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에 등돌린 대학생들, 그들을 욕할 수 없는 이유

대학생들이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대학 총학 선거'

등록 2017.10.20 19:31수정 2017.10.2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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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 꺼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실
불 꺼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실윤지원

지난 2017년 4월 6일, 전남대학교의 2017학년도 총학생회 재선거는 이틀간의 연장투표를 진행했음에도 투표율 50%를 채우지 못해 무산됐다. 이미 2016년 11월 본 선거에서도 투표율이 부족해 연기됐던 2017학년도 전남대 총학생회는 이로써 공석으로 남게 됐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총학생회 집행부를 대행하고 있다.

사정은 연세대도 마찬가지다. 연세대학교는 지난 2016년 11월에 있었던 2017학년도 총학생회 선거에 아무도 입후보하지 않아 2017년 3월 28일 보궐선거를 진행했다. 그러나 31일까지 투표기간을 연장했음에도 최종 투표율이 26.98%에 그쳐 총학생회 결성이 무산됐다. 전남대와 연세대 모두 각 대학 총학생회 역사상 처음 맞이하는 상황이었다.

2017학년도 총학생회를 조직한 대학들이라 하더라도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서울대학교는 2016년 11월 14일부터 연장기간 포함 약 일주일에 걸친 선거 끝에 50%의 투표율을 겨우 넘길 수 있었다(51%). 이외에도 전북대(55%)ㆍ경북대(53%)ㆍ충남대(53%)ㆍ부산대(52%) 등 다수의 대학들이 2017학년도 총학생회 선거에서 힘겹게 50%의 투표율을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캠퍼스 선거 투표율 저조 현상'을 놓고, 언론들은 대학생의 캠퍼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지적했다. 국민일보는 "56년 만에... 총학 없는 연세대"라는 기사를 통해, 제도권 정치에는 관심을 보이지만 캠퍼스 정치에는 무관심한 대학생들의 모습을 지적했다.

세계일보 역시 "촛불은 들지만… '총학' 무관심한 대학가"라는 기사를 통해 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행동하던 대학생들이 대학교 안의 문제에는 무관심하다며 대학생들을 질책했다.

학내 언론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전남대학교의 대학신문인 '전대신문'은 "총학 재선거 무산, 실망스럽고 안타깝다"라는 사설에서 "자발적으로 자치 기구를 결성하지도 못하고, 자신들의 권리와 책임도 모르며,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대학생은 상상할 수 없다"라며 대학생들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캠퍼스 투표율 저조 현상의 책임을 대학생에게서 찾는 건 교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려대 이명진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도권 정치를 향해선 온라인 댓글을 달아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비(非)제도권 정치엔 관심조차 갖지 않는 '손가락 민주주의'의 한 단면이 바로 연세대 사례"라고 말하며, 대학생들의 실천 없는 민주주의 현상이 캠퍼스 투표율 저조 현상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중앙대 이나영 교수 역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내 선거는 많은 헌신이 필요하고 조직화의 경험도 있어야 하는데 지금 세대는 이런 게 약하다"라고 밝히며, 대학생들의 부족한 공동체 경험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캠퍼스 선거 투표율 저조 현상, 대학생의 잘못?


그러나 최근 대학생들이 보여준 정치 참여 열기는 뜨거웠다. 지난 겨울, 전국적으로 100개 이상의 대학에서 대학생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며 '촛불혁명'에 힘을 보탰다. 대한민국을 넘어 UC버클리나 옥스퍼드대학 등 외국대학에 유학 중인 대학생들까지 시국선언에 동참하기도 했다.

이 열기는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할 때나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 청구를 인용할 때에도 이어졌는데, 대학생들은 동맹휴학운동을 펼치며 거리로 나서거나 2차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도권 선거에서의 20대 투표율은 꾸준히 상승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권 선거에서의 20대 투표율은 꾸준히 상승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배민구

대학생들의 정치 참여 열기는 최근의 제도권 선거 투표율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전국동시지방선거(이하 지방선거)ㆍ국회의원선거ㆍ대통령선거와 같은 제도권 선거에서의 20대 투표율은 대학교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과는 다르게 꾸준히 상승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4회 지방선거부터 6회 지방선거까지 20대 전반의 투표율은 38.3% → 45.8% → 51.4%로 상승했으며, 20대 후반은 29.6% → 37.1% → 45.1%로 상승했다.

