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소년>의 한 장면
(주)타임스토리
소녀의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였다. 소녀가 5살 때, 절단기에 손목을 잘리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식당에서 일했고, 아버지는 아무런 이유 없이 어머니와 소녀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소녀를 데리고 집을 나간 어머니는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소녀가 7살 되던 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외조모와 이모 집을 전전하던 소녀는 보육원에 맡겨졌다.
소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절도를 했다. 보육원 생활이 싫어서 가출했고, 편의점에서 과자를 훔쳤다. 보육원의 사회복지사가 합의를 해주었다. 4학년이 되어서 자전거를 훔쳤다. 이유는 자전거를 선물 받고 싶은데, 아무래도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파출소에 갔다가 반성문을 쓰고 훈방되었다.
소녀는 자신이 보육원에 사는 걸 친구들이 알까 봐 두려웠다. 뒷문으로 나가서 학교도 돌아서 갔다. 중학교 1학년 때, 소녀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아파트에 산다고 했지만, 자신의 거짓말이 소문나면서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와 학교에서의 따돌림으로 소녀의 내면엔 분노와 불안의 감정이 쌓여갔다. 의사는 우울증과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내렸지만, 소녀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녀는 가정에서 경험하지 못한 따뜻하고 친밀한 상호작용과 관심을 원했지만, 미래의 사회적 지위 획득을 위한 입시경쟁에 바쁜 학교는 소녀를 외면했다. 학교 밖에서 만난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친구들은 소녀의 가정사를 듣고 놀리지 않았고, 자신들도 입양이 되었거나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다고 했다. 소녀는 처음으로 외로움과 소외감을 달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났다. 잦은 무단결석으로 선도위에서 대안교육 처분을 받으면서 학교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거듭되는 비행에 학교는 출석정지라는 징계를 내렸고, 소녀는 그 기간 동안 가출해서 친구들과 함께 유흥가를 전전했다. 생활비가 떨어지면, 학교 후배들을 갈취하거나 절도를 했다. 소녀는 비슷한 처지의 선후배,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떨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친구들이 락카를 흡입하는 것을 보고 나쁜 짓인 줄 알았지만, 같이 했다. 환각상태에 빠진 몽롱한 순간만큼은 외로움도, 불안감도 잊을 수 있었다.
범죄 자체보다는 범죄자와 환경에 주목하는 소년법결국, 강제전학을 가서 스스로 학교를 그만둔 소녀는 보육원에서 가출하면서 선배 언니의 자취방이나 모텔을 전전했다. 생활고 때문에 나이를 속이고 고깃집에서 일하던 어느 날, 선배 언니가 조건만남을 권유했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조건만남에 응했다. 스마트폰 채팅앱을 통해 손쉽게 성 매수하는 어른들을 만날 수 있었고, 생활비를 벌고 술과 담배도 살 수 있었다. 이성친구와 동거를 해서 낙태를 하거나 아이를 낳는 언니나 친구들도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트위터를 통해 위조된 주민등록증을 구할 수 있었고, 무인모텔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었으며 차량을 렌트해서 돌아다니다 사고를 내기도 했다.
소녀는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몰랐다. 무언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을 형성하지 못한 소녀는 파괴적이고 충동적인 몸짓으로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했다. 언젠가, 깨진 소주병으로 찔렀던 손목의 상처를 감싸기 위해 불법 시술업자를 찾아가서 꽃 모양의 문신을 새겨 넣었다.
가정이 해체되고 학교에서 퇴출당한 소녀에겐 SNS를 통한 또래관계와 유흥가의 뒷골목이 세계의 전부였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SNS를 통해 자신의 뒷담화를 하자, 배신감에 친구들과 함께 후배를 폭행했다. 내면에 쌓여있던 분노와 공포, 증오의 무의식적인 감정들이 활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소녀는 후배를 그렇게까지 심하게 폭행할 정도로 미워하지 않았는데, 폭행한 것에 대해 미안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물어보는 질문에, 소녀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한다. 짧은 생을 살아왔지만, 이제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녀의 말에는 삶의 외로움과 고단함이 배어있었다.
