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됐을까? 스님 차를 흔쾌히 허락합니다

[선문답 여행] 경북 김천 황악산 직지사 '도순 스님'

등록 2017.09.26 14:01수정 2017.09.2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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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김천 황악산 직지사입니다. 새벽, 대웅전이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외형은 사라지고 진실만이 남은 듯합니다.
경북 김천 황악산 직지사입니다. 새벽, 대웅전이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외형은 사라지고 진실만이 남은 듯합니다.임현철

인연이란 게 있긴 있나 봅니다. 왜냐고요? 세 가지 이유에섭니다.

첫째, "이번엔 어느 절에 가는가?"
절집에 수시로 다니다 보니 궁금하나 봅니다. "왜?" 라고 물으면, "가고 싶은 좋은 절에 따라 붙고 싶다"고 합니다. 그들에겐 "스님과 이야기 나누며, 차 한 잔 마시는 게 동경"의 대상입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얼굴의 그들을 보면, 함께 다니고픈 마음 굴뚝입니다. 될 수 있는 한 같이 가려고 노력합니다. 근데, 막상 가려면 시간과 공간 맞추기가 참 힘들대요. 인연이지요.


둘째, "스님과 만나 곡차 한 잔 하면 좋겠다."
그 다음으로 많이 묻는 질문입니다. 왜 그럴까? 제 경우를 되짚어 보면, 상대하기 힘든 사람을 접해보고 싶은 욕망이지 싶습니다. 저는 곡차 한 잔씩 드시는 스님을 선호합니다. 중생인지라 곡차에 진심을 의지할 때가 있거든요. 처음엔 영광이었습니다. 차츰 곡차보다 녹차 마시며 마음 나누는 게 더 좋다는 걸 알겠더군요. 곡차나 녹차나 서로 마음 나누는 건 매 한가지니까. 인연이지요.

셋째, "자네 이러다 머리 깎는 거 아냐?"
조심스레 묻습니다. 절집에 거의 매달 한 두 번은 가니까 하는 말입니다. 깊어졌다나. 그럼 이렇게 답하지요. "속세에서 도를 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그래도 못 미더운 눈치입니다. 미혼 때 잠시 갈까 생각했었습니다만 제 길이 아님을 알았지요. 아내는 "절에 갔다 올게" 하면 흔쾌히 "잘 다녀오세요" 합니다. 전혀 걱정 없다는 거죠. 머리, 아무나 깎는 게 아닙니다. 인연이지요.

몰랐던 직지사, 깊은 곳을 제대로 본 듯한 기분

 김천 직지사 대웅전으로 가는 길. 어둠을 밝히는 불빛과 고요를 벗 삼아 길을 재촉합니다. 삼매가 어디 따로 있을까.
김천 직지사 대웅전으로 가는 길. 어둠을 밝히는 불빛과 고요를 벗 삼아 길을 재촉합니다. 삼매가 어디 따로 있을까. 임현철

 직지사 대웅전 안, 스님들께서 법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직지사 대웅전 안, 스님들께서 법을 갈구하고 있습니다.임현철

 새벽 어둠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직지사 대웅전입니다. 여래의 삶, 실체를 보기까지...
새벽 어둠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직지사 대웅전입니다. 여래의 삶, 실체를 보기까지...임현철

또 나를 찾아 나섭니다. 경북 황악산 직지사 새벽예불에 갑니다. 군데군데 어둠을 밝히는 불빛과 고요를 벗 삼아 길을 재촉합니다. 새벽 발걸음, 마음 편하게 걷는 게 아주 오랜만입니다. 초․중등시절, 아무 생각 없이 무덤가를 지나 새벽예배 드리러 교회 가던 때가 떠오릅니다. 아마, 당시 교회 가던 그 길이 무념무상 삼매 길이었나 봅니다. 삼매가 어디 따로 있을까. 온 마음 다하면 그게 삼매인 게지요.

만세루를 지나니 대웅전입니다. 대웅전에만 불이 켜져 있습니다. 대웅전, 밝을 때 보면 제법 규모 있고 웅장한 건축물(보물 제1576호)입니다. 허나 어둠 속 새벽에 보니 웅장한 외형은 사라지고 대웅전을 드나드는 다섯 개 문을 통해 새어 나오는 불빛으로만 존재합니다. 직지사의 꾸밈(모양, 거품)은 사라지고 실체(진실, 마음)만 남은 듯합니다. 몰랐던 직지사의 깊은 곳을 제대로 본 듯한 기분이랄까.


열린 정문 사이로 가사 입은 스님과 불상이 차츰 모습을 드러냅니다. 경 읽는 스님, 절 올리는 스님 등 하루 시작 지점입니다. 이 평범 사이로 색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대웅전 앞에 자리한 어느 행자, 죽어라 절만 합니다. 삼천 배를 기어이 올린 다음에 그만 둘 각오인 듯합니다. 행자의 진심이 통했을까. 비범함 혹은 간절함으로 읽힙니다. 그 모습만으로도 벌써 온 몸에 뱄을 땀이 그려집니다. 부디 성불하시길….

