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기마병들. 중국 내몽골자치구 흥안맹 우란하오터시의 칭기즈칸묘(칭기즈칸 사당)에서 찍은 사진.
김종성
<왕은 사랑한다>의 몽골제국은 전형적인 유목국가였다. 트럼프처럼 이 나라 황제들도 고려와의 무역에서 손해를 안 보려고 했다.
조공무역은 사신단이 상대방 나라를 방문하는 기회에 이루어졌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사신단에 의한 교역이 공식 무역이었다. 여기에 참여한 양국 실무자들은 상호 교환할 품목과 수량을 사전에 협의했다. 이 과정에서 몽골인들은 트럼프처럼 욕심을 부렸다. 비싼 상품을 받아내고 헐한 상품을 답례하는 한편, 많은 수량을 받아내고 적은 수량을 답례하려 했던 것이다.
고려와 몽골(원나라) 사이의 이런 정황이 서강대 김한규 교수의 <한중관계사 1>에 다음과 같이 정리돼 있다(이 책 속의 생경한 한자어를 쉬운 말로 바꾸었다).
"상호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던 이전 시대의 교역과는 달리, 고려·원나라 시대에는 고려의 조공이 원나라 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요되었다. 원나라는 사절을 고려에 보내어 모종의 물품을 보낼 것을 강요하였다. 또한 원나라는 고려가 보낸 물품의 종류나 수량이 만족스럽지 못한 때는, 다시 사절을 보내 스스로 필요한 물품을 수색하고 그것의 공납을 독촉했다."이런 상황 때문에 고려는 몽골과의 사신단 무역에서 적자를 입었다. 이 시기 고려인들은 농경민 국가인 송나라가 건재했던 과거 시절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만약 지금도 왕조체제가 이어지고 있고 한국이 미국에 조공을 하고 있다면, 트럼프는 위 인용문처럼 행동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은 무슨 물건을 얼마만큼 보내고, 한국은 이 물건을 이만큼만 받아라'는 식으로 무역흑자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그런데 몽골한테는 고려를 한없이 압박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몽골은 고려를 신하국으로 만들었지만, 그것은 전쟁을 통한 결과물이 아니었다. 몽골 기마대는 저 멀리 동유럽까지 휩쓸면서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고려와의 전쟁에서는 끝내 승부를 보지 못했다.
몽골은 무신정권이 이끄는 고려를 상대로 약 40년간 전쟁을 벌였지만, 군사적으로 굴복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무신정권이 무너진 뒤 고려 왕실과 평화조약을 맺고 전쟁을 끝냈을 뿐이다. 이런 경험 때문에 몽골은 고려를 다른 나라와 똑같이 취급할 수 없었다.
<왕은 사랑한다>에는 몽골인 왕비인 제국대장공주(장영남 분)가 충렬왕(정보석 분)한테 패악질을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이처럼 고려왕들이 몽골인 왕비 때문에 골치를 썩은 것은 사실이지만, 몽골이 공주를 보내면서까지 고려와 결혼동맹을 맺은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동맹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고려를 특별히 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몽골은 고려와의 무역에서도 유목민의 약탈적 특성을 무한정 발휘할 수 없었다. 고려를 잘못 건드리면 화를 당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런 정서는 몽골 정부 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일례로, 중국어로 쓰인 몽골 역사서 <원사>의 왕약 열전에 따르면, 한족 출신의 몽골 집현전 대학사인 왕약은 "(고려) 백성들이 사납게 돌변하면 우리가 힘을 소모하게 된다"며 고려를 경계했다.
고려를 무한정 자극할 수 없기에, 몽골은 고려와의 무역에서 무한정 흑자를 추구하지 않았다. 비공식 무역에서는 고려한테 흑자를 양보했다. 공식 무역인 사신단 무역에서는 일방적인 흑자를 거두면서도, 비공식 무역에서는 고려가 흑자를 보도록 허용했던 것이다.
사신단이 수행하는 공식 무역과 별도로, 사신단 단원들이 수행하는 개별적 무역도 있었다. 고려·몽골 무역에서는 이런 개별적 교역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몽골은 이런 무역에서 고려가 흑자를 거두는 것을 훼방하지 않았다. <한중관계사 1>에 이런 대목이 있다. 생경한 한자어를 쉬운 말로 바꾸었다.
"특히 원나라 시대에는 고려의 사신들이 수많은 수레와 상자에 싣고 토산물을 중국으로 운수해서, 중국인들이 '고려는 겉으로는 사신 일로 온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무역하러 온다'고 말할 정도였다."위 인용문의 '중국'은 문맥상 '몽골 치하의 중국'이고 '중국인들'은 문맥상 '몽골인들'이다. 고려 사신단 사람들이 개인 무역을 한다며 수많은 물건을 싣고 오는 것을 보면서, 몽골인들은 "저 사람들, 외교가 아니라 장사 때문에 왔어"라고 말할 정도였다. 비공식 무역에서는 고려가 흑자를 보는 게 용이했기 때문에, 사신단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물건을 많이 준비해 갔던 것이다.
고려 정부는 그런 비공식 무역을 이용해 적자의 상당부분을 만회할 수 있었다. 이런 가능성을 알면서도 몽골은 비공식 무역을 관대하게 허용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고려와의 동맹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 제2장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긍정적 사고의 힘을 믿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나는) 실제로는 부정적 사고의 능력을 믿고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거래를 할 때는 보수적 입장을 갖는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고려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있으면, 막상 일이 닥치더라도 견뎌낼 수가 있다."몽골은 고려와의 전쟁에서 데인 경험이 있다. 그래서 고려와의 관계를 최악으로 몰고 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최악의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고려가 비공식 무역에서 흑자를 얻는 것을 용인했던 것이다.
몽골 황제들은 고려와의 공식 무역에서 흑자를 얻어내려 애썼다. 이 점에서는 몽골 황제들과 트럼프가 같다. 하지만, 몽골 황제들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비공식 무역에서는 적자를 봐줬다. 신념을 갖고 장기적으로 밀어붙이지만 최악의 경우를 항상 예상한다는 트럼프 본인의 말대로라면, 이 점에서도 몽골 황제들과 트럼프가 같게 될 여지가 전혀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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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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