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냥'하려고만 드니 여성들은 도망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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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헌팅을 받는다고 여자가 죽지는 않잖아요. 그냥 연애 좀 거는 건데"라고 누가 반박을 한다면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성적 대상화'라는 말이 '성적 대상으로 바라봄'이라는 의미만을 가진다면 연애에 있어서 성적 대상화란 필연적이다. 이 매력적인 성적 대상과 연애 혹은 성적 행위를 하고 싶어서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서겠다는데 그걸 누가 비난할 수 있겠나.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가 이해해야 할 문제가 있다
.성적 대상화는 정확히 말하자면 '성적 비인격화'다. 상대방이 감정과 인격이 있는 존재라는 걸 무시하고 성적 대상 이외의 무엇으로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기를 주는 토끼와 사슴을 바라보듯, 여성을 술 취한 '골뱅이'로 바라보는 것을 성적 대상화라고 한다. 술에 취해 피를 흘리는 여자에게 다가서서 술을 한잔 더 하자고 말을 하는 것은 전형적인 '성적 대상화'일 것이다. 그리고 '헌팅'을 하는 남자들은 많은 경우 바로 그런 방식으로 여자를 대하고 있다.
많은 여성들은 헌팅을 당할 때마다 그걸 본능적으로 느낀다. 연락처를 주지 않는다고 내지는 함께 술을 먹지 않는다고 성질을 부리거나, 몰래 연락처를 가져가서 연락을 시도하거나, 술에 취해 있는 내게 의사를 묻지 않고 몸을 붙여오는 남성들 앞에서 내가 인격체가 아니라는 건 여러 번 재확인 된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은 누가 봐도 그냥 방어막을 바짝 세우고 도망가는 것이다. 난생 처음 본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데, 그 사람이랑 지속적 관계를 잠시라도 대체 왜 가지겠는가. 더욱이 이런 남성들은 곧잘 폭력적으로 변하기까지 한다. 인격으로 안 보는데 폭력적으로 변하는 건 얼마나 간편한 일일까.
이쯤 되면 오늘도 길거리에서 무서워서 움츠리고 도망가는 여자들을 향해, 혹은 술이 취한 여자들을 향해 "술 한잔 더 하자" 내지는 "번호 좀 주세요"를 무용하게 읊조리고 있을 21세기 남성들의 근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같이 술 먹어줄 여자의 숫자가 후닥닥 줄어드는 게 눈에 선한데 대체 어쩌다가 당신들은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여자들을 사냥감 취급하면서 대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이 사회에서 여성의 성이 '획득'해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관계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여성의 성은 여성에게 속해 있는 것이지만, 가부장주의의 시선에서 여성의 성은 교환하고 소비하고 획득해야 할 비인격적 가치다. 그러므로 수많은 남성들은 마치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처럼 '많은 여자와 섹스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섹스나 연애의 구체성은 탈각된다. 섹스/연애를 하는 대상의 구체적 인격, 태도, 주체성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인간은 '획득'할 필요가 없지만 여성의 '성'은 다르다. 에어아시아 사장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의 사진 아래에 '돈 보고 결혼한다'는 욕설이 주구장창 달리는 이유는 돈이 많으면 여성의 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 인지 속에서 구체적 관계는 갈 곳을 잃는다.
이건 사실 헌팅을 하는 남성들에게도 썩 즐거울 상황이 아니다. 일단 헌팅이 잘 안 된다. 위에서도 한참 서술했듯이 여성들은 도무지 자신을 구체적 인격으로 대하지 않는 남성에게 연락처를 줄 이유도, 술을 마실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이런 사고를 계속 유지하는 남자는 웬만해서는 '노리는' 여성과 관계를 이어나갈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헌팅에 실패한 후 기분이 나쁘다. 위에서 말했던 경우들 중 어떤 남자들은 연락처를 안 준다고 '욕을 하거나', '음료수를 뿌리면서' 분개한다. 대체 왜 그렇게 분개하는 것일까. 마음에 안 들면 연락처를 안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유야 단순하다. 여성의 성이란 사냥감처럼 획득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사고 속에서 여성의 성이란 일종의 물건 같은 것이다. 비인격적 물건을 획득하려고 했는데, 이 물건이 싫다고 자기주장을 하며 날 거부해 버렸다. 이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사회적 능력을 증명하는데, 그러므로 나는 여자의 연락처를 따거나 함께 술을 먹는 것으로 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남성들은 연락처를 안 준 여자에게 욕설을 퍼붓고, 자신을 무시한다고 분노하고, 머리 위에 갈아만든 배를 뿌리는 한심한 짓
을 한다.
세 번째는 그래서 술을 먹게 되거나 연락처를 땄다고 하더라도 관계에서 소외된다. 술에 엄청나게 취한 여자랑 술을 또 먹으러 가면 적어도 그 여자와 대화를 할 수 없는 건 명확하다. 드디어 술 취해 뻗어버린 여자의 '성을 획득'해서 모텔에 끌고 가서 강간을 시도하면 범죄자가 된다.
모든 관계는 구체적이다. 아주 짧은 관계라고 하더라도 그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주체적 사고와 행동이 교차한다. 상대방의 인격과 주체성을 무시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관계들이 충만할 리가 없다. '나 오늘 골뱅이 따먹었다'라고 어디 자랑스럽게 글을 올릴지언정 그건 그 사람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는다. 아, 범죄자라는 가치는 증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헌팅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