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들렀던 찻집미국 대사관의 철망을 뒤로 돌아가니, 여기는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이창희
출국하는 날, 바간에서 야간 버스로 이동하니 양곤에 새벽에 도착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 상태인데, 출국 비행편은 밤 11시가 넘다 보니 '버텨야 하는 하루'는 정말 길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몽롱한 상태로 '양곤에서 제일 멋진 찻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찾아낸 곳이 바로 여기다.
택시 기사도 위치를 잘 몰라서 한참을 헤매던 길은, 철조망이 얹어진 미국대사관 옆으로 이어진다 싶더니, 이럴 수가! 갑자기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놀랍다. 실력 있는 마법사가 정성스레 쳐 둔 결계가 이런 느낌일까? 하루 종일 힘들게 돌아다니던 양곤 시내의 카오스와는 전혀 다른 평화로운 세상이다. 여행 내내 나를 괴롭게 했던 화장실이지만, 이곳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긴 양곤 안에 있지만, 양곤이 아니다.
따뜻한 차와 함께 피곤한 여행자에게 편안한 쉼터를 선물해 준 고마운 곳이지만, 한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완벽하게 세팅된 식기들, 공간을 가득 채운 '돈의 향기'는 어딘가 다시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더럽고 비좁은 거리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이런 곳에서 그들의 한 달 식비만큼을 한 끼에 써버릴 것만 같은 사람들은 또 누구일까? 그들이 믿는 신은 이런 '불평등'을 자비심으로 허용한 것일까, 아니면, 그들은 현세에서의 부당함마저 뛰어넘을 내세를 그렇게나 열심히 기원하고 있는 것일까? 여행자로서는 판단할 수 없는 차이에서 불편함은 배가 된다.
이것은 결국 지나가는 여행자의 오만인 것을 안다. 그곳의 삶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것도, 그들이 기대하는 현실의 삶과 행복을 나의 편협한 시각으로 평가하려는 것도, 모두 옳지 못하다. 하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을 기준으로 나는 그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졌다. 가진 자들에게만 한없이 너그럽고 평안한 그들의 현실 세상은 '부처가 원했던 나라'의 모습은 아닌 것만 같으니 말이다.
우리가 거쳐온 날들이 그들에게도 정답은 아닐 거란 것에 생각이 미쳤지만, 오랜 군부 독재를 간신히 끝낸 그들의 현실에서 느껴지는 '혼돈' 이후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혹시, 10년쯤 후에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땐, 어느 면에서든 좀 더 행복한 여행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고 싶다. 그땐, 길에 놓인 물통에서 물을 마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말이다. 밍글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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