출을 위한 해상 정거장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괌·필리핀·쿠바는 스페인 땅이었다. 그래서 이곳들을 빼앗자면 스페인과 싸워야 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일차적으로 쿠바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미국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쿠바 독립군이 1895년 무장봉기를 일으키자, 스페인은 1896년 진압군을 파견했다.

그런데 미국이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쿠바 아바나항에 파견한 미국 전함에서 원인 모를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미군 266명이 사망했다. 그러자 미국은 스페인의 행위로 단정하고 1898년 선전포고를 발포했다. 신흥 강국 미국이 한물 간 제국 스페인을 상대로 태평양·쿠바 쟁탈전을 위한 싸움을 도발한 것이다. 미·서 전쟁, 미국·스페인 전쟁은 이렇게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이 괌을 점령하는 과정이 <일어일문학> 제62집에 실린 대구대 최장근 교수의 논문 '미국의 영토 형성과 독도 고유 영토론에 대한 인식'에 이렇게 정리되어 있다.

"미국은 쿠바는 물론이고, 미 동양함대를 필리핀에 파견했다. 이때 필리핀 독립군은 미국의 편에서 스페인군을 공격했다. ······ 미국 순양함 찰스턴호는 괌을 점령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승리를 거두고 태평양의 신흥 강국으로 떠올랐다. 그 결과로, 괌과 더불어 쿠바·필리핀·푸에르토리코를 스페인한테서 빼앗고 이들 지역에 군정을 실시했다. 괌은 이렇게 해서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옛 제국 스페인을 꺾고 태평양을 차지한 미국. 그 미국의 승리를 상징하는 섬 중 하나가 되었다.

괌과 더불어 필리핀을 점령한 뒤부터 미국은 동아시아에 적극 개입했다. 괌과 필리핀을 장악함으로써 동아시아를 향한 해상 전진기지를 구축하게 된 결과였다. 1905년 7월 29일에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고, 미국은 일본의 조선 침략에 협력한다"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체결된 것도, 태평양상에서 미국이 기득권을 갖게 됐음을 반영하는 사건이었다.

 미국·스페인 전쟁 상상화.
미국·스페인 전쟁 상상화. 위키백과

괌을 차지한 자, 아시아·태평양의 지배자가 되다

괌을 발판으로 동아시아·태평양에 기반을 구축한 미국의 전철을 모방한 나라가 있었다. 바로 군국주의 시절의 일본이다. 일본은 1941년 12월 8일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함과 동시에 괌과 필리핀을 침공했다. 미국이 괌을 차지한 지 약 40년 만에 일본이 도전을 제기한 것이다.

1898년에 미국이 괌과 더불어 필리핀·쿠바 쟁탈전을 동시에 벌인 것처럼, 일본도 괌을 비롯한 여러 지역을 동시에 건드렸다. 이때 일본의 수중에 떨어진 괌은 1944년 7월 미군이 재점령하기 전까지 2년 반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괌에서 미국은 스페인을 상대로는 1승만 거뒀지만, 일본을 상대로는 1패에 이어 1승을 거두었다. 일본의 괌 점령과 미국의 재점령은 이 섬이 동아시아·태평양에서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를 잘 보여주었다.

동아시아·태평양 국제정치에서 괌이 갖는 중요성은 그 후 훨씬 더 커졌다. 초기의 괌은 미국과 동아시아를 잇는 교통 요지 정도의 의미를 띠었지만, 앤더슨 공군기지의 존재가 상징하듯이 괌은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군사기지로 발전해 갔다. 이런 측면이 김진환 건국대 연구교수가 <민족 21> 2010년 5월호에 기고한 '괌에서 싹튼 7·4 성명, 동북아 정세변화와 남북의 동상이몽'에 이렇게 정리돼 있다.

"괌은 북쪽으로는 일본, 서북쪽으로는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있다. 그리고 괌의 미 해군 기지들은 서쪽 해안, 공군 기지들은 북쪽 절벽 끝에 위치해 있다. 누가 보더라도 괌 미군의 주요 작전 지역이 동북아시아임을 확연히 알 수 있는 배치다. 동북아시아 신속기동군으로 변화 중인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그리고 미국이 중국 견제의 선봉에 세우고 싶어 하는 대만의 후방을 괌 미군 기지들이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셈이다."

1898년 미국이 스페인에 도전할 때, 1941년 일본이 미국에 도전할 때, 괌은 전쟁의 무대가 되었다. 전쟁의 결과로 괌을 차지한 자가 아시아·태평양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런데 70년 만에 또다시 괌이 국제정치의 초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경제제재 해제 및 수교를 얻어낼 목적으로 괌 포위 사격을 운운하고 있다. 괌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1승, 일본을 상대로 1승 1패를 거둔 미국이 지금은 북한으로부터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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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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