마찬가지로 18대 국회의원선거부터 20대 국회의원선거까지 20대 전반의 투표율은 32.9% → 45.4% → 55.3%로 상승했으며, 20대 후반의 투표율은 24.2% → 37.9% → 49.8%로 상승했다. 마지막으로 17대ㆍ18대 대통령선거에서 20대 전반의 투표율은 51.1%에서 71.1%로, 20대 후반의 투표율은 42.9%에서 65.7%로 상승해왔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은 왜 제도권 선거와 캠퍼스 선거에 다르게 반응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총학생회 구성이 무산됐거나 큰 어려움을 겪은 전남대ㆍ연세대ㆍ서울대 대학생 2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당신이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에 한 표를 행사한다면 대한민국에 변화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대학생은 89%(194명)였다. 반면 '당신이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 한 표를 행사한다면 대학교에 변화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단 25%(56명)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대학생들은 제도권 선거에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캠퍼스 선거에는 별다른 기대를 가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생들의 제도권 선거와 캠퍼스 선거에 대한 상반된 반응은 크게 차이나는 정치 효능감 때문이었다.
대학생들의 제도권 선거와 캠퍼스 선거에 대한 상반된 반응은 크게 차이나는 정치 효능감 때문이었다.배민구

대학생들의 이와 같은 상반된 반응은 '정치 효능감'이라는 개념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정치 효능감이란, 개인이 정치적 행동을 통해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 혹은 정부와 같은 정치기구들이 시민들의 요구에 반응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뜻한다.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김재기 교수는 "정치 효능감이 높을수록 유권자들의 정치참여가 증가하고, 반대로 정치 효능감이 낮을수록 정치참여가 감소한다"며, "대학생들이 제도권 선거와 캠퍼스 선거에 서로 다른 투표율 양상을 보이는 것은 정치 효능감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즉 캠퍼스 선거 투표율 저조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심화된 개인이기주의 성향이나 손가락 민주주의보다는 '낮은 정치 효능감'과 더 깊은 관련이 있었다.

"총학에 투표해봤자..." 실망감에 등 돌린 대학생들

 대학생들이 왜 캠퍼스 정치ㆍ선거에 낮은 정치 효능감을 느끼는지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대학생들이 왜 캠퍼스 정치ㆍ선거에 낮은 정치 효능감을 느끼는지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배민구

대학생들은 왜 캠퍼스 정치, 캠퍼스 선거에 낮은 정치 효능감을 느끼고 있었을까. '왜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 투표하더라도 대학교에 아무 변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중복응답 허용)'라는 질문에, 40%(95명)의 대학생들이 '우리 학교 총학생회는 대학생에게 닥친 문제들을 해결할 힘이 없다'라고 응답했다.

실제로 대학의 전반적인 운영을 지휘하게 되는 대학 총장 선출의 경우, 전남대는 총장 선출을 위한 '총장임용후보자 선정 관리위원회' 총 21명 중 단 1명만이 총학생회의 추천을 받은 학생으로 배정되어 있었다.

심지어 연세대는 총장 선출에 학생들이 전혀 개입할 수 없는 구조였는데, '학교법인 연세대학교 정관'에 따르면 연세대학교의 총장은 이사회에서 재적이사 3분의 2이상의 출석과 출석한 이사 3분의 2이상의 의결로 선임되고 있었다. 이는 서울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정관'에 따르면 서울대의 '총장추천위원회'는 서울대 학생들이 포함되지 않은 이사회와 평의원회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대학교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총장을 선출하는 일에 총학생회가 아무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총학생회가 대학교 내에서 할 수 있는 일 역시 많지 않았다. 전남대의 경우 재정 및 회계 운영을 심의하고 의결하기 위한 재정위원회에 총 15명 중 단 2명만을 학생으로 배정하고 있었다.

연세대 '예산업무 시행세칙'에 따르면 연세대는 총장 선출과 마찬가지로 사업예산심의위원회에도 학생들을 배제하고 있었다. 서울대의 재경위원회나 예산집행심의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총학생회가 대학교에서 바꿀 수 있는 범위는 대학 축제와 같은 좁은 의미의 대학 문화에만 국한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우리 학교 총학생회는 대학생들에게 닥친 문제들과는 거리가 먼 다른 활동들에만 몰두하고 있다'라는 응답이 30%(69명)를 기록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총학생회 활동이 제도권 정치 입문을 위한 경력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고 말하며, "총학생회가 대학생들의 권리를 위한 공약을 제시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보이지 않고 제도권 정치를 위한 커리어 쌓기에 급급한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학생을 위한 공약은 없고 학교 밖의 정치질만 한다. 그게 싫어서 학생회비도 내지 않는다"라는 설문 기타 의견도 있었다. 대학생들의 캠퍼스 정치 효능감이 낮아졌던 또 다른 원인은 총학생회에 대한 대학생들의 깊은 실망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몇몇 학생들은 "총학생회가 뭘 하는지 조차도 모르겠다. 홍보도 되지 않고 성과도 잘 드러나지 않는다""선거가 끝나면 그 뒤로 보이지 않는다"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공석인 2017학년도 전남대 총학생회를 대체하고 있는 전남대 비상대책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취업과 관련하여 북구청과 함께 JOB페스티벌을 개최하거나 가로등 설치, 몰래카메라 점검, 과속방지턱 설치, 야간버스 등 학우들에게 필요한 문제라면 어떤 기관이든 가리지 않고 만나서 진행해왔다"며, "이 부분들이 잘 알려지지 못해 느끼시게 된 반응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대학 안에서 학우들의 문제를 풀어야 되는 것도 있지만 대학 밖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정책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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