배움, 도를 구하는 길의 끝은 결국 '자기'


 김천 황악산 직지사 비로전. 어느 한 승려 천불상 앞에 서서 열심히 목탁 치며 법을 구합니다.
김천 황악산 직지사 비로전. 어느 한 승려 천불상 앞에 서서 열심히 목탁 치며 법을 구합니다. 임현철

 김천 직지사 관음전. 관세음보살을 찾는 목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김천 직지사 관음전. 관세음보살을 찾는 목소리가 새어 나옵니다.임현철

 김천 직지사, 개울을 가로지른 도피안교를 건너니 천불선원입니다.
김천 직지사, 개울을 가로지른 도피안교를 건너니 천불선원입니다.임현철

"똑 똑 똑 똑 똑 똑 똑 똑…"

어둠 속 희미하게 들리는 목탁소리를 따라 갑니다. 비로전. 어느 한 승려 천불상 앞에 서서 열심히 목탁치며 법을 구합니다. 혼자 외롭게 '애 쓴다'란 관념보다, 도를 구하는 길의 끝은 결국 '자기'라는 배움으로 다가옵니다. 비로전 천불상(千佛像)은 과거, 현재, 미래 삼천불 중 현겁 천불을 모셔 놓은 것으로, 모습이 제각각입니다. 천불상 가운데 벌거벗은 동자상(童子像)을 찾습니다. 비로전에 들어 첫눈에 동자상을 보면 옥동자를 낳는다는 전설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네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음전. 관세음보살을 찾는 목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관세음보살은 "모든 중생의 애환을 대자대비로 거두어 주며, 중생의 근기에 맞게 32응신으로 화현하여 중생을 구제"하니 당연한 듯합니다. 이로 보면, 중생의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 주십시오!

경내를 두루 걷습니다. 개울을 가로지른 도피안교를 건너니 천불선원입니다. 어둠이 걷히는 가운데 안양루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정갈한 선원입니다. 정면으로 극락전, 좌측으로 향경다실, 우측으로 동상당입니다. 선원 큰방이 바로 극락전입니다. 동상당의 어느 방 하나에 불이 켜져 있을 뿐 온통 숨죽인 정적입니다. 이곳 방 하나를 차지해 앉으면 금방이라도 성불할 것 같다는 망상이….

인연이 됐을까, 스님 차를 흔쾌히 허락합니다

 김천 직지사 공양간입니다.
김천 직지사 공양간입니다.임현철

 직지사의 아침 공양입니다.
직지사의 아침 공양입니다.임현철

 마음에 비친 직지사입니다.
마음에 비친 직지사입니다.임현철

6시. 종이 울립니다. 아침 공양 시작을 알리는 종입니다. 지난 번 애써 찾았다 점심 공양을 놓친 경험이 발걸음을 재촉케 합니다. 스님들, 줄지어 서 있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일반인들이 줄지어 섰습니다. 아침 공양은 누룽지에 김, 사과, 김치 등입니다. 맛이요? 절집에서 맛은 사치입니다. 오직 감사의 마음만이 가득합니다. 그릇 씻은 후, 공양주 보살에게 합장으로 고마움을 대신합니다.

배가 차니 차 한 잔이 생각납니다. 필시 인연이 있을 줄 믿습니다. 공양 간에서 나오는 스님 중 한 분께 꽂힙니다. 뒷모습이 예쁘고 정갈한 스님입니다. 스님, 비닐봉지에 꽃씨를 담으려는 중입니다. 스님께 차를 구하기로 합니다. 인연이 됐을까. 흔쾌히 허락합니다. 그를 따라 직지사 다실로 갑니다. 무엇을 구할 수 있는 건, '용기'가 아니라 '용기를 냄'에 있습니다.

직지사 다실. 차탁이 놓이고. 벽에 창문이 두 개입니다. 벽에 그림이 필요 없습니다. 창에 비친 뒤 풍경. 한쪽은 우거진 나무요, 한쪽은 절간 기둥과 단청입니다. 이 창 자체로 그림입니다. 다만 아쉬움이 생깁니다. 양쪽 창의 크기와 모양을 달리했더라면 더욱 운치 있었을 것을. 설계자는 사물과 자연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봐야한다던 말을 예서 실감합니다.

마음에 혼란이 생기는 이유, 탐ㆍ진ㆍ치가 들어가니

 김천 황악산 직지사 다실입니다. 창문이 곧 그림입니다.
김천 황악산 직지사 다실입니다. 창문이 곧 그림입니다.임현철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임현철

"스님, 법명이?"
"도순입니다."

"직지사에서 차를 만듭니까?"
"차는 만들지 않습니다. 저도 이 다실은 처음입니다. 그동안 여기서 차 마실 생각을 안했습니다. 차, 주시라 하기에 덕분에 처음 들어왔습니다."

"차 주시는 마음으로 법문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엊그제 할아버지들과 나눈 이야깁니다. '왜 사람이 어리석게 사느냐?' 묻더군요. 그랬지요. '몰라서 어리석게 사는 게 아니다!'고. 우린 어렸을 때 이미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 배웠습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그러셨지요. '바르게 살라'고. 이렇게 배워 알지만 실제로 살다보면 그게 안 돼 탈이지요. '바르게 살자!' 이것만 잘 지키면 되지 않을까요?"

