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공공물'로서의 역사학을 수립하자

[주장] 촛불항쟁을 혁명으로 이어나가는 또 하나의 방법, 역사학 수립

등록 2017.09.13 17:55수정 2017.09.1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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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겨울부터 시작된 촛불항쟁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실험이 분출된 '집단지성의 광장'이었다.
지난해 겨울부터 시작된 촛불항쟁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실험이 분출된 '집단지성의 광장'이었다. 권우성

지난해 겨울부터 시작된 촛불항쟁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실험이 분출된 '집단지성의 광장'이었다. 새벽 늦게까지 광화문광장에서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각기 자유발언을 하던 시민들의 눈빛과 열변은,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수많은 촛불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지금은, '적폐청산'이라는 '혁명과업'을 민주개혁정부가 제도적 틀 안에서 실험하고 있는 동시에, 촛불의 열망과 실천을 일상 속으로 확산시켜 그 사회적 기반을 장기화하는 과제에 직면해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 4월 혁명, 1987년 6월 항쟁이 결과적으로 유산되고만, '뼈아픈 기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그러하다.


이 지점에서, '촛불의 열망과 인문학이 만난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기실 수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선 '인문학 열풍'이 불었지만, 그것은 '신자유주의(시장지상주의) 시대'라는 시대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삶의 불안정성'이다. 2010년 이후 한국사회에선 삶의 불안정성이 갈수록 증폭되었고, 이에 사람들은 그러한 불안을 내면적으로 극복하려 하거나, 혹은 '스펙 쌓기'에 몰입하며 불안에서 벗어나려 하였다. 그리고 인문학은 이러한 시대조류에 올라탔다.

예컨대 인문학의 한 종류인 역사의 경우, 사람들은 '대학 입학시험'이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무원 시험'의 합격을 위한 수단으로써 향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험 대비에 필요한 설명을 '쇼맨십' 있게 잘 해주는 이른바 '스타 강사'가 필요했고, 그 결과 다수의 한국사 분야 스타 강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서점의 역사책 코너 역시 어느 때부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대비 수험서가 장악했다. 그러는 사이 인문학 또는 역사학의 본질은 차츰 옅어져 갔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본질은 무엇인가? 과연 시대조류에 편승해 삶의 불안에 저당 잡힌 사람들로 하여금 위로를 주거나 스펙을 쌓게 하는 것이 인문학의 본질인가? 결코 아닐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겪고 있는 삶의 불안을, 사회적 차원에서 근원적으로 타파하고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제도와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문학의 소명이자 역할일 것이다. 기실 문학, 역사, 철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함양하는 학문이자, 동시에 세상의 변화를 상상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기왕의 인문학(역사학) 열풍은, 도리어 '변화를 향한 상상력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촛불항쟁이 일상으로 돌아간 이후인 지금은, 인문학이 자체의 본래적 성격을 회복하고, 대중의 일상과 사유 속에 밑거름이 되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문학 중 비교적 관심을 많이 받는 역사항의 사정은?


문제는, 그 '방법'이다. 인문학 중 비교적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역사학의 사정을 살펴보자. 현재 한국 역사학계가 생산하는 학술지는 줄잡아 80종이 넘는다(인터넷 논문 제공 사이트 디비피아 분류 기준). 이 중 전공자가 아닌, 일반 대중이 쉽게 접하거나 읽을 수 있는 글이 실리는 학술지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나마 역사비평사에서 발행하는 <역사비평>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내는 <내일을 여는 역사> 정도가 대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87년 6월항쟁 직후 창간되어 올해 9월로 30주년을 맞이한 <역사비평> 역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문적인 논문과 독자대중을 위한 역사에세이가 함께 실렸지만, 차츰 전문 학술지화의 길을 걸어 지금은 한국연구재단의 등재지가 된 상태이다. 그리하여 현재 글의 형식은 논문이 전부다. 반면, <내일을 여는 역사>의 경우, 한국연구재단 등재지가 아닌 탓에 독자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예전보단 글의 분량이 길어지고 논문 형식에 가까운 글들이 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애초 '역사 대중지'를 표방하고 그러한 성격을 지향한 잡지들이 왜 학술지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는 현재 우리의 학술담론 생산 및 대학의 연구업적 인정 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 논문을 게재하지 않으면 학계에서 인정을 받을 수도, 버틸 수도, 연구비를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논문식 글쓰기에 한 번 익숙해진 연구자들이 독자대중을 위한, '쉽게 읽히는 글'을 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전문적 연구업적으로서 논문이라는 형식은 분명 필요하고, 장점이 있다. 하지만 '논문' 역시 역사 서술의 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는 점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당장 전통시대 역사학만 보더라도 편년체, 기사본말체, 강목체 등 다양한 역사 서술 형식이 있었다. 하지만 근대 역사학은 역사 서술 형식을 '논문'으로 획일화하였다. 근대 역사학의 세례를 아직까지 받고 있는 한국 역사학계 역시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역사적 사건'일지라도, 그 내면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무궁무진한 측면을 품고 있어 '논문 형식'만으로는 다 포괄하여 서술할 수 없는 경우들이 있다.

