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농학교에 근무하는 농인 제자 이재연 선생이 필자에게 보내온 편지이재연 선생이 뒤늦게 결혼도 하고 득남도 했다는 기쁜 소식이 담겨 있는 서신을 내게 보내왔다.
김병하
오늘 옛 농인 제자를 모처럼 만나고 보니, 그간 내가 대학 특수교육과에서 교수노릇하면서 길러낸 특수교사 가운데 두 사람의 농인 제자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두 사람 모두 지금은 그들의 모교인 서울농학교 중등부에서 중견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다. 한 사람은 장진권 선생으로 그는 내 기억에 농학생으로는 처음 대구대 특수교육과에 입학한 학생이었다. 같은 감각장애이지만 맹학생들은 진작부터 특수교사로 진출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농학생들의 경우 특수교사가 된다는 건 퍽 희귀한 일이었다.
장진권의 아버지는 당시에 문교부 편수관으로 일하면서도 아들의 대학생활이 걱정되어 입학식에 참석하고 3일간을 대구에 머물면서 아들뒷바라지를 해주고 떠났다. 그런 부모의 지극한 정성과 본인의 엄청난 노력 결과 장진권은 무사히 4년제 특수교사 양성과정을 마쳤다. 그는 한때 내 연구실에서 공부하면서 내게 수화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는 도서관에서 내 이름으로 나온 글들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다 읽었다고 했다. 그만큼 독서력이 왕성했고, 농학생이지만 시험지에 반영된 문장력도 뛰어났다.
2013년은 서울농학교 개교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서울농학교 백년사> 책도 내고, 그해 10월에는 '서울농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개최 되었다. 이 학술대회에서 나는 '농교육의 쟁점과 과제'라는 주제로 기조발표를 했고, 장진권은 '서울농학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주제로 화려한 수어로 열정적인 발표를 해 주었다.
그날 나는 장진권 선생이 서울농학교에서 중심인물의 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서울농학교 교장(정현효)께서 <서울농학교 백년사> 책 발간에도 장진권 선생이 주된 역할을 했다는 걸 귀뜀해 주었다.
다른 한 사람은 90년대 후반쯤에 특수교육과에 입학한 이재연이라는 농학생이다.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대학 특수교육과에 겨우 들어 왔다. 당시만 해도 대학 당국은 장애학생들을 받아들이기만 했지, 나라에서는 물론 대학 자체에서 장애학생들에게 학습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던 때였다. 지금은 대학에 장애학생지원센터가 따로 있어, 농학생들에게 수화통역 지원은 물론, 강의실에서 속기지원도 별도로 해주고 있다.
일학년 첫 학기가 끝난 여름 방학에 이재연 학생이 내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사연의 요지는 자기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겨우 대학에 들어왔으나, 대학에서 농학생을 위한 학습지원이 전혀 없어서 "이 놈의 대학 화가 나서 더 다닐 수 없다"는 게다. 오죽하면 학생이 이런 편지를 교수에게 보내 왔겠는가 싶어, 나는 이재연 학생에게 회신을 보냈다.
농학생으로 어렵게 대학 특수교육과에 들어 왔는데, 힘들더라도 계속해서 수학하도록 노력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2학기에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고려해 장학금 혜택이라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선해 보겠노라고 했다. 이런 내 편지가 그에게 큰 용기를 주었던지 그는 방학동안 어머니가 하는 일을 열심히 도와 등록금을 마련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회신을 보내왔다.
정말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교수의 조그마한 관심도 큰 격려가 된다는 걸 나는 이재연 학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는 2학기에 장학금 혜택을 받아 다시 용기백배로 수학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4학년 졸업을 하고 농학생으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교원임용시험에 당당히 합격하는 영예로운 사례를 남겼다. 그는 제주도에 있는 특수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일하는 꿈을 실현하게 되었으나, 그곳 특수학교의 농학생 지원이 줄어들자 자신의 모교인 서울농학교로 옮기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재연 선생은 제주도에 근무할 적에 가을철만 되면 내게 제주감귤을 택배로 보내주곤 했다. 서울농학교에 근무하면서도 아직 결혼을 못했다고 하더니만, 몇 년 전에는 결혼을 해서 갓 돌이 지난 아들도 얻었다고 내게 기쁜 소식을 전해 왔다. 그는 봉투에 "스승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붓글씨로 큼직하게 쓰고, 이런 편지글을 보내 왔다.
존경하는 교수님!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된지 13년이 되었습니다. ...(중략) 대학 시절 교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 옵니다. ...(중략) 언제나 존경하고 닮고 싶은 분이며, 교수님의 얼굴을 떠 올리면 기분이 최고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 제자 이재연 올림가르침과 배움이 상생하면서 이어지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보람을 안겨주는 아름다운 글이다. 내가 40년 교수노릇하면서 제자들에게 받은 편지가운데 이재연의 글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어쩌면 내게는 과분한 글일 수 있다. 원래 '교학상장'이라는 말은 <학기(學記)>에 나오는 말인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배신은 가르침(敎)과 배움(學)의 어긋남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배신의 원천적(일차적) 책임은 배우는 쪽에 있는 게 아니라 가르치는 쪽에 있다는 게다. 여기에 교육과 교직의 어려움이 있다.
이미 정년하고 70줄에 접어든 내게는 농교육을 이끄는 든든한 두 제자가 있고, 또 한편에는 농인들의 정체성과 복지증진에 앞장서는 다른 두 제자가 있어, 그들이 내게 더 할 나위없는 행복감을 안겨준다. 이런 게 교직에 몸담은 사람의 지복(至福)에 해당되는 것일 터.
우리나라는 아직도 농문화의 정체성이 안정되게(품위 있게) 정립되어 있지 않아, 특히 농아인협회의 역할이 더욱 중차대한 때이다. 마침 2015년 말에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어 하나의 독립된 언어로 수어의 위상이 정립됨으로써, 농인들의 정체성과 농문화의 정립에 크게 도움이 될 게다.
하여 이번에 경북농아인협회 회장을 맡은 김봉열 회장과 경산지회장을 맡은 김정중 회장의 역할이 더욱 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디 내가 현직에서 못 다한 농교육과 농인복지의 결실이 이들 농인 제자들에 의해 구현되는 그 날을 간절히 고대한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농학생이 행복한 학교, 농인이 행복한 세상이 이 땅에 기필코 정착되길 빈다. 오늘은 참 기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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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로 태어나 지금은 명예교수로 그냥 읽고 쓰기와 산책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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