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중학교 도덕② 교과서(미래엔 출판)의 교사용 지도서 212쪽. 본문 문장마다 아래 적힌 파란색 작은 글씨는 교사용 지도서에만 있다. 나머지는 일반 학생용 교과서와 일치한다.
신영수
더 심각한 것은, 교과서가 준법의 사례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교과서는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서술하면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준법의 이유'를 자료로 든다. 악법임에도 사형 선고를 수용한 소크라테스의 일화를 교과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소크라테스는 탈출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에 따른 판결을 받아들였다. 그는 법을 준수하는 것이 국가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며, 나라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중학교 도덕② 212쪽, 미래엔 출판)정의를 탐구하고 실천했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권력자들에게 있어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법을 이용해 사형 판결을 이끌었고, 이에 순응한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이는 명백한 사법 살인이다.
그런데 악법임에도 사형을 받아들인 고대의 사법 살인 이야기를, 오늘날 법을 지켜야하는 이유로 교과서가 중학생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악법에 순종해 죽는 것이 "국가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며, 나라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는 교과서의 서술이 섬뜩하다.
악법에 순종하는 것은 교과서의 해석마냥 "국가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도 "나라의 질서를 유지하는 길"도 될 수 없다. 주권자인 시민이 존재할 뿐, 약속을 지켜야 할 관념으로서의 국가는 없다. 또한 악법을 그대로 방관하는 것은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공동체의 질서를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
게다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국가에 대한 약속과 질서의 차원으로 명토박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큰 해석이다. 서강대 강정인 교수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맹목적인 법 준수의식 때문에 죽음을 택한 게 아니다. 정의를 탐구하고 전파하는 일을 사명으로 여겼던 그는, 이를 포기하고 도망갈 바에는 차라리 결연히 죽겠다는 '철학적 순교'를 단행한 것이다.
이미 2004년 헌법재판소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준법의 사례로 교과서에 드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오늘날 헌법체계에서는, 준법이란 정당한 법과 정당한 법 집행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13년이 지난 현재도 단지 '악법도 법'이라는 직접적인 문구가 사라졌을 뿐, 바뀐 것은 없다.
이처럼 법에 대한 시민의 권리는 가르치지 않는 교과서. 준법의 의무만을 강조한 채, 권력자가 지켜야 할 의무는 기술하지 않는 교과서. 소크라테스의 사례를 들어 사법 살인까지도 준법으로 미화하는 교과서. 이런 도덕교과서는 학생을 노예와 백성으로 길들이려 든다. 시민과 주권자를 위한 새로운 교과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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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죽음이 '준법'? 섬뜩한 도덕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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