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김종성
외로운 섬, 미국의 영토가 되기까지콜럼버스, 바스코 다 가마, 마젤란 등이 추동한 역사가 지금까지도 출현하지 않았다면, 괌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제주도(1846km2)의 3분의 1도 안 되는 괌(546km2)은 외부 세계와 교류할 일이 거의 없는 외로운 섬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콜럼버스 등의 모험으로 세계 곳곳의 바닷길이 하나로 통합되고, 이런 모험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서유럽 국가들이 식민지 개척을 목적으로 이 길을 선점했다. 이로 인해, 대양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서유럽의 침략을 받고 식민지로 전락했다.
적도 이북의 서태평양 섬들을 지칭하는 미크로네시아. 그 미크로네시아에 속하는 괌도 그런 운명에 노출됐다. 마젤란의 눈에 발견된 이 섬에도 서유럽의 손길이 닿았다. 이 과정이 <탐라문화> 제37호에 실린 김희열 제주대 교수의 논문 '미크로네시아 개관: 식민지배와 독립'에 이렇게 정리돼 있다.
"포르투갈인 페르디난트 마젤란이 세계를 항해하다가 1521년 이 섬을 처음 발견했으며, 1565년에는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장군이 괌을 스페인 땅으로 주장했다. 1668년 이곳에 처음으로 가톨릭을 선교한 산 비토레스 신부가 도착하고 스페인의 식민지배가 시작됐다. 1668년에서 1815년까지 괌은 멕시코와 필리핀을 오가는 스페인 무역항로의 주요 거점 역할을 했다."조선에서 연산군이 쫓겨나고 중종이 왕이 된 뒤인 16세기 초반, 스페인은 바닷길에 대한 지배력을 통해 유럽 최강국이 되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4년 전인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해군에 참패하고 뒤이은 제해권 쟁탈전에서도 스페인이 완패하면서, 17세기 초반부터 스페인은 유럽의 2류 국가로 전락했다. 그런 스페인이 17세 후반인 1668년 괌에 대한 식민 지배를 개시한 것이다.
19세기 후반까지도 서유럽 국가들의 경쟁은 주로 대서양과 인도양을 무대로 전개됐다. 태평양을 무대로 한 식민지 쟁탈전은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 아메리카대륙의 사정도 이 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아메리카대륙 동부에서 시작된 미국인들의 식민지 개척은 토착 인디언들과의 경쟁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미국인들이 인디언과의 전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둔 시점은, 조선에서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벌이진 지 2년 뒤인 1886년이다. 이렇게, 1886년까지 인디언들이 미국인들의 서진(西進)을 견제했기에, 미국 서쪽의 태평양은 그때까지는 조용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한물 간 스페인이 오랫동안 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그런 요인도 작용했다. 스페인이 미국 남쪽의 쿠바를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인디언과의 전쟁에 집중하느라 서쪽 태평양이나 남쪽 쿠바에 집중하지 못한 탓에, 스페인이 괌이나 쿠바를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인디언과의 전쟁을 마무리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이 동아시아·태평양과 쿠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괌·필리핀·쿠바 등이 미국인들의 눈에 새롭게 비치기 시작했다. 특히 괌과 필리핀은 동아시아 진출을 위한 해상 정거장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괌·필리핀·쿠바는 스페인 땅이었다. 그래서 이곳들을 빼앗자면 스페인과 싸워야 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일차적으로 쿠바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미국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쿠바 독립군이 1895년 무장봉기를 일으키자, 스페인은 1896년 진압군을 파견했다.
그런데 미국이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쿠바 아바나항에 파견한 미국 전함에서 원인 모를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미군 266명이 사망했다. 그러자 미국은 스페인의 행위로 단정하고 1898년 선전포고를 발포했다. 신흥 강국 미국이 한물 간 제국 스페인을 상대로 태평양·쿠바 쟁탈전을 위한 싸움을 도발한 것이다. 미·서 전쟁, 미국·스페인 전쟁은 이렇게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미국이 괌을 점령하는 과정이 <일어일문학> 제62집에 실린 대구대 최장근 교수의 논문 '미국의 영토 형성과 독도 고유 영토론에 대한 인식'에 이렇게 정리되어 있다.
"미국은 쿠바는 물론이고, 미 동양함대를 필리핀에 파견했다. 이때 필리핀 독립군은 미국의 편에서 스페인군을 공격했다. ······ 미국 순양함 찰스턴호는 괌을 점령했다."이 전쟁에서 미국은 승리를 거두고 태평양의 신흥 강국으로 떠올랐다. 그 결과로, 괌과 더불어 쿠바·필리핀·푸에르토리코를 스페인한테서 빼앗고 이들 지역에 군정을 실시했다. 괌은 이렇게 해서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옛 제국 스페인을 꺾고 태평양을 차지한 미국. 그 미국의 승리를 상징하는 섬 중 하나가 되었다.
괌과 더불어 필리핀을 점령한 뒤부터 미국은 동아시아에 적극 개입했다. 괌과 필리핀을 장악함으로써 동아시아를 향한 해상 전진기지를 구축하게 된 결과였다. 1905년 7월 29일에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고, 미국은 일본의 조선 침략에 협력한다"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체결된 것도, 태평양상에서 미국이 기득권을 갖게 됐음을 반영하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