가해학생들의 잔혹한 폭력 자체는 엄벌에 처해 마땅하다. 하지만, 소년법은 범죄 자체보다는 범죄자와 환경에 주목한다. 범죄자가 반사회성이 있는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범죄는 사회의 책임도 있다는 전제와 청소년은 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교정·교화를 위한 보호처분을 하는 것이 소년법의 이념이자 목적이다.
학교폭력과 청소년 범죄에 관한 몇 가지 특성위에서 언급한 상담사례를 통해 폭력의 그늘과 이면을 들여다보면, 학교폭력과 청소년 범죄에 관한 몇 가지 특성을 일반화할 수 있다.
첫째, 학교폭력 가해자의 약 40%는 과거 피해경험이 있다. 이 사실은 두 가지 경우다. 피해학생이 적절한 치유와 상담을 받지 못하고 일탈을 통해 가해자가 되는 경우와 폭력의 대물림이다. 사회가 일진 또는 노는 애들로 부르는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공동폭행이나 공동공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는 선배들이 노는 후배들을 갈취하고 폭행하는 폭력의 대물림인 것이다.
둘째,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학교폭력 가해자의 40%가 학교 밖 청소년이다. 학교에 장기간 결석하거나 그만둔 아이들이 선후배 간 위계를 따지며 폭행, 공갈하거나 갈취하는 사건이 많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뒷담화를 하거나 신고를 하면 SNS를 통한 사이버 폭력이 행해지고, 심할 경우 무자비한 폭행으로 이어진다.
셋째, 학교폭력으로 처분받는 아이들의 범죄는 복합적이다. 폭력으로 법정에 서지만, 절도, 사기, 무면허 운전, 성매매, 유해화학물질흡입, 점유이탈물횡령 등의 추가 사건이 많다. 이들의 범죄경력이 다양한 이유는 가출로 인한 생활고와 유해환경과 수시로 접촉하는 일상 때문이다. 아이들은 배달과 식당 서빙 등의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있지만, 주변인으로서의 소외와 상실감으로 인해 일관성 있는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고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넷째, 범죄소년의 상당수가 부모 이혼이나 사망으로 인한 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 고아, 탈북청소년, 다문화 가정 등의 소외계층이다. 또한, 기초생활수급자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이 많아 보호자가 생업에 바쁜 나머지 가정교육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학교에서 축구, 육상, 태권도 등의 운동을 하던 아이들이 경제적 어려움이나 구타, 부상 등의 이유로 운동을 그만둔 후 감당하기 힘든 좌절을 겪으면서 일탈과 비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다섯째, 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16년 5월 기준으로 전국 소년원에 수용된 정신·지적장애 소년원생은 전체 보호소년 중 25.7%를 차지한다. 이 아이들은 ADHD,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품행장애 등의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격 장애는 유년시절의 가정폭력과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청소년 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국가적 과제인 양극화 해소와 복지 확대를 전제로 한다. 부모의 알코올 중독이나 가정폭력으로 아이들이 가정에서 일탈하고 좌절하지 않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결손가정으로 인한 보호자의 방임과 생활고로 아이들이 가출하고 생업에 뛰어들며 학교에서 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출한 아이들은 비슷한 처지의 이성친구와 동거를 해서 아이를 출산하여 일찍 가정을 가지거나 미혼모가 되는 경우도 많다. 어린 부모가 자녀에게 경제적 빈곤과 방임을 물려주지 않고, 미혼모인 소녀가 자립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문제학생 폭탄 돌리기를 통해 책임을 회피하는데 급급한 학교는 공교육의 정상화를 통해 위기청소년을 끌어안아야 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하루아침에 바뀌기 어렵다면, 대안학교의 다양화와 내실화를 통해 학교 밖 청소년을 학교로 돌려보내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학교폭력에 관해서는 피해학생에 대한 충분한 보호와 상담을 통해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할 수 있게 하고, 처벌 위주의 학폭위 징계에 앞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화해할 수 있는 교육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가출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쉼터를 확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