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선 중세와 고대 유적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류태규 제공
파묵칼레, 하루 종일 '릴리'를 기다렸는데...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터키에서 겪은 울지도 웃지도 못할 재밌는 일화 하나를 들려주는 게 좋겠다.
'도미토리(Dormitory)'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본래의 뜻이 있겠지만, 여행자들에겐 한 방에 여러 개의 침대를 놓아두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침대 하나씩을 차지하고 자는 숙소를 지칭하는 단어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숙박업소에선 보통 화장실과 욕실도 함께 쓴다. 혼자 사용하는 것보다 불편하지만 대신 가격이 싸다. 이슬람국가인 터키에도 드물게 이런 숙소가 있다.
기암괴석 즐비한 카파도키아를 돌아보고, 지중해 푸른 물결 넘실거리는 안탈리아에서 사흘을 머문 후 터키 서부 내륙에 위치한 파묵칼레(Pamukkale·목화의 성)라는 마을에서 지낼 때다. 거대하게 형성된 석회암 덩어리와 따스하게 몸을 담글 수 있는 온천, 그 인근에 위치한 고대 로마 유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당시 내 숙소가 도미토리였다. 제법 큰 방에 싱글베드가 3개 놓인. 첫날은 캘리포니아 출신 미국 사내와 함께 방을 사용했다. 형광등 켜고 끄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매너 좋은 남자'였다. 그는 발소리까지 줄여가며 걸었다. 최상의 '도미토리 파트너'라 할 수 있었다.
사건(?)은 미국인 사내가 떠난 다음 날 벌어졌다. 숙소 직원으로 일하는 터키 청년과 술 한 잔을 나누며 너나들이로 친해졌는데 그가 낭보를 전한다.
"이봐 홍, 오후에 캐나다 여자 한 명이 여기 도착한 데. 이름이 릴리(Lily)인데, 네가 묵는 도미토리를 전화로 예약했어." '...팔자에 없이 여성과 같은 방을 쓰게 생겼잖아. 릴리? 이름이 예쁘네. 백합같이 청초했으면 좋겠다. 와인이라도 한 병 사둬야겠군.'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솔직히 릴리가 도착한다는 밤이 기다려졌다. 태국 후아힌(Hua Hin)에서 만난 스웨덴 대학생 에밀리에처럼 쾌활해서 시종일관 사람을 웃게 해주거나, 캄보디아 시아누크빌(Sihanoukville)에서 만난 영국인 타니아처럼 매력적인 금발 미인이라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