논문은 기본적으로 '논증'을 위한 글쓰기 형식이기 때문에 '실증'에 주력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역사적 사실의 리얼리티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역사학의 기본은 역사 자료의 수집과 해석이라는 '실증'에 있지만, 이에 몰두하기만 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담아내기도 어려울뿐더러 독자대중과 멀어지기 십상이다. 그런 만큼, 당장의 급선무는 역사 서술 형식의 다양화를 이룩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물꼬를 트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역사 글'들을 대중들이 사이버 상에서 무료로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제도적 방법 역시 강구해보아야 할 것이다.

인문학·역사학의 정립, 함께 호흡하며 동참하는 사례 되길

 물론 역사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연구할 때 객관적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최소한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의 역사를, '기록해두어야 할 의무'는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역사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연구할 때 객관적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최소한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의 역사를, '기록해두어야 할 의무'는 있는 것이 아닐까. pixabay

역사 서술 형식과 함께 기존 역사학계에서 간과해온 또 하나의 측면이 있다. 바로 '당대사(當代史)'에 대한 감각이다. 한국 역사학계의 경우 해방 이후 대학에서 현대사를 가르친 기간 역시 불과 30년 안팎에 불과하지만, 아직도 '지금, 이 순간의 역사'에 대해서는 통 관심이 없다.

물론 역사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연구할 때 객관적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최소한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의 역사를, '기록해두어야 할 의무'는 있는 것이 아닐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의 정치, 사회, 문화적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는 것은 훗날 우리 시대를 연구할 세대들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조선왕조실록> 역시 당대사 기록이 아니었던가.

지금까지 한국현대사 관련 저술에서 일기류의 인용이 미약한 것도 이와 관련이 깊은 현상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가령 한국전쟁을 다룬 저술들에서 김성칠의 <역사 앞에서>를 인용한 정도를 제외하면, 신기할 정도로 한국현대사 관련 저술에서 개인의 일기나 기록이 인용된 경우가 거의 없다. 이는 식민지, 분단, 독재, 반공이라는 엄혹했던 시대상황과 관련이 깊지만, 한편으로 개인의 기록이나 일기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발굴할 의무가 우리 역사학계에 주어져 있음을 말해준다. 이는 정부 측 자료만이 아닌, 민중의 '대항사료'를 남겨둔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와 함께 인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대중이 스스로 해당 분야 학문에 참여할 수 있는 길 역시 터놓을 필요가 있다. 왜냐면 이 역시 '현실사회의 변화를 향한 상상력의 회복'이라는 인문학의 본질적 과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역사학의 경우, 현실사회 변화를 향한 상상력의 원천은 공무원시험이나 한국사검정시험 대비한 수험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공자들이 이용하는 '사료'에 있다. '사료', 즉 역사 기록은 역사적 사실에 접근하는 원천이자 '현재를 상대화' 할 수 있는 원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향한 상상력은 '현재'에 매몰되지 않을 때 나올 수 있다. 아울러 직접 당시의 자료를 읽고 생각하는 것과 이미 가공된 역사서술을 읽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현재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대부분의 사료가 전산화되어 있어 관심 있는 누구나 사이버 상에서 쉽게 접근은 할 수 있다. 문제는, 일반인들이 실제 사료를 접했을 때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또 다른 차원이라는 점이다. 대부분 한문을 비롯해 외국어로 되어 있는 역사자료들을 번역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설사 번역이 되었더라도 오늘날에는 사용하지 않는 사어(死語)나 제도 용어들이 널려 있는 역사자료를 일반인들이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상과 같은 과제들은 곧 역사학 또는 인문학을 '사회적 공공물'로 수립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흔히 '역사의 대중화', '인문학의 대중화'를 주창하지만, '대중화'라는 말 속에는 이미 대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하지만 촛불항쟁이 입증했듯 대중이 '계몽의 대상'이 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더 이상 대중은 '계몽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이제는 대중이 직접 참여해 스스로 앎과 변화를 추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우리 인문학·역사학 역시 더 이상 '지식 권력'의 테두리 안에 안존하지 않고, '사회적 공공물'로서 본래적 소명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촛불항쟁은 그동안 한국사회를 짓눌러온 '박정희 신화'를 붕괴시키고 '신(新) 패러다임'의 길을 활짝 열었던 바, 사회적 공공물로서의 인문학·역사학의 정립은, 그러한 길 위에 인문학과 역사학이 함께 호흡하며 동참하는 첩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 #인문학 #사회적 공공물 #촛불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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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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