"스님 '도'란 무엇입니까?"
"평상심입니다. 평상시 마음을 그대로 가지면 탈이 없는데, 탐ㆍ진ㆍ치가 들어가 평상시 마음에서 벗어나니 혼란이 생기는 겁니다. 부처님의 마음이 평상심입니다."

전생, 어느 지점이었을까? 도순 스님, 언제 어디선가 뵌 듯합니다. 차 맛이요? 무슨 맛인지 모르겠습디다. 그저 넉넉한 마음으로 차 주시는 스님에게 넋이 나간지라, 차 맛은 그리 중요치 않았던 게지요. 그러니까 실상은 차가 아니라 직지사에서 이야기 나눌 스님이 그리웠던 겁니다. 통했을까. 스님께서 먼저 스스로를 활짝 펼칩니다.

"그 모습 보고 세월이 부처임을 알았습니다"

 도순 스님
도순 스님임현철

 마음의 빛이 빛나야 할 이유는 '깨어남'입니다.
마음의 빛이 빛나야 할 이유는 '깨어남'입니다.임현철

"젊은 날, 절에 공부하러 갔습니다. 주지 스님께서 몇 번이나 자기 상좌가 돼라대요. 거절했습니다. 살다 보니 미래가 궁금한 거예요. 궤를 봤더니 승려가 나오데요. 여행길에 올랐지요. 서울, 부산,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경북으로 돌았지요. 김천에서 돈이 떨어진 거예요. 여기에 무슨 절이 있냐? 물었지요. 직지사가 있대요. 그 길로 직지사로 들어왔지요. 지금껏 평화로워요. 상좌가 되어라던 스님은 아직 못 찾았어요. 인연이…."

스님 얼굴에 가느다란 웃음이 지나 갑니다. 가느다란 웃음은 '보고 싶음' 혹은 '그리움'입니다. 제게도 찾고 싶은 스님이 있었지요. 일전에 풀었던 걸, 도순 스님 이야기에 화답하는 차원에서 제 보따리 하날 풀었습니다.

"십 오륙년 전, 지인 권유로 어느 한 스님을 찾았습니다. 어렵사리 만난 스님께서 마음이 차가우니 따뜻한 차를 주시겠다고 하시대요. 그리고 지난 봄, 그 절집에 갔습니다. 스님께 묻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아직도 성질이 차갑게 느껴지는가?'

스님께서 뭐라실까? 산사를 한 바퀴 돌고 나니, 물음 자체가 필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스님 만나서 느껴보고 싶었던 세월을, 또 묻고 싶었던 말을 굳이 묻지 않아도 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여름, 또 그 절집에 갔었습니다. 그땐 스님을 뵈었지요. 스님 뵈니 말하지 않아도 알겠대요. 과거 스님의 냉정하신 모습이 온화하게 변했더라고요. 그를 통해 세월이 부처임을 알았습니다."

"삶의 최종 목표는 잘살고 행복하기 위해서지요"

 도순 스님과 직지사 자원봉사 어르신들.
도순 스님과 직지사 자원봉사 어르신들.임현철

스님이 묻습니다.

"왜 삽니까?"
"잘…."

"맞습니다. 삶의 최종 목표는 잘살고 행복하기 위해서지요. 우리가 부처님 앞에 드리는 염불이나 기도도 잘 살기 위해 드리는 거죠. 부처님 말씀도 '잘' 되라고 '잘' 살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요즘 무슨 책 보십니까?"
"묘법연화경 읽고 있습니다. 아직 4품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묘법연화경 좋지요. 거지와 부자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거지가 부자 친구 집에 갔다가 대접 잘 받고 술에 취해 잠이 들었어요. 부자는 잠든 친구 옷에 평생 먹고 살 보석을 달아주었지요. 거지는 그것도 모르고 여전히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우연히 다시 만난 부자 친구가 거지 친구 형색을 보고 옷에 꿰매어 준 보물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옷 속을 보니 보물이 있었습니다. 이후 거지 친구도 부자가 되었습니다. 부처님 경은 이렇듯 다 똑같습니다. 결국 자기에게 맞는 걸 찾으라는 겁니다."
"전국을 다니는 선문답 여행은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마음으로 법을 구한 것처럼 다니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내 안에 있는 불성을 찾으면 됩니다. 책은 매일 수천 권이 나옵니다. 이처럼 책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성인의 말씀처럼 행복하자는 거지요. 아닙니까? 보살님은 책을 놔도 되겠습니다."
"…."

 직지사 도순 스님과의 인연은 '이끌림'이었습니다.
직지사 도순 스님과의 인연은 '이끌림'이었습니다.임현철

 직지사 대웅전, 어둠이 걷치자 위용을 거침없이 드러냈습니다. '무'와 '유'...
직지사 대웅전, 어둠이 걷치자 위용을 거침없이 드러냈습니다. '무'와 '유'...임현철

덧붙이는 글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김천 직지사 #대웅전 #도순 스님 #새벽예불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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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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