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부터 시작된 촛불항쟁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실험이 분출된 '집단지성의 광장'이었다.
권우성
지난해 겨울부터 시작된 촛불항쟁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실험이 분출된 '집단지성의 광장'이었다. 새벽 늦게까지 광화문광장에서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각기 자유발언을 하던 시민들의 눈빛과 열변은,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수많은 촛불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지금은, '적폐청산'이라는 '혁명과업'을 민주개혁정부가 제도적 틀 안에서 실험하고 있는 동시에, 촛불의 열망과 실천을 일상 속으로 확산시켜 그 사회적 기반을 장기화하는 과제에 직면해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 4월 혁명, 1987년 6월 항쟁이 결과적으로 유산되고만, '뼈아픈 기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그러하다.
이 지점에서, '촛불의 열망과 인문학이 만난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기실 수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선 '인문학 열풍'이 불었지만, 그것은 '신자유주의(시장지상주의) 시대'라는 시대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삶의 불안정성'이다. 2010년 이후 한국사회에선 삶의 불안정성이 갈수록 증폭되었고, 이에 사람들은 그러한 불안을 내면적으로 극복하려 하거나, 혹은 '스펙 쌓기'에 몰입하며 불안에서 벗어나려 하였다. 그리고 인문학은 이러한 시대조류에 올라탔다.
예컨대 인문학의 한 종류인 역사의 경우, 사람들은 '대학 입학시험'이나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무원 시험'의 합격을 위한 수단으로써 향유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험 대비에 필요한 설명을 '쇼맨십' 있게 잘 해주는 이른바 '스타 강사'가 필요했고, 그 결과 다수의 한국사 분야 스타 강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서점의 역사책 코너 역시 어느 때부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대비 수험서가 장악했다. 그러는 사이 인문학 또는 역사학의 본질은 차츰 옅어져 갔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본질은 무엇인가? 과연 시대조류에 편승해 삶의 불안에 저당 잡힌 사람들로 하여금 위로를 주거나 스펙을 쌓게 하는 것이 인문학의 본질인가? 결코 아닐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겪고 있는 삶의 불안을, 사회적 차원에서 근원적으로 타파하고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제도와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문학의 소명이자 역할일 것이다. 기실 문학, 역사, 철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함양하는 학문이자, 동시에 세상의 변화를 상상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기왕의 인문학(역사학) 열풍은, 도리어 '변화를 향한 상상력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촛불항쟁이 일상으로 돌아간 이후인 지금은, 인문학이 자체의 본래적 성격을 회복하고, 대중의 일상과 사유 속에 밑거름이 되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문학 중 비교적 관심을 많이 받는 역사항의 사정은? 문제는, 그 '방법'이다. 인문학 중 비교적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역사학의 사정을 살펴보자. 현재 한국 역사학계가 생산하는 학술지는 줄잡아 80종이 넘는다(인터넷 논문 제공 사이트 디비피아 분류 기준). 이 중 전공자가 아닌, 일반 대중이 쉽게 접하거나 읽을 수 있는 글이 실리는 학술지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나마 역사비평사에서 발행하는 <역사비평>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내는 <내일을 여는 역사> 정도가 대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87년 6월항쟁 직후 창간되어 올해 9월로 30주년을 맞이한 <역사비평> 역시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문적인 논문과 독자대중을 위한 역사에세이가 함께 실렸지만, 차츰 전문 학술지화의 길을 걸어 지금은 한국연구재단의 등재지가 된 상태이다. 그리하여 현재 글의 형식은 논문이 전부다. 반면, <내일을 여는 역사>의 경우, 한국연구재단 등재지가 아닌 탓에 독자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예전보단 글의 분량이 길어지고 논문 형식에 가까운 글들이 실리고 있다.
그렇다면 애초 '역사 대중지'를 표방하고 그러한 성격을 지향한 잡지들이 왜 학술지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는 현재 우리의 학술담론 생산 및 대학의 연구업적 인정 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 논문을 게재하지 않으면 학계에서 인정을 받을 수도, 버틸 수도, 연구비를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 가장 큰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논문식 글쓰기에 한 번 익숙해진 연구자들이 독자대중을 위한, '쉽게 읽히는 글'을 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전문적 연구업적으로서 논문이라는 형식은 분명 필요하고, 장점이 있다. 하지만 '논문' 역시 역사 서술의 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는 점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당장 전통시대 역사학만 보더라도 편년체, 기사본말체, 강목체 등 다양한 역사 서술 형식이 있었다. 하지만 근대 역사학은 역사 서술 형식을 '논문'으로 획일화하였다. 근대 역사학의 세례를 아직까지 받고 있는 한국 역사학계 역시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역사적 사건'일지라도, 그 내면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무궁무진한 측면을 품고 있어 '논문 형식'만으로는 다 포괄하여 서술할 수 없는 경우들이 있다.
논문은 기본적으로 '논증'을 위한 글쓰기 형식이기 때문에 '실증'에 주력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역사적 사실의 리얼리티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역사학의 기본은 역사 자료의 수집과 해석이라는 '실증'에 있지만, 이에 몰두하기만 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담아내기도 어려울뿐더러 독자대중과 멀어지기 십상이다. 그런 만큼, 당장의 급선무는 역사 서술 형식의 다양화를 이룩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물꼬를 트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된 '역사 글'들을 대중들이 사이버 상에서 무료로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제도적 방법 역시 강구해보아야 할 것이다.
인문학·역사학의 정립, 함께 호흡하며 동참하는 사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