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지만 논문 작성 경험은 유익"게자 파이글 씨는 "졸업논문을 쓰면서 무척 많이 고생했지만 자기 관점을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신향식
"한국영화 보던 중 한국어 리듬과 발음을 매력적으로 느껴"게자 파이글씨는 우연한 계기로 한국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아시아권 영화를 즐겨보던 중 어감이 매우 아름다운 영화를 한 편 발견했다. 일본어, 중국어보다 리듬감이 묘했고 발음도 부드러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바로 한국영화였다.(영화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게자씨는 "한국어 대사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 뜻이 궁금해졌고 한국 문화를 하루빨리 배우고 싶어졌다"면서 "다행히 언어에 재능이 있어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뒤 게자 파이글씨는 한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태권도 수련에 들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한국에 관심이 커져 대학 지원 때 한국학과를 선택하게 됐다. 취업하기에 유리한 전공은 아니었지만 관심 있는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논문을 작성해야 했다. 형식적인 보고서 수준에 그치지는 않았다. 무척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쳐야 했다. 논문 길이는 전공마다 다른데 한국학과에서는 1만 단어 분량으로 완성해야 했다. 논문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몇몇 동기들은 논문 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재심사를 받기도 했다.
"특히 저는 독일어로 논문을 쓰는 데 있어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중학생 시절 미국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지냈는데 다시 독일로 돌아온 뒤에 독일어로 글을 쓰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때 소논문을 작성해 보았지만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대학 졸업논문은 저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학문 연구가 체질이 아니었기에 수 개월간 논문에 쓰일 한국어 자료를 찾고, 일일이 출처를 밝혀가면서 정리하는 작업은 매우 피곤한 일이었습니다."태권도 사범에게 받은 책에 동백림사건 실려 있어 논문주제로 연결게자 파이글씨는 졸업논문에서 박정희 정부가 태권도를 어떻게 정치도구화 했는지를 살펴봤다. 어느 날 태권도 사범에게 태권도 역사를 담은 책을 건네받아 읽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책에 동백림사건이 실려 있었다.
'어, 이건 또 뭐야?' 하면서 관심이 갔다. 논문 주제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던 중 이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국의 태권도 사범들이 동베를린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얼마나 관여돼 어떻게 고생했는지 알고 싶었다.
"핍박 받은 분들에게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이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제가 논문을 쓰니 한국 사람들이 이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태권도에 관해서 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동백림 사건을 잘 몰랐습니다. 알고는 있었겠지만 아마도 논문을 쓴 저보다는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일부 한국 젊은이들은 그 유명한 윤이상 음악가도 잘 모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