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500마르크 종이돈에 새겨진 얼굴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씩씩하고 즐거운 꿈 지핀 <곤충화가 마리아 메리안>

등록 2017.09.29 08:22수정 2017.09.29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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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하늘에는 여름새로 가득 찬단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새를 나비라고 부르지.
사람들은 모두 이 곤충이 마치 마법처럼
진흙탕에서 생겨난다고 믿어.

난 생각이 달라. 아직 열세 살밖에 안 되었지만,
난 곤충을 잡아 자세히 관찰하지. (3∼5쪽)


 겉그림
겉그림담푸스

'벌레'는 무척 오래된 낱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즈음은 한자말로 '곤충'이라고 으레 쓰지만, 먼먼 옛날부터 이 땅에서는 '벌레'라는 낱말을 썼어요. 딱정벌레, 풀벌레, 애벌레, 어른벌레, 날벌레, 물벌레 같은 낱말이 있습니다. 벌레라는 낱말을 붙여서 '밥벌레'나 '일벌레' 같은 말이 태어나기도 했고, 책이 널리 퍼진 오늘날에는 '책벌레' 같은 말이 태어나기도 해요.

이 땅에서 벌레는 그리 낯설지 않을 뿐 아니라, 싫어하거나 미워하거나 나쁘게 여기는 마음은 적었다고 느껴요. 이런 우리하고는 다르게 서양에서는 벌레를 안 좋게 보거나 싫어하거나 '여름새' 같은 말을 쓰면서 멀리하기도 했대요.

사람들은 모두 곤충을 사악하다고 말해.
그러나 난 여름새가 아름답고
해롭지 않다는 걸 알아. (7쪽)

 속그림
속그림담푸스

나비한테 '여름새'라는 이름을 지어 준 서양사람 옛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갸웃하다가도 이런 이름은 무척 곱네 하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벌레가 알이 아닌 진흙밭에서 깨어난다고 여길 만큼 서양사람은 예전에 벌레를 참말 멀리하기만 할 뿐,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거나 지켜보거나 살펴보지 않기도 했네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한국말에는 '굼벵이'라는 낱말이 있어요. 딱정벌레 애벌레를 가리키는 이름인데, 땅을 갈거나 나무를 보듬는 살림을 짓는 동안 숱한 딱정벌레 애벌레를 보았을 테고, 이 딱정벌레 애벌레한테 따로 굼벵이라는 이름을 붙인 우리 옛사람입니다. 그만큼 시골사람 누구나 벌레 한살이를 가만히 지켜보았다는 뜻이면서, 벌레를 함부로 다루지 않았다는 뜻이지 싶어요.


여름새는 고치에서 나올 때
날개가 생겨.

여름새는 이 꽃 저 꽃으로 날아다니면서
꿀을 빨아 먹지.


난 어른들이 여름새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는 걸 알아.
곤충은 진흙탕에서 생겨나지 않거든.

난 내 눈으로 직접 여름새의 한살이를 보았어.
곤충은 모양을 바꾸어가며 천천히 자라지.
그 모양은 어떤 것도 사악하지 않아. (14∼17쪽)

 속그림
속그림담푸스

그림책 <곤충화가 마리아 메리안>(담푸스 펴냄)을 가만히 읽습니다. 1647년에 태어나 1717년에 숨을 거둔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라는 분이 열세 살 나이에 독일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꿈꾸었는가를 차분히 보여주는 그림책을 조용히 읽습니다.

이 그림책을 즐거이 읽고서 큰아이하고 함께 읽습니다. 마당이 있는 우리 집에서는 숱한 벌레를 아주 쉽게 만납니다. 나비랑 벌도 아주 쉽게 만나고요. 큰아이하고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우리 집 벌레뿐 아니라 지구별 벌레란 무엇인가 하고 새롭게 돌아보기로 합니다.

독일 시골 한켠에서 사람들이 죄다 멀리하거나 싫어하는 벌레를 놓고서 '벌레는 우리가 싫어하거나 미워할 만한 목숨이 아니에요' 하고 말하듯이 넌지시 지켜보고 그림을 그린 앳된 한 사람을 떠올려 봅니다. 벌레 한살이를 곰곰이 지켜보고서 그림으로 그린 열세 살 어린이 몸짓을 마음으로 헤아려 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대단하구나 싶은 몸짓이었을 텐데, 꽃이며 풀이며 나무이며 모두 아낄 줄 아는 착한 아이라 한다면,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님처럼 상냥하게 나비랑 나방이랑 벌이랑 풀벌레를 지켜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작은 풀벌레도 우리 이웃이라고 여기는 마음은 온누리 모든 아이들한테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가끔 난 생각해.
내가 날기를 기다리는
여름새와 같다고.
지금 난 아이지만,
몇 년이 지나면 어른이 될 거야.
어른이 되면, 난 마음껏
먼 나라까지 여행할 거야.
온갖 보기 드문 여름새와 꽃들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말이야. (21쪽)

 속그림
속그림담푸스

열세 살 아이는 풀벌레랑 날벌레를 지켜보고 그림으로까지 그리면서 꿈을 품었다고 해요. 아이 스스로 "날기를 기다리는 여름새" 같다고 여기면서, 마음에 담은 꿈을 꼭 이루리라고 다짐했대요. 1600∼1700년대라고 하는 때에, 가시내는 자칫하면 쉽게 '마녀사냥'으로 붙잡혀서 죽기도 했다는 때에, 상냥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작은 이웃인 풀벌레하고 날벌레를 아끼면서 그림을 그리는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독일에서는 500마르크 종이돈에 바로 이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님 얼굴을 담는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는 50000원 종이돈에 신사임당 님 얼굴을 담지요. 독일에서도 한국에서도 풀벌레랑 나비를 수수하면서 정갈하고 곱게 그림으로 담은 분들이 종이돈에 얼굴그림이 들어갈 만큼 사랑받는 셈이네 싶어요.

둘레를 널리 살피는 마음에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고 할까요. 작은 목숨을 따사로이 아끼며 돌아보는 눈길에서 사랑스러움이 자라난다고 할까요.

볼볼 기면서 잎을 갉던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어 오래도록 잠을 잡니다. 오래도록 잠을 자면서 꿈을 꾼 끝에 옛 몸을 모두 녹여 버리고는 눈부신 날개를 달고 깨어나 꿀하고 꽃가루를 먹는 여름새·나비로 거듭납니다. 꿈을 품는 아이들 모두 기운차며 즐겁게 날갯짓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곤충화가 마리아 메리안>(마르가리타 엥글 글 / 줄리 패치키스 그림 / 엄혜숙 옮김 / 담푸스 / 2011.8.8. / 1만 원)

곤충화가 마리아 메리안 - 곤충의 변태 과정을 처음으로 알아낸 여성 과학 예술가

마르가리타 앵글 지음, 줄리 패치키스 그림, 엄혜숙 옮김,
담푸스, 2011


#곤충화가 마리아 메리안 #마르가리타 엥글 #줄리 패치키스 #그림책 #마리아 메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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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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