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만난 '한국 관광버스', 황당했다

[일상 비틀기] 잠깐 머무는 여행자에게 보여진 몇 개의 장면, 몇 개의 불평

등록 2017.10.28 16:22수정 2017.10.2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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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그대를 만나고부터.'

얼마나 지난 걸까? 이어폰에선 계속 아이유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리고, 심야버스의 맨 뒷자리에는 천장 틈으로 스며든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가뜩이나 에어컨이 세게 틀어진 버스 안이 추웠는지 불편한 좌석에 몸을 구겨 넣고 담요를 어깨 끝까지 끌어올린 채 잠을 자고 있었는데, 이마에 큰 물방울이 뚝-하고 떨어진다. 여전히 창밖이 어둑한 것을 보니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이 불편함을 좀 더 참아야 하는데, 왜 이런 고생을 '사서'하고 있는지 생각이 미치니 눌러두었던 짜증이 다시 밀고 올라온다. 아, 나는 지금 양곤에서 밤새 달려 '바간 (Bagan)'에 가는 중이다. 정말 '다시 태어날 것만 같은' 여행이다.


이번 여행은 너무도 불편하다. 첫날은 한밤중에 도착해서 힘들게 숙소를 찾은 데다, 장거리 야간 버스로 8시간을 달려야 하는 일정이 이틀이나 있었고, 돌아오는 비행기는 밤을 날아서 새벽에 인천에 나를 내려줬다. 도저히 이런 여행이 가능한 체력이 아닌데, '심하게' 무리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짜증으로 일정을 가득 채웠음에도, 돌아와서 살펴본 미얀마의 순간들이 보물처럼 소중하다. 그 순간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그리고, 다음엔 이런 식의 강행군은 참아야겠다. 분명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 했는데, 너무 늦은 모양이다. 

미얀마는 최근 로힝야족에 대한 '무자비'한 박해로 인해 수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던 혼돈의 나라이다. 최근의 사태만 아니었다면 우리에겐 '버마'와 '아웅 산 수치'로 알려진 나라이기도 하다. 내가 이곳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수천 개의 탑들이 벌판을 가득 채운 '바간' 때문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여행은 '휴식'이 아니라 강행군이었고, 기대했던 '평화'는 자기 혼자서 열반에 드셨는지 나에게는 불안함만 가득 채웠던 여행이었다. 그 4박 6일의 기억을 몇 개의 장면으로 다시 기억해 내는 것마저 편하지 않지만, 남은 사진들을 돌려보며 몇 개의 장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미얀마에서 만난 버스인데, '옥천버스'라고 쓰여 있었다

장면 하나.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글자들, 읽을 수가 없다.


이거, 읽을 수 있어요? 술레 파고다에 들어가면서 신발을 맡아 주겠다고 해서 맡겼는데, 이걸 줬는데 읽을 수가 없다.
이거, 읽을 수 있어요?술레 파고다에 들어가면서 신발을 맡아 주겠다고 해서 맡겼는데, 이걸 줬는데 읽을 수가 없다. 이창희

정말 전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곳에 도착해 버렸다. 공항에 내린 순간부터 눈앞에 나타난 '꽃처럼 피어난' 글자들이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도저히 읽을 수가 없다. 게다가 이 표는 술레 파고다에 들어갈 때 신발을 맡기면서 받은 것이니 '번호표'가 분명할 텐데, 이마저도 읽을 수가 없다. 이 여행,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요? (인터넷에 물어보니 '29'라고 쓰인 것이네요.)

장면 둘. 첫째 날 아침 '옥천 관광' 버스를 만났다.


여긴 옥천이 아니예요! 양곤시내에서 만났어요, 옥천에서 온 관광버스?
여긴 옥천이 아니예요!양곤시내에서 만났어요, 옥천에서 온 관광버스?이창희

양곤의 상징이라는 쉐다곤 파고다에 가는 길이었다. 숙소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고 하길래 구글 지도로 방향을 확인하며 걷는 중이었는데, 눈앞에 '읽을 수 있는 글자'가 나타났다. 이럴 수가, '옥천 관광'이라니! 번호판은 이 동네의 것인 걸 보니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중고차를 그대로 사용하는 모양이다.

그 후로도 부산의 시내버스, 서울역 가는 버스, 학원 통학 차량과 같이 수많은 버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중고차를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저개발국에 수출하고 있다고는 들었는데, 이렇게 현장에서 확인하니 기분이 복잡해진다. 가뜩이나 환경 보호라던가 생활의 질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못하는 나라에, 중고차를 수출하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

장면 셋. 쉐다곤 파고다에서 만난 '석가모니 보리수'의 손자뻘 되는 나무이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석가가 수행한 보리수 나무의 손자나무라고 해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석가가 수행한 보리수 나무의 손자나무라고 해요. 이창희

쉐다곤 파고다를 한 바퀴 돌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수 많은 부처님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사원의 수많은 사람들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전부터 그곳에 세워진 사원에 정성을 다해 기원을 올리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흠이 날까 하여 곳곳을 정비하기도 하며, 신들과 끝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에겐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장면이라 거리를 두고 볼 수밖에 없었지만, 이 '나무'를 만나고는 자연스레 숙연해졌다. 세월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던 보리수, 나중에 알고 보니, 석가모니가 수행하셨던 보리수의 손자뻘 되는 나무였다. 이 나무에는 석가모니의 수행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을 것만 같아서 생각마저 조심스러워졌다.

더운 날씨, 길에 놓인 물통을 발견했지만... '이거 마셔도 되는 걸까?'

장면 넷. 이 물은 드셔도 됩니다만...

나는 이 물을 믿을 수가 없어요. 더운 날씨인 만큼, 길의 곳곳에 놓인 물통들.
나는 이 물을 믿을 수가 없어요.더운 날씨인 만큼, 길의 곳곳에 놓인 물통들. 이창희

쉐다곤 파고다를 나와서 시내 중심부의 술레 파고다까지 걸어보기로 한다. 거리가 멀어 보이지도 않았지만, 선뜻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겁이 나기도 했다. 거리는 정돈되어 있지 않아서 지저분해 보였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는 호의를 느낄 수도 없었으며, 날씨는 땀이 줄줄 흘러내릴 만큼 덥고 습했다.

이때, 눈앞에 '물통'이 나타났다. 마치 '이 물은 당신에게 주는 보시입니다. 마음껏 드세요' 하고 말을 거는 것만 같았지만, 경계심 가득한 홀로 여행자는 차마 마실 용기가 없었다. 나 이럴 거면, 여기 왜 온 걸까.

장면 다섯. '환영이야, 양곤 시내 중심은 처음이지?'

차들이 가득 채운 길을 '무단횡단'! 횡단보도가 없다. 오늘도 무사히, 무단횡단
차들이 가득 채운 길을 '무단횡단'!횡단보도가 없다. 오늘도 무사히, 무단횡단이창희

복잡한 도시, 양곤의 거리 거리는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과 사람들로 어지럽다.
복잡한 도시, 양곤의 거리거리는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과 사람들로 어지럽다. 이창희

술레 파고다에 가까워질수록 도시는 점점 더 복잡해졌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은 점점 더 빽빽하게 여유가 없어 보였다. 왕복 8차선도 넘어 보이는 대로엔 횡단 보도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신호등도 없는 거리를 '눈치껏' 건너고 있었다.

도저히 언제 건너야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신호등이 '건너가라'고 알려주기 전에는 길을 건너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양곤 초보자'는 저 복잡한 거리에서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사람들은 왜 '횡단보도'나 '신호등' 같은 좋은 제도를 쓰지 않는 거야?

그리고, 양곤에서의 마지막 장면.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세상.

떠나기 전 들렀던 찻집 미국 대사관의 철망을 뒤로 돌아가니, 여기는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떠나기 전 들렀던 찻집미국 대사관의 철망을 뒤로 돌아가니, 여기는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이창희

출국하는 날, 바간에서 야간 버스로 이동하니 양곤에 새벽에 도착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 상태인데, 출국 비행편은 밤 11시가 넘다 보니 '버텨야 하는 하루'는 정말 길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몽롱한 상태로 '양곤에서 제일 멋진 찻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찾아낸 곳이 바로 여기다.

택시 기사도 위치를 잘 몰라서 한참을 헤매던 길은, 철조망이 얹어진 미국대사관 옆으로 이어진다 싶더니, 이럴 수가! 갑자기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놀랍다. 실력 있는 마법사가 정성스레 쳐 둔 결계가 이런 느낌일까? 하루 종일 힘들게 돌아다니던 양곤 시내의 카오스와는 전혀 다른 평화로운 세상이다. 여행 내내 나를 괴롭게 했던 화장실이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긴 양곤 안에 있지만, 양곤이 아니다.

따뜻한 차와 함께 피곤한 여행자에게 편안한 쉼터를 선물해 준 고마운 곳이지만, 한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완벽하게 세팅된 식기들, 공간을 가득 채운 '돈의 향기'는 어딘가 다시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더럽고 비좁은 거리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이런 곳에서 그들의 한 달 식비만큼을 한 끼에 써버릴 것만 같은 사람들은 또 누구일까? 그들이 믿는 신은 이런 '불평등'을 자비심으로 허용한 것일까, 아니면, 그들은 현세에서의 부당함마저 뛰어넘을 내세를 그렇게나 열심히 기원하고 있는 것일까? 여행자로서는 판단할 수 없는 차이에서 불편함은 배가 된다.

이것은 결국 지나가는 여행자의 오만인 것을 안다. 그곳의 삶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것도, 그들이 기대하는 현실의 삶과 행복을 나의 편협한 시각으로 평가하려는 것도, 모두 옳지 못하다. 하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기준으로 나는 그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졌다. 가진 자들에게만 한없이 너그럽고 평안한 그들의 현실 세상은 '부처가 원했던 나라'의 모습은 아닌 것만 같으니 말이다.

우리가 거쳐온 날들이 그들에게도 정답은 아닐 거란 것에 생각이 미쳤지만, 오랜 군부 독재를 간신히 끝낸 그들의 현실에서 느껴지는 '혼돈' 이후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혹시, 10년쯤 후에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땐, 어느 면에서든 좀 더 행복한 여행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고 싶다. 그땐, 길에 놓인 물통에서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말이다. 밍글라바!
#일상_비틀기 #양곤 #미얀마_여행 #현실의_기원 #부처의_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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