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문 대통령은 “안전과 관련된 일이라면 국민께 투명하게 알리는 것을 원전 정책의 기본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KTV 중계화면 갈무리
문 대통령이 이날 언급한 '블랙아웃 사태'는 지난 2012년 2월 9일 저녁 8시 34분에 일어난 '완전 정전' 사고를 말한다. 작업자의 실수와 비상발전기 고장이 겹치면서 고리 1호기의 전원이 12분간 완전히 꺼졌다.
그날 고리 1호기는 계획발전정비기간이라 원자로가 멈춰있었지만, 핵연료를 식히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냉각수가 증발하고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다. 당시 12분간의 정전으로 냉각수 온도가 36.9도에서 58.3도로 21.4도나 올라갔던 것으로 조사됐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당시 사고는 7단계(후쿠시마 급)까지 구분되는 원전 사고 중 2단계로,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것 중에는 가장 큰 '역대급' 사고였다"며 "더 심각한 것은 그런 사실이 한 달이나 은폐됐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사고는 법에 따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즉각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당시 발전소장 등 관리자들은 '없던 일로 하자'고 입을 모은 뒤 사고 사실을 숨겼다. 이 사건은 고리원전 인근 식당에 갔던 김수근 당시 새누리당 소속 부산시의원이 옆 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해 3월 12일 세상에 알려졌다.
원안위는 은폐를 모의한 문모 발전소장 등 핵심관계자 5명을 고발하고 한수원에 대해서는 과태료(300만원) 및 과징금(9000만원) 부과처분을 했다. 그러나 법원의 최종 판결이 벌금형 등에 그쳐 처벌이 미온적이었다는 논란을 낳았다.
후쿠시마 '오래된 것부터' 폭발, 노후 원전 위험성 부각
정전 은폐 사건은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뒤 30년 설계수명을 1차 연장(10년)해 가동 중이던 고리1호기의 추가 수명연장 논의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노후 원전의 안전성이 도마에 오르자 환경단체들은 국내 최고령 원전인 고리1호기의 수명을 더 이상 연장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지진해일(쓰나미)이 닥친 후쿠시마 원전에서 6기의 원자로 중 오래된 순서대로 1~4호기가 폭발하자 '노후 원전일수록 자연재해에도 더 취약하다'는 사실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1~4호기는 1971년부터 1978년 사이에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2015년 고리1호기의 2차 수명연장 신청 기한이 다가오자 부산환경운동연합, 부산YWCA 등 120여개 지역시민단체가 '고리원전 1호기 폐쇄 부산범시민운동본부'를 결성했다. 정전 은폐 사건 후 더 나빠진 주민 여론을 의식한 지역 정치인들도 여야 할 것 없이 폐로를 촉구했다. 결국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는 2015년 6월 한수원에 고리 1호기 영구정지를 권고했고, 한수원은 이를 